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내 별장 만들기 프로젝트, 빌라 세렌디피티
며칠 동안 마음에 드는 집을 구하지 못한 채, 그날도 두어 군데를 돌아본 뒤 집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리스트업해뒀던 매물 중에 입지, 평수, 구조등의 조건은 좋았으나 사진상으로 본 모양새가 그리 마음을 동하게 하지 못한 집이 있었다. 어차피 집으로 가는 길에 있으니 한번 보기나 하고 가자하는 마음으로 그곳을 향했고 도착해서는 입이 떡 벌어져버렸다.
세상에. 이 집이 왜 아직 나가지 않고 이렇게 버젓이 부동산 사이트에 돌아다니고 있단 말인가... 난 또 어쩌다 그곳에 와 있단 말인가!!! 마음에 들어 좋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도대체 왜 이게 아직, 매물로 나온 지 꽤 됐음에도 계약이 안되고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밀려왔다.
"사장님! 여기 엄청 좋은데요??? 꽤 오래전부터 본 매물인데 왜 아직 안 나갔어요??"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를 쓰시는 아버지뻘 되어 보이는 부동산 사장님이 말했다.
"그기 사진을 내가 잘 모찍었는지... 막상 와서 보면 마카 다 조타고는 캅디더." 라고 하시며 핸드폰(?)을 꺼내 어정쩡한 자세로 다시 사진을 찍기 시작하셨다. 왜 사진이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손쉽게 알 수 있는 자세였고 그런 사장님을 보며 나는 감사의 미소를 날렸다. 제주에서 은인을 만났다. '사진을 못 찍으시는 부동산 사장님'이다.
이런저런 사정이 있던 집주인과 이런저런 일을 꾸미던 내가 타이밍 좋게도 맞닥뜨리는 바람에 나는 시세보다도 한참 저렴하게 원하던 공간을 만났다. 바로 그날 저녁 사진을 못 찍으시는 부동산 사장님에게 전화로 계약을 하겠노라 했고, 수 일 뒤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일사천리로 일이 촤라락. 일로써 얻게 된 집이지만, 애월 바다가 코앞인 그림 같은 집에서 지낼 생각을 하니 마음이 뭉게뭉게 했다. 이럴 때가 아니지만.. 아무렴 좋은 건 그냥 즐기자.
공간이 정해지고 나니 기획도 퍼즐링 되듯 잘 짜 맞춰져 갔다. 7년 가까이 오프라인 콘텐츠를 만들고 운영해본 경험이 내 공간위에서 비로소 빛을 보는 듯했다. 공간에 담아내고 싶은-낼 수 있는-것들이 차고 넘쳐 재밌는 상상들로 하루를 채워나가고 있다. 또한 1호점의 피드백이 좋은 거름이 되어 2호점은 비즈니스로서의 성장 전략까지도 기획에 녹여냈다.
오늘, 멤버십 사전 모집에 쓸 사진 촬영을 위해 2호점을 다녀왔다. 맑은 하늘이 오픈을 앞둔 긴장감을 녹여낸다. 참새가 방앗간 들르듯 그 근처를 지나노라면 슬쩍 한 번씩 가보았고 매번 갈 때마다 그저 '집 좋다'가 아니라 이곳에서 벌어질 일들이 눈에 그려지면서 가슴이 쿵쿵 뛰곤했다.
텃밭에 채소를 따다 샐러드를 해 먹고, 소나무에 걸친 해먹에 누워 낮잠이 찾아올 때까지 책을 보고, 직접 만든 화덕에 빵과 피자를 구워 먹고, 해 질 녘엔 애월 바다로 나가 바닷소리와 일몰을 즐기고, 별이 빛나는 밤에는 야외 스크린에 영화를 틀어놓고 맥주 한잔하고, 밤늦게는 근처 LP 바를 찾아 김광석의 음악을 틀어달라고도 해야겠다.
휴일 점심엔 멋진 셰프님이 해주신 요리로 마당에 둘러앉아 사람들과 소셜다이닝을 즐기고, 한 여름밤에 라틴 댄스를 배워보기도 하고, 목소리가 매력적인 뮤지션을 초대해 음악회를 열기도 하고, 평소 애정하는 작가를 초대해 사람들과 그녀의 책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달빛 아래서 여럿이 제주를 담은 그림을 그려보는 것도 좋겠다.
내가 즐겁고 행복한 일이라면 이 곳을 찾는 사람에게 고스란히 전달될 것을 믿고, 더 격렬히 행복한 상상들로 이 공간을 채워나가 보련다. 남들보다 더 잘해야 한다는 생각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즐겁게 해나갈 생각이다. 사진을 못 찍으시는 부동산 사장님은 오늘도 어딘가에 어정쩡한 자세로 욕심없이 즐겁게 사진을 찍고 계실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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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화에 계속 되...게..해주세요..
지난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