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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y R Oct 03. 2016

그의 삶, 그리고 착신금지

그의 부재

문득 핸드폰에 아직 저장되어있는 그가 쓰던 휴대전화 번호로 전화를 걸어 보았다.


"지금 거신 전화는 없는 번호입니다. 다시 확인하고 걸어주시기 바랍니다."


핸드폰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기계적이고 형식적인 여자의 목소리는 평소와는 달리 이질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 말투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나는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 번호를 쓰던 사람도 지금 쓰는 사람도 세상에는 없다는 뜻을 정확히 이해하는데는 다소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고작 착신음이 들리지 않았을 뿐인데도 많은 것을 알게 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 목소리를 듣고서 특별한 감정이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또 아무렇지도 않은 것도 아니었다. 그동안 나름대로 유지해왔던 마음의 평정심이 약간은 흐트러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데 그보다는 아무런 감정 없는 전화기 넘어의 기계적인 여자의 목소리를 다 듣고 나서 그 이유를 곱씹어 보는 동안 묘하게도 흐트러진 마음이 다시 진정됨을 느꼈다. 그렇게 그가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2년이 넘었다. 그는 세월호가 쓰러져 바닷속으로 가라앉던 그 잔인한 날에 갑자기 쓰러져 중환자실에 입원해 한 달을 의식을 잃은 채로 있다가 세상을 떠났다.


원인과 병명을 알기 위해 여러 검사를 했었고, 큰 대학병원으로 옮겨 또다시 같은 검사와 새로운 검사를 계속했지만 적혈구 수치가 계속 떨어지는 증상이라는 것 말고 의사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화가 났지만 무기력감에 사로잡혀 의사를 붙잡고 따질 생각도 하지 못했었다.


그는 그렇게 33일 동안 중환자실에 있다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급성 패혈증으로 한 가닥 세상과 이어져 있던 끈을 결국 놓아 버렸다. 간단한 작별인사 조차도 남기지 않고 나와 동생을 남겨두고 그는 그렇게 말없이 세상을 떠나버렸다.


그 해 여름 늦은 밤에 술에 잔뜩 취해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주체할 수 없이 한꺼번에 몰려온 감정에 나는 길바닥에 쓰러지듯 주저앉아 펑펑 울었다. 꺼이꺼이 소리까지 내면서, 정말 누가 죽기라도 한 것처럼 서럽게 울기만 했다. 지나가던 행인 한 사람이 괜찮은지 물어봐 주기도 했지만 대답조차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소리 내어 울다가 주섬주섬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그가 사용하던 번호로 다시 전화를 걸어 보았다.


"지금 거신 번호는 고객의 사정으로 당분간 착신이 금지되었습니다. 다시 확인하고 걸어주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정이 있었던 걸까? 뭐가 그렇게 급했을까? 그가 이렇게 서두르듯 작별인사도 하지 않고 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뭐였을까?. 그리고 그에게 삶이란 그리고 가족이란 어떤 의미였을까? 온갖 물음표가 한꺼번에 떠올랐다.


겉으로는 늘 당당하고 강한 척했지만 그는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겪게 되면 늘 어찌할 줄을 모르고 세상을 등지고 움츠리며 어디론가 숨어들었다. 뒷 수급은 늘 그녀와 나와 동생의 몫이었다. 주로 그녀가 감당해야 했지만


다시 원래의 모습을 회복하는데도 항상 오랜 시간이 걸렸다. 늘 가족보다는 친구들에게 많은 시간을 할애했고 친구들을 더 아끼고 함께 어울려 지냈었다. 자주 만나기는 했지만 그는 그렇게 가족 곁을 떠나서 살아갔다. 그리고 그의 장례식장에 찾아온 그의 친구들은 채 10명도 되지 않았다.


그런 모습에 씁쓸했고 그의 삶에 실망했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이 그의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살아있는 동안, 친구들과 함께 지내는 동안은 즐겁고 행복했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그의 부재로 인한 외로움과 어려움을 곁에 안고 살아온 나와 동생의 삶이 너무 초라해질까 두려웠다. 한 동안 길바닥에 앉아 울면서 그의 인생과 의미, 그리고 그와 나와의 시간들을 천천히 되새겨보았다.


그의 사정을 미리 알았더라면, 당분간 기다리고 있으면 금지된 착신이 풀리고 다시 통화할 수 있었을까?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차마 그가 쓰던 번호를 없애지 못하고 정지시켜 놓고 매달 기본요금의 요금청구서를 받고 있었던 것이 떠올랐다.


그는 예고 없이 떠났지만 그가 쓰던 번호는 남아있었다. 아니, 남겨두었다. 그럴리는 없겠지만 혹시 다시 통화가 가능하다면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만약 작별인사를 할 수 있었다면 나와 동생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었는지 묻고 싶었다. 그렇게 그가 쓰던 번호를 한 동안 없애지 않고 남겨두었다.


그를 떠나보내는 날 나는 그에게 그리고 나에게 약속을 했다. 남은 가족들을 잘 보살피겠노라고 그리고 절대 포기하지 않고 주어진 삶을 피하지 않고 살아가겠다고, 그리고 예전처럼 다시 우리를 남겨두고 떠났지만 원망하지 않을 테니 그곳에서라도 우리를 잘 지켜봐 달라고 부탁했다.


얼마 전 처음으로 꿈속에 나타나서 내가 잘 지내냐고 물었고, 그는 잘 지낸다고 말했다. 그게 다였다. 나는 꿈속에서도 그 말을 하고 펑펑 우느라 다른 말을 하지 못하였다. 아마 이제는 예고없이 그가 불쑥 찾아오는 일도 그를 떠올리는 일도 서서히 줄어들 것이다. 그리고 묻고 싶었던 말들도 더 이상 떠올리지 않고 잊고 지낼지도 모른다.


꿈속에서 그는 정말 환하게 웃고 있었고 잘 지내는 것 같아 보였다.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다음 날 동생과 아내에게 꿈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내 마음이 그 꿈으로 인해 편해졌다고 생각했는지 둘 다 나에게도 다행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나는 둘에게 말했다.


"그래, 이제는 우리가 잘 지내야 할 차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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