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부재
핸드폰에 아직 저장되어있던 그의 휴대전화 번호로 전화를 걸어 보았다.
"지금 거신 전화는 없는 번호입니다. 다시 확인하고 걸어주시기 바랍니다."
핸드폰 스피커에서 나오는 기계적이고 형식적인 여자의 목소리는 이질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 말투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고 있었지만, 이 번호를 쓰던 사람이 더 이상 세상에 없다는 뜻을 이해하는데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착신음이 들리지 않았을 뿐인데도 많은 것을 알 수 있게 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 목소리를 듣고서 특별한 감정이 생기진 않았다. 그렇지만 또 아무렇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그동안 나름대로 유지해왔던 마음의 평정심이 약간은 흐트러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아무런 감정 없는 전화기 넘어의 기계적인 여자의 목소리를 다 듣고 나서 그 이유를 곱씹어 보는 동안 묘하게도 흐트러진 마음이 다시 진정되었다. 그렇게 그가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 것일까?
그가 세상을 떠난 지 5년이 넘었다. 그는 세월호가 옆으로 쓰러져 바닷속으로 가라앉던 그 잔인한 4월에 갑자기 쓰러져 중환자실에 입원해 한 달을 의식을 잃은 채로 있다가 세상을 떠났다.
원인과 병명을 알기 위해 여러 검사를 했고, 큰 대학병원으로 옮겨 또다시 같은 검사와 새로운 검사를 계속했지만 적혈구 수치가 알 수 없이 계속 떨어지는 증상이라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나는 무책임한 의사의 말에 화가 났지만 무기력감에 사로잡혀 의사를 붙잡고 따질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원인도 모른 채 33일 동안 중환자실에 있다가 한 가닥 세상과 이어져 있던 끈을 결국 놓아 버렸다. 병명은 몰랐지만 세상과 끈을 놓은 이유는 급성 패혈증이었다. 아주 간단한 작별인사 조차도 남기지 않고 나와 동생을 남겨두고 그는 그렇게 말없이 세상을 떠나버렸다.
그 해 여름 늦은 밤에 술에 잔뜩 취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느닷없이 찾아온 주체할 수 없는 감정에 그 자리에 주저앉아 펑펑 울었다. 장례식장에서도 그렇게 울지 않았었는데 갑자기 터져버린 것이다. 지나가던 행인이 괜찮냐고 물어봐 준 것도 같았고, 휴지를 건네준 것 같았지만 고맙다고 대답조차 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울다가 주섬주섬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그가 사용하던 핸드폰으로 다시 전화를 걸었다.
"지금 거신 번호는 고객의 사정으로 당분간 착신이 금지되었습니다. 다시 확인하고 걸어주시기 바랍니다."
내가 알지 못하는 특별한 사정이 있었던 것일까? 도대체 뭐가 그렇게 급했을까? 작별인사 한마디도 하지 않고 서두르듯 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뭐였을까? 그리고 그에게 삶이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가족이란 어떤 의미였을까, 온갖 물음표가 한꺼번에 떠올랐지만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겉으로는 늘 당당하고 강한 척을 했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겪게 되면 늘 어찌할 줄 모르고 세상을 등지고 움츠리며 어디론가 숨어들었다. 뒷수습은 늘 그녀와 나와 동생의 몫이었다. 주로 그녀가 감당해야 했지만 남겨진 사람들이 늘 감당해야 했었던 시간들이었다. 다시 원래의 모습을 회복하는데도 항상 오랜 시간이 걸렸다.
늘 가족들보다는 친구들에게 많은 시간을 할애했고 더 아끼며 친구들과 어울려 지냈었다. 함께 살지 않게 된 이후로도 자주 만나기는 했지만 그는 그렇게 가족 곁을 떠나서 평생을 가족들 주위를 맴돌며 살아갔다. 그리고 그의 장례식장에 찾아온 친구들은 10명도 되지 않았다.
그런 모습에 씁쓸했고 그의 삶에 실망했지만 그렇다고 그게 그의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살아있는 동안, 적어도 친구들과 함께 지내는 동안은 즐겁고 행복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그의 부재로 인한 외로움과 어려움을 곁에 안고 살아온 나와 동생의 삶이 너무 초라해질까 두려웠다.
한 동안 길바닥에 앉아 울면서 그의 삶과 의미, 그리고 그와 나와의 시간들을 천천히 되새겨보았다. 그의 사정을 미리 알았더라면, 당분간 기다리고 있으면 금지된 착신이 풀리고 다시 통화할 수 있었을까? 그는 예고 없이 떠났지만 그가 쓰던 번호는 남아있었다. 아니, 남겨두었다. 그럴리는 없겠지만 혹시 다시 통화가 가능하다면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만약 작별인사를 할 수 있었다면 나와 동생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었는지 묻고 싶었다. 그렇게 그가 쓰던 번호를 없애지 않고 한 동안 남겨두었다.
그를 떠나보내는 날 나는 그에게 약속을 했다. 남은 가족들을 잘 보살피겠다고 그리고 절대 포기하지 않고 주어진 삶을 견디며 당당하게 살아가겠다고, 그리고 예전처럼 다시 우리를 남겨두고 떠났지만 원망하지 않을 테니까 그곳에서라도 우리를 잘 지켜봐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한 6개월 정도 지났을 때 처음으로 그가 꿈속에 나타났다. 나는 그에게 잘 지내냐고 물었고, 그는 잘 지낸다고 말했다. 그게 다였다. 나는 꿈속에서도 그 말을 하고 나서 펑펑 우느라 다른 말을 하지 못했다. 꿈속에서 그는 표정이 좋아 보였고 안색도 괜찮아 보였다. 늘 쓰고 다니던 여름용 중절모를 쓰고 하와이안 셔츠를 입고 있었다. 환하게 웃고 있었고 잘 지내는 것 같아 보였다.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다음 날 동생과 아내에게 꿈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내 마음이 그 꿈으로 인해 편해졌다고 생각했는지 둘 다 나에게도 다행이라고 말해주었다.
아마 앞으로는 예고 없이 그가 불쑥 꿈속에 찾아오는 일도 갑자기 떠오르는 일도 서서히 줄어들 것이다. 그리고 묻고 싶었던 말들도 더 이상 생각나지 않고 잊고 지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