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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코 Mar 02. 2024

잘하는 일을 해야할까? 좋아하는 일을 해야할까?

잘하는 일을 해야 할까?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할까?라는 질문(이하, 잘일좋일이라고 함)은 업의 선택 기로에 서봤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만났을 관례 같은 질문입니다. 지인과 자신에게 끊임없이 묻지만 답을 내리기 어렵습니다. 최근에는 이 관례 같은 질문이 너무 자주 찾아옵니다. 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2030년이 되면 한 사람당 평균 29~40개의 직업을 선택하고 살아갈 것이라고 합니다. 저는 12년 간 6번의 창업을 하고 한 때 9개의 명함을 갖고 다닌 경험이 있어 이 연구보고서의 주장에 동의합니다. 지금 대학에 입학한 분들의 평균 수명은 120세로 이들의 경제활동 기간을 70년이라고 가정한다면 한 회사에서 평균 1.75년 근무하게 됩니다. 1~2년에 한 번씩 잘일좋일을 맞닥뜨리고 스트레스를 받아야 할지도 모르니 공회전만 하는 이 질문, 바로잡을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왜 잘일좋일이라고 물을까?

인간은 자신의 신념이나 행동이 서로 모순되어 양립할 수 없다고 느끼는 상태가 되었을 때 자신의 인지를 변화시켜 조화롭게 유지하고자 합니다. 자기 정체성 유지를 위해 합리화를 진행하는 것인데요. 가령 지나는 길에 무심코 50% 세일 딱지가 붙은 옷을 본 순간 머릿속은 '통장 대신 옷장'을 살핍니다. 그리고 '이 옷은 나한테 없어! 쌀 때 사둬야겠군!'이라고 생각합니다. '합리적'으로 소비 하(고 싶은)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하는 '합리화' 작업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러한 작업이 원만히 이루어지지 않는 상태를 심리학에서는 '인지부조화' 상태라고 하며 이때 받는 스트레스를, 프로이트는 '갈등'이라고 표현합니다. 집에 와서 자려고 누웠는데 오후에 본 옷이 계속 생각이 나는 것이 바로 갈등입니다. 이러한 갈등상태를 그대로 둬서 고착화되면 이른바 GenZ의 특성이라고도 하는 '양가감정'이 나타납니다. 좋은데 싫어, 나가서 놀고 싶고 귀찮아 같이 갈등의 상태를 일반화하고 약간은 희화함으로써 스트레스의 볼륨을 낮춥니다. 잘일좋일은 개인의 진로라는 큰 단위의 결정이다보니 세일하는 옷에서 느끼는 갈등보다 무겁고 오래 지속됩니다. 합리화할 근거가 직관적이지 않고 또한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한편 우리의 뇌는 대량의 정보를 효율적으로 저장(기억) 하기 위해 입력된 정보의 의미를 단순화하는 작업을 필수적으로 합니다. 예를 들면, 면접관이 지원자에게 고작 질문 서너 개를 던진 뒤 'OO지원자는 불성실한 사람이군'이라고 메모를 하고 불합격 처리를 합니다. 30년 인생을 '불성실'이라는 한 단어로 정의하는 것은 기분 나쁘지만 이것은 면접관의 잘못(물론 화는 나지만)이 아니라 뇌의 정상적 작동 결과입니다. 선입견과 학증편향은 뇌가 효율적으로 건강하게 작동한다는 증거입니다. 면접관이 "OO님은 참 스마트한 사람 같아요."라고 말하고 합격이 되었다면 면접관에게 감사하고 '스마트함'으로 단순화된 자신의 정체성을 기쁘게 받아들일 것이 분명하니 공정한 것은 '뇌'고 공정하지 못한 것은 '나'입니다.   


마지막으로 인간은 진화적으로 이분법으로 세상을 바라보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수렵-채취 사회에서는 숲을 걷다가 '바스락'하는 소리가 들렸을 때, 인간에게는 생과 사의 두 가지 선택지 밖에 없습니다. 도망치거나 잡아먹거나입니다. 자신이 피식자라면 죽을 것이고 포식자라면 소리의 주체를 잡아먹음으로써 생명을 연장하게 됩니다. 그래서 소리가 나는 즉시 '회피' 또는 '접근'의 두 가지 선택지만 갖습니다. 현대 사회와 수렵-채취사회가 같냐고 할 수 있지만 우리의 유전자는 약 100만 년 전부터 진화해 왔고 현대의 생활양식이 나타난 것은 고작 300년 전으로 100만 년 진화의 시간에서는 작디작은 점 하나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잘일좋일은 인지부조화, 의미단순화, 이분법적 사고가 모두 작동된 결과로써 나온 '자연스러운' 물음입니다. 숲 속에서 포식자를 맞닥뜨린 20만 년 전의 호모사피엔스나 400년 전 사느냐 죽느냐를 고민한 햄릿이나 2024년에 잘일좋일을 고민하는 우리나 모두 다 같은 위아더월드 두 가지 기로에 선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니 스트레스를 받기보다는 일단 그렇구나 하고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20만 년 된 고민을 마치 '나'라는 사람 자체가 문제라고 여기지 않아야 해결의 실마리가 시작됩니다. 단순화된 의미를 다시 구체화하며 생략된 맥락을 찾아내고 유효한 질문을 만든 뒤 선택지를 계층화화면 하나의 인지(정답)를 통해 판단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질문_나 알기


김승호 회장의 강연 내용 중

김승호 회장은 글로벌 외식 그룹인 SNOWFOX GROUP(연매출 1조 원을 올리며 전 세계 11개국에 3,878개의 매장과 10,000여 명의 직원을 지닌 글로벌 기업이며 나스닥 상장을 앞두고 있습니다)의 회장이며 한국과 전 세계를 오가며 각종 강연과 수업을 통해 ‘사장을 가르치는 사장’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잘일좋일에 돈 버는 일을 해야 한다는 그의 말은 듣는 순간 카타르시스는 줍니다만 현실로 돌아오면 순환논리의 오류에 빠지고 맙니다. 1조 원을 벌어보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어야 할지 잘하는 일로 벌어야 할지, 뭐가 돈 벌기에 더 좋을지 다시 고민하게 되는 것이죠.

'내가 해보니 이게 중요하더라'는 유형의 아포리즘은 꽤나 통쾌해서 사람들이 좋아합니다만 내 삶에 적용이 잘 안 됩니다. 한 토크쇼에서 여든이 넘은 배우 알파치노에게 사회자가 "젊은 배우들에게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조언을 해주신다면 무엇입니까?"라고 질문하자 그는 자신의 젊은 날을 반성하며 "겸손하라"라고 말합니다. 다 해보니 결국 겸손해야 성공하더라는 것입니다. 성공이 만연하고 통신이 발달한 현대 사회에서 '겸손하라'는 말을 듣지 않고 80세가 될 확률은 제로에 가깝습니다. 아마도 2,30대의 알파치노에게 성공한 누군가 겸손하라고 조언했을 것이고 그는 흘려 들었을 것(적용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가르침은 필요를 느껴야 배움이 되니까요.


한편 결승점에 도달한 성공한 자산가는 이미 결과로 증명했으므로 과정을 연역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편집된 성공이라고 하죠. 해석에는 아무런 리스크가 없습니다. 하지만 출발점에서 잘일좋일을 고민하는 사람은 귀납적으로 추론하며 목표를 위해 실행해나가야 합니다. 이들에겐 리스크 밖에 없습니다. 잘일좋일을 질문하는 사람은 이 리스크에 대한 '불안', 다시 말해 기회비용을 최소화하고 싶은 '마음'이 기저에 깔려 있습니다.


리스크가 높은 결정을 할 때 필요한 재료는 남의 의견이 아니라 나에 대한 정보입니다. 바로, ' 알기'입니다. 따라서 잘일좋일을 나를 구체적으로 알기 위한 질문으로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잘일좋일에서의 '일'은 돈을 버는 일을 의미하니 둘 중 무엇을 해서 돈을 버는 것이 좋을지 찾고 싶어 던진 질문입니다. 여기서 돈을 번다는 것은 내가 가진 것을 통화로 바꿔낸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가진 것의 가치를 극대화하여 파는 일이 경제활동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이를 바꿔 말하면 내가 가진 것 중 가장 가치가 극대화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면 똑똑한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내가 가진 것(유무형의 자산) 중 가치가 가장 극대화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이것이 잘일좋일을 대신해 던져야 하는 첫 번째 질문입니다.


이 질문으로 할 일이 명료해졌습니다. 노트에 내가 가진 것을 주욱 써봅니다. 예를 들어 디자인 3년 차의 역량, 유동 자금 5천만 원, 인적 네트워크, 스킬 셋 등 나열하다 보면 범주화가 이루어집니다. 인간은 시각이 가장 발달했습니다. 머릿속의 희뿌연 상태를 종이 위로 옮기면 사고가 확장되기 시작합니다. 자 이제 정확성을 더하기 위해 동료나 선배에게 찾아가 "여기 리스트 중에서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이 뭐라고 생각해?"라고 물어봅니다. 잘일좋일을 물을 때보다 훨씬 양질의 의견을 빠르게 제공해 줄 것입니다. 이 과정이 끝나면 자신이 평가한 것과 대조하며 나열된 자산들을 1순위, 2순위, 3순위...로 하이어라키를 정합니다. 정보가 나열된 상태는 쓸모가 없습니다. 계층을 만들어야 해야 할 일이 도출됩니다.


이제 내가 가진 것 중 가장 경쟁력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질문_대상 알기

얼마 전 진로를 고민 중인 옛 제자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디자인을 전공한 그녀는 현재 대기업에서 UX 선행 연구를 하고 있는데 최근 개인적으로 몇몇 사이드 프로젝트를 해보는 과정에서 '브랜딩'을 너무 좋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단순 흥미를 넘어 진로로써 고민할 정도이니 브랜딩에 단단히 매력을 느낀 듯 보였습니다.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고 누구나 선망하는 브랜드가 하나씩은 있으니 참 매력적인 분야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사회생활 4년 차에 접어든 그녀는 자신의 커리어에 있어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부담감에 잘일좋일을 붙잡고 몇 날 며칠을 끙끙 앓고 있다고 토로합니다.

브랜딩을 선택하게 된다면 관련 회사를 물색하고 새 출발을 해야 하는 부담이 있지만 그녀가 좋아하는 일입니다. UX는 회사로부터 인정을 받아 최근 직책자가 되었고 높은 연봉/복지가 보장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후회를 하게 될까 봐 걱정입니다. 이 경우, 그녀에게 UX는 잘하는 일, 브랜딩은 좋아하는 일입니다. 걱정은 스노볼처럼 커져가는 특징이 있죠. 급기야는 UX를 잘하는 지도 의문이 생긴다고 합니다. 2시간 정도 그녀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뒤 제가 질문했습니다.

"UX와 브랜딩 중에 무엇을 더 잘 안다고 생각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그녀가 대답합니다. "UX요."   


좋아함 vs 잘함의 이분법적 프레임은 동일한 조건에서의 비교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둘을 비교하려면 같은 조건으로 비교할 수 있도록 질문을 다시 해야 합니다. '무엇을 더 잘 아는가?'라는 질문은 답변이 어렵지 않게 가능합니다. 주로 경험의 시간을 계산하여 도출할 것입니다. UX는 4년 간 실무를 경험해서 잘 알고 브랜딩은 대학교 때 과제와 사이드 프로젝트를 통해 몇 회 경험하여 잘 모르는 상태입니다. 이윽고 제가 다시 질문했습니다.

"잘 모르는 것에 대해 우리는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성에게 한눈에 반하거나 운명처럼 업을 만나는 일이 간혹 일어나긴 하지만 그 순간의 당사자는 잘일좋일을 고민조차 하지 않고 직진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짬뽕 vs. 짜장, 부먹 vs. 찍먹, 양념 vs. 후라이드를 두고 고민합니다. 물론 모두 다 충분히 먹어봐서 그 맛을 잘 알기 때문에 고민합니다.    


UX와 같이 현재 하고 있는 일에는 재미있는 일과 재미없는 일이 모두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브랜딩에는 재미있는 일만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UX로는 돈을 받고 있고 브랜딩으로는 돈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돈을 번다는 것은 대체적으로 좋아하는 일 하나를 위해 하기 싫은 일 9가지를 해야 합니다. 따라서 브랜딩 관련 창업이든 조직에 들어가든 하기 싫은 일 9가지를 포함시키는 과정을 필수적으로 맞닥뜨리게 됩니다.

대중의 간편한 관념적 언어에 묶이는 순간 사고는 멈추기 때문에 좋아함, 잘함과 같은 관념적 표현을 직무/회사와 매칭하는 것은 피해야 합니다. 대신 각각에 대해 알고 있는 사실을 파악해야 합니다. 그녀는 UX라는 일에서 무엇이 재밌는지 하기 싫은 일은 무엇이며 그럼에도 그것을 잘 해내는 방법은 무엇인지에 대해 통상적인 4년 차에 비해 매우 잘 알고 있습니다(직책자가 되었으니까요). 반면 브랜딩은 흥미 있다는 사실 외에는 '경제 활동'으로써의 브랜딩에 대해서는 거의 모른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따라서 잘일좋일을 대신해 던져야 하는 두 번째 질문은 'UX와 브랜딩에 대해 각각 알고 있는 사실이 무엇인가?'입니다.  


나와 대상의 연결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두 개로 분리될 수 없습니다. 이 둘은 닭과 달걀 같은 인과관계입니다. 잘해서 인정받으면 그 일이 좋아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인정욕구를 갖고 태어납니다. 따라서 좋아하는 것은 UX도 브랜딩도 아니고 타인의 '인정'일 수도 있습니다. 속속들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파고 들어가면 인정받지 못해서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도달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좋아해야 잘할 수 있게 되기도 합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단지 좋아서 시작한 사업인데 하기 싫은 일 또는 큰 실패를 맞닥뜨릴 때 그것을 넘어서는 원동력 중 하나가 '좋아하는 마음'입니다. 좋아하면 잘하고 싶어 져서 밤낮으로 논문을 뒤지고 자다 깨서 사업계획서를 쓰고 다시 자곤 합니다. 좋아하는 걸 잘해서 인정받고 싶은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1번을 통해 도출된 자산을 2번의 A 또는 B와 연결하는 작업을 합니다. 어떤 자산을 레버리지 할 때 가치가 극대화될지 찾는 것입니다. 많이 알고 있는 것이 대체로 좋지만 항상 좋은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B에 대해 알고 있는 사실이 A보다 적더라도 내가 가진 자산이 그것에 더 적합하고 시너지가 날 수 있다고 판단되면 피보팅을 하면 됩니다. 무언가를 미친 듯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런 선택을 하곤 하죠.  



*눈덩이처럼 불어난 그녀의 고민 중 하나인 내가 과연 이 일을 잘 하는가에 대해서, 내가 이 일을 잘하는지 고민이 될 때는 '연봉'을 역량이라고 생각하면 거의 정확합니다. 자본주의 사회 수 백년의 역사에서 가장 발달한 것 중 하나가 인력의 가치를 측정하는 기술입니다. 시장에서 오랜 시간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굳이 한 개인인 내가 나의 잘함을 다시 측정해볼 필요가 있을까요. 연봉이 곧 내 잘함의 척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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