브랜딩을 다룬 수많은 책과 콘텐츠가 시장에 유통되고 있지만 이걸 읽어도 “브랜딩이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에 내게 꼭 맞는 답을 내리는 것이 어렵습니다. 같은 질문에 브랜딩이 아니라 사업, 사랑, 행복이라는 단어를 넣어도 결과는 같습니다. 이 단어들은 그 의미가 매우 광범위하여 관점에 따라 다르게 정의를 내릴 수 있고 개인이 처한 환경의 변수에 따라 실행 방법도 모두 제각각입니다. 이때는 질문을 다시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브랜딩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물음의 근저에는 ‘성공하기 위해서’가 깔려 있습니다. 따라서 ‘어떻게 하면 브랜드가 성공할까?’가 완결된 질문일 것입니다.
이 질문을 바꾸기 전에 도움이 될만한 일화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미국의 한 공군 장교의 이야기입니다. 그의 임무는 조종사들이 비행기를 안전하게 이, 착륙할 수 있도록 기상을 관측하는 일이었습니다. 하루종일 혼자 책상에 앉아서 기상 데이터를 분석하거나 조종사들의 운행 스케줄을 관제하는 지루하기 짝이 없는 임무였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이 일을 더 잘하기 위한 생각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떻게 하면 조종사들을 죽일 수 있을까?’라며 질문을 뒤집어 봅니다. 조종사를 죽게 만드는 모든 방법을 찾아서 그것만 일어나지 않도록 한다면 자신의 임무를 다하는 것이라 생각한 것입니다. 다소 섬뜩한 워딩이지만 ‘어떻게 하면 이 일을 더 잘할까?’보다 해야 할 일이 훨씬 명료해지면서 그는 조종사를 무조건 죽음에 이르게 하는 몇 가지 요인을 찾아냈고 복무 내내 이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이 공군 장교는 전설적인 투자자 워런버핏의 오른팔이자 버크셔헤서웨이의 부회장 찰리멍거입니다. 워런버핏은 그를 끔찍한 No Man이라고 부를 정도로 뒤집어서 생각하고 비판적인 견해를 쏟아내기로 유명합니다.
‘어떻게 하면 브랜드가 실패할까?’로 질문을 뒤집어 보면 좀 더 할 일이 명료해질 수 있습니다. 하나의 사업이나 프로젝트가 성공하기까지는 수많은 변수가 작용합니다. 따라서 성공한 회사와 조건이 다른 환경에서는 결코 같거나 유사한 결과가 나올 수 없습니다. 책 한 권 읽은 대표님이 가장 무섭다는 말이 있습니다. 웃어 넘기기에는 지극히 극사실주의적 표현입니다. 남들이 해서 성공했다는 사례를 피상적으로 따라 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자신의 상태를 정확히, 객관적으로 아는 것이 먼저고(이것을 대부분 실패합니다) 그다음 성공 사례를 비판적으로 수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공은 수백만 번의 의사결정이 누적되어야 일어나지만 실패는 단 한 번의 의사결정으로도 일어나곤 합니다. 따라서 다른 브랜드의 시행착오를 통해 실패의 방법을 찾고 이것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성공 확률은 높이는 한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브랜딩(그리고 사업, 사랑, 행복해지는 법)에 정답은 없지만 오답은 있습니다.
시장은 커졌지만 고객은 작아졌습니다. 다시 말해, 고객 집단이 뾰족하게 초세분화되었습니다. 빅데이터 전문 기업 바이브 컴퍼니의 설립자이자 스스로를 시대의 마음을 캐는 ‘마인드 마이너’라 부르는 송길영 님은 그의 저서 <시대 예보>에서 ‘핵개인'이라는 개념을 주장합니다. 대가족 제도가 붕괴되면서 2000년대 ‘핵가족'이라는 개념으로 사회 현상을 설명한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저자는 오늘날은 가족이라는 최소 공동체마저 붕괴되면서 다분화/다양화된 개인이 살아가는 ‘핵개인’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말합니다. 3인 가족 중 어머니 한 명의 취향만 저격하면 팔 수 있었던 3-4인용 소파를 이제는 어머니, 아버지, 아들/딸의 전혀 다른 취향과 니즈에 맞는 1인용 소파 3-4개를 팔아야 합니다. 핵개인으로 분화된 시대의 개인은 지역, 학교, 회사, 가족이라는 공동체에 자신의 정체성을 의탁하는 대신 관심사, 취향, 가치관 나아가 삶의 방식을 스스로 설정하고 이를 공유하는 사람들과 연대를 맺습니다. 과거에 ‘5-60대 주부’라는 대 단위의 전체주의적 정체성이 지금은 ‘영웅시대(5-60대 여성이 대다수인 가수 임영웅 님의 팬클럽 명)’라는 소규모의 개인주의적 정체성으로 변모했습니다. 바로 이 연대를 저는 ‘아무나 모르는 브랜드’의 최소 단위 고객으로 규정합니다.
저는 15년 간 브랜드를 만들고, 운영하고, 관찰하는 과정에서 소위 요즘 뜨는 브랜드들이 공유하는 몇 가지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 책에서 제안하는 ‘아무나 모르는 브랜드’는 새로운 브랜딩 기법이나 이론이 아니라 초 세분화한 시장에 적응한 현상 중 하나라는 설명이 더 적합할 것 같습니다. 수백만 개의 유튜브 채널에서 개인만의 취향을 만들어가는 고객을 대 단위로 집단화하거나 일반화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따라서 ‘누구나 아는 브랜드’가 되려고 했던 기존 방식과 관점에서 벗어나서 오늘날의 진화한 시장에 적응한 브랜드들의 문법을 이해하고 적응한다면 아무나 모르지만 아는 사람들은 열광해 마지않는 브랜드가 될 수 있습니다.
이 브런치 북은 올 2월 출간하는 <아무도 모르는 브랜드? 아무나 모르는 브랜드!>의 후속편 성격으로 연재합니다. 앞으로 연재될 글에 공감하신다면 곧 출간하는 책도 유용할 것입니다.
저는 정답도 없고 마침표도 없는 일을 대할 때는 확률을 높이는 것에 집중합니다. 사업을 그렇게 했고 브랜딩도 같은 범주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인들에게는 '브랜딩은 소거법'이라는 말을 종종 합니다. 만약 당신이, 해야 할 일과 무엇인가를 더 해야 한다는 불안감으로 머리가 복잡하다면 이 책이 하루 정도는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지 생각해 보는 기회를 제공하길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