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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코 Feb 10. 2024

연매출 30억 식당이 혼밥러를 대하는 법

회사의 진심은 '마음'이 아니라 '구조'에서 우러나옵니다.

얼마 전 용인에 있는 한 막국수 가게를 찾았습니다. 물막비막만 알던 우리에게 들막(들기름 막국수)의 존재를 각인시킨 <고기리 막국수>입니다. 고자극으로 일제히 향하는 F&B 시장에서 슴슴함으로 균열을 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곳은 반짝한 뒤 사라지고 마는 일회용 맛집과는 달리 몇 년째 롱런하며 문전성시를 이룹니다. 주말에는 입장하는 데에만 족히 2, 3시간이 걸리기도 합니다. 지나친 웨이팅을 피하고자 평일 오후 느지막이 '혼자' 가게를 방문했습니다.


어렵게 입성했으니 메뉴 하나만 먹긴 아쉬워 들기름 막국수와 수육 소 자를 함께 주문했습니다. 그러자 직원 분께서 1인을 위한 수육 한 접시 메뉴가 있는데 괜찮다면 그걸 주문해 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정중하게 제안합니다. 오, 감사히 그러겠다고 했습니다.

수육은 소/중하고 아기막국수는 무려 무료입니다.

메뉴가 나오길 기다리는데 문득 궁금증이 일었습니다. 메뉴판에 1인용 수육이 있었다면 직원이 1인용 메뉴를 제안한 뒤 메뉴를 다시 정정하는 일련의 번거로운 과정을 생략할 수 있었을 텐데요. ‘1인용 수육을 메뉴판에 넣는 대신 혼자 온 손님이 찾을 때마다 직원이 제안하는 방식의 운영은 이 가게에게 어떤 이점이 있을까?(a.k.a. 왜 그런 결정을 내렸을까)‘


<고기리 막국수>는 하루 평균 1,000명가량의 손님이 찾는다고 합니다. 발 디딜 틈이 없죠. 게다가 차를 타고 가야만 하는 외진 곳에 있어 '혼밥러'는 거의 없습니다. 제가 방문했을 때도 1인 손님은 저밖에 없었습니다. 2-4인 단위가 핵심 고객이니 1인 손님을 위한 수육은 사실 필요가 없습니다. 안 해도 그만이죠.


근데 1인용 수육을 팝니다. 아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여기 대표님 부부께서 손님에 ‘진심'입니다. <고기리 막국수> 대표님의 책 [작은 가게에서 진심을 배우다]브랜딩을 말하지 않고도 브랜딩이 무엇인지 깨닫게끔 하는 훌륭한 브랜딩 실용 서적입니다.

"손님이 오면 음식을 만들어서 내고 돈을 받는 일이 기계적으로 반복될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점차 막국수만 팔 수는 없다는 생각이 강해졌습니다. 그러자, 국수를 먹는 ‘사람’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우리가 기억하는 손님이 없는데 손님이 우리를 기억해 줄 리가 없습니다."
-책 내용 중-
<고기리 막국수>는 스텝밀에도 진심입니다

한편 손님 응대를 친절하게 하는 것과 사업을 친절하게 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일입니다. 일 년 내내 모든 손님에게 균질하게 친절하려면 구조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직원에게 양질의 점심 식사를 제공하고 충분한 휴게 시간을 보장하면 '매일' 고객을 친절하게 대할 확률이 높아집니다. 하지만 이는 고정비(점심 식대, 인건비)가 증가하는 일이므로 매출과 비용 전반을 따지는 종합적 관점에서 운영 구조를 설계해야 합니다. 고객에게 친절하게 대하기 위해 비용을 써야 할 때 그것이 얼마의 매출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 예측하기란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이러한 결정은 최초에는 경영자의 운영 철학을 바탕으로 내릴 수밖에 없고 이것이 유지 또는 강화되고 있다는 것은 결정의 결괏값인 매출이 비용을 추월(BEP)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고기리 막국수>가 12년째 운영 중이고, 연 30억 원 이상의 매출을 내고 있다는 사실은 이와 같은 의사결정들이 모여 만들어진 제품/서비스의 PMF(Product Market Fit, 제품과 시장 간의 적합성)가 끝났을 뿐만 아니라 운영 구조가 물 셀 틈 없이 최적화되어 있을 것이라 예측해 볼 수 있습니다.

여담이지만, 저는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식당에서 신메뉴를 출시했다고 광고하거나 가격 할인 전단지가 붙기 시작하면 웬만하면 가지 않는 편입니다. 맛이 됐든 서비스가 됐든 만족스럽지 못한 식사를 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입니다.   


메뉴 하나가 늘어나면 오퍼레이션 비용이 증가합니다. 더군다나 1인 메뉴는 2-4인과 동일한 오퍼레이션 비용이 들지만 객단가가 낮아 매출은 낮습니다. 장사가 안 되는 가게라면 그렇게 해서라도 매출을 올리고자 할 것이고 회사나 대학가에 위치한 식당이라면 1인에 맞춰 모든 운영 구조를 짜면 되지만 손님이 줄을 서는 대형 식당에서 1인 손님은 비용은 높고 매출은 낮은 기피 고객입니다. 프로 혼밥러는 "몇 분이세요?"라는 질문에 "혼자예요." 하며 식사를 하기도 전에 (눈칫) 밥을 먹는 일이 허다합니다.     


만약 메뉴판에 '수육 1인용'이라고 넣게 된다면, 4인 손님에게 ‘다음에 여기 혼자 와도 되겠구나’라는 메시지를 줄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굳이 4인 테이블을 1인으로 채우는 손해를 볼 이유가 없습니다. 4인 손님이 오면 다음에는 4인 또는 그 이상이 오고 싶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대/중/소'의 세 가지 양으로 표기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는데요. 이때는 2인 손님이 와서 '소(1인용)'를 주문할 수 있게 되어 객단가가 낮아지는 문제가 있습니다.


(저처럼) 부득이 혼자라도 방문하고 싶거나 <고기리 막국수>의 평판을 잘 모르는 1인 손님이 방문했을 때 메뉴판에도 없는 1인 메뉴를 정중하게 제안하는 직원의 응대를 받으면 기분이 좋아서(브랜딩) '다음엔 지인이나 가족과 와야겠구나(세일즈)'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저는 굳이 용인에 사는 지인에게 연락해서 식사 약속을 잡았습니다.


모든 고객을 만족시키려는 것은 위험합니다. 제품/서비스는 '핵심 고객'에게 최적화된 설계를 해야 합니다. 이때 2-4인이 핵심고객이라면 어떤 사장님은 1인 손님을 받지 않는 결정(A)을 할 수 있고 어떤 사장님은 1인 손님을 통해 4인 방문의 기회를 만들거나 방문한 손님의 LTV(Customer Lifetime value 고객 생애 가치)를 높임으로써 지속적인 매출을 만드는 결정(B)을 할 수 있습니다. A와 B는 이른바 '마시멜로를 언제 먹을 것인가'의 차이일 뿐 옳고 그름은 없습니다. 두 결정이 만들어내는 기댓값의 차이를 '알고' 경영자의 철학이나 현재 회사의 운영 기조에 맞게 선택하면 됩니다.


다만 '불확실'성 때문에 불안해서 B를 선택하지 못하는 것이라면, 그때는 혼자 온 '손님'이 아니라 '기자'라고 정의하고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도 있습니다. 식사보다 인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오늘날, 친절하고 맛있으면 주변에 퍼뜨릴 것은 '확실'합니다.  


친절은 반복되어야 '진심'으로 느껴집니다. 따라서 지속적이고 일관된 친절은 개인의 선한 ‘마음’이 아니라 회사의 지속가능한 운영 ‘구조’에서 나올 수 있습니다.


1인용 수육을 메뉴판에 넣는 대신 혼자 온 손님이 찾을 때마다 직원이 제안하는 방식의 운영은 이 가게에게 어떤 이점이 있을까?


1인용 수육을 메뉴판에 표기하는 대신 직원이 제안하는 방식은 브랜딩(지속 매출)도 세일즈(단기 매출)도 다 잡는 이점이 있습니다. 또한 쉼 없이 회전하는 식당에서 직원이 혼밥러를 진심으로 응대할 수 있는 이유는 친절한 직원을 두었기 때문이 아니라 일하기 좋은 구조(환경)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에필로그>

식사를 한 날에 개인 인스타그램에 후기를 올렸더니 <고기리 막국수> 대표님께서 아래와 같이 댓글을 남겨 주셨습니다. 외부의 평판을 직원들에게 있는 그대로 공유하는 일은 비용을 하나도 들이지 않고도 회사에 대한 소속감을 높일 수 있습니다. 그 결과, 홀의 직원은 고객을 더욱 친절하게 대할 것이고 주방의 직원은 주방 청결에 더욱 힘쓸 것이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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