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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y R Sep 11. 2017

핸드드립 커피에 대한 단상

나는 그때도 몰랐고 지금도 모른다.

월요일. 이렇게 아침부터 서늘하고 촉촉하게 비가 오는 날에는 핸드드립 커피가 어울린다. 바쁜 현대인들에게는 빠르게 기계에서 뽑아주는 에스프레소 베이스의 커피가 더 적합할지도 모르지만 이런 날에는 시간의 흐름을 늦추고 느림의 미학을 느끼게 만들어주는 핸드드립 커피가 더 좋다.


한 때 에스프레소를 전문적으로 배우고 일하던 시기에는 핸드드립 커피를 시대에 뒤쳐지고 새카맣게 태운 커피로 내려 쓴맛 일색이어서 관심 가질 가치도 없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인테리어 또한 그 당시 유행하던 포스트 모더니즘과 같은 세련된 모습과는 거리가 먼 고풍스럽고(올드하고) 칙칙한 분위기의 샵들이 많았던 것도 내게 그런 편견을 갖게 하는 요소 중에 하나였다.


지금 생각하면 편견과 무지함이 주체하지 못하는 젊음과 만나서 상스러움이 폭발하던 시기였다. 그 당시 스스로는 질풍노도의 시기인 줄 알고 있었겠지만 실은 철딱서니가 없었을 뿐이었다. 부끄럽기 짝이 없다.


핸드드립 커피는 여전히 아날로그의 감성이 존재한다.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시간을 들여 물을 끓이고, 컵을 데우고, 커피를 갈아 서서히 뜨거운 물에 젖어들어 천천히 아래로 내려오는 검은색 액체에는 때론 비루하기 짝이 없지만 소중한 삶에 대한 고통과 아픔, 그리고 불안감도 잊게 만들기도 하고 때론 혼자여도 좋고 둘이여도 좋았을 추억의 시간들이 녹아내리기도 한다.


그동안 커피가 내게 가져다준 것들을 생각하면 고맙고 또 고맙다. 인생은 시작과 끝 모두 비극일지 모르지만 그래서 살아가는 동안 더욱 행복해지려고 발버둥 치고 매시간 시간이 치열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고요한 공간과 시간 속에서 향기로운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또 그런 시간이 지금 내게 주어져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이건 내가 잘해서가 아니고 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도움으로 내가 이 시간을 온전히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겠다.


오늘따라 촉촉해진 감성이 마시다만 커피 잔을 타고 어디론가 마구마구 흘러가고 있다. 그냥 그대로 놔두어도 상관없겠지 인생은 원래 그런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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