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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싸라기 Aug 25. 2022

출근길 소원.

늘 그렇지만 왜 아침 기상은 가뿐하고 상쾌할 수는 없는지 참 궁금하다. 그래서 매스컴에서 간혹 상쾌한 아침이라든지 좋은 아침이라는 상투적인 말을 하며 마네킹 같은 미소를 짓는 연예인이나 방송인들을 보면 항상 이질감을 느낀다. 알람 멜로디 역시 고르고 골라서 여러 개의 음원 중에 마음에 드는 것으로 골랐어도 선택된 그것에는 아침마다 신경질적인 것을 넘어서 반사적 스트레스인 것만은 분명하다. 스누즈 알람 설정 역시 몇 분에서 몇십 분은 낮 동안의 몇 분 몇십 분보다 빠르게 흘러간다. 결국은 시간에 쫓겨서 이불을 걷어차고 나서야 매일 아침마다 하는 루틴이 시작된다. 오늘 아침 루틴은 약간 별스럽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야식 후유증" 정도면 알맞다고 생각한다. 빠른 취침을 한다면 아침에 후회란 없었을 텐데 그것이 참 쉽지는 않은 것이 사실이다. 바로 그 고비와 유혹을 못 넘기고 먹고 마시면서 후회를 하면서도 스스로 안타까운 선택을 하는 것이 인간이 아니던가.게다가 자기합리화로 마음속의 죄책감까지 몰아내고 스스로 세뇌하여 결국은 아침에 후회라는 녀석을 매번 만난다. 

그 많은 무리들 중에 한 사람이 바로 나다.

이상한 꼬마

일어나자마자 나의 헝클어진 머리만큼이나뒤죽박죽인 내 머릿속에는 출근하기 싫고 어떻게 하면 좀 더 늘어지게 잠도 자고 가고 싶은 곳에 마음 놓고 여행도 가고 싶은.... 자유로운 생활에 대한 동경심이 늘 자리 잡고 있다. 언제 하늘에서 돈벼락이라도 떨어지면 가능할 법도 한데 말이다. 오늘은 아는 사람은 다 알법한 로또 당첨 확률이 높은 목요일이다. 어떤 유튜버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나는 무조건 맹신하는 편이다. 퇴근 후 잊지 말고 꼭 로또를 사야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하며 무거운 몸뚱아리를 일으켜 세워본다. 숙취 때문인지 아침식사는 생각도 안 난다. 갈증으로 인하여 냉장고에서 차가운 생수를 입으로 가져가서는 물통채로 벌컥벌컥 들이켠다. 청량하고 정신이 번쩍 들만한 물 분자들이 폭포수처럼 목구멍으로 힘차게 곤두박질친다. 늘 아침식사를 이렇게 때우는 것이 습관이 된지 오래다.냉수 한 모금으로 아침을 대신하고는 서둘러서 출근을 하기 위하여 차에 시동을 건다. 오래된 똥차 시동 소리가 시답잖다. 돈벼락을 맞으면 당장에 

멋진 외제차를 사는 생각을 해보지만 쓸데없는 짓이다.

"제기랄 허구헌 날 이런 식으로 살아야 하나... 빌어먹을."

혼자 툴툴거리며 운전석에 앉은 나는 어제와 같은 방향으로 습관적으로 차를 몰아서 회사로 향한다. 매일같이 출근하는 길이지만 매일같이 짜증 나는 이 도로에 진저리를 친다. 그렇게 운전을 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한탄 섞인 혼잣말을 내뱉어 버린다.

"아.... 제발 뭔 일이라도 좀 생겨라!! 소원을 들어주는 수호천사라도 안 나타나나? 

돈벼락 소원을 들어주면 뭐든지 할 텐데..!!"

혼잣말처럼 내뱉어버린 말이지만 차라리 주문에 가까운 힘 있는 어투였다.

그렇게 길을 가다가 회사 근처에 도착할 무렵이었다.

우회전을 하기 위하여 속도를 줄이고 핸들을 돌려서 우회전을 막 하려던 찰나 자그마한 꼬마가 길 위에 서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순간 놀라서 핸들을 꺾는 바람에 인도에 있는 전봇대에 충돌할 뻔했다.

"와.. 이 씨 뭐야 이거 저놈이 미쳤나."

다행히 사고는 면했지만 놀란 가슴에 숨을 몰아쉬며 뒤를 돌아 보았다.

작은 키에 뽀얗고 귀여운 남자아이가 빙그레 웃고 있는 게 아닌가...

나는 놀란 마음이 어느 정도 진정되자 다음에는 울컥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러고는 발로 차 문을 걷어차듯이 열고는 그 앙증맞은 꼬마에게로 걸어갔다. 꼬마는 작은 체구였지만 마치 장군의 당당함처럼 허리춤에 양팔을 얹은 채로 의기양양하게 나를 노려보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야 꼬마야 너 도대체 여기서 뭐 하는 거니? 사고 날뻔했잖아... 너 죽으려고 환장한 거니? 어?"

나의 고함소리에도 꼬마는 놀란 기색도 없이 빤히 올려다보았다. 그런 태도에 나는 더욱 화가 나서 

꼬마를 더욱 윽박질렀다.

"야 꼬마야 뭐라고 말을 해봐 부모님은 어디 계시니?"

나의 고함소리에도 꼬마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아니 오히려 어이없다는 표정에 가깝다는 게 맞는 표현이었다.

"아저씨...."

꼬마가 입을 열었다. 그러고는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내려 한다.씩씩거리며 꼬마의 움직임을 지켜보는 나는 이상함을 느꼈다. 그 이유는 꼬마의 주머니에서 나온 물건 때문이었다. 그 물건은 바로 무언가 들어있는 듯한 세 개의 주머니였다. 이상하기도 하면서 궁금해진 나는 꼬마에게 물었다.

"그게 뭐니?"

나의 질문에 시큰둥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이게 뭔지 알려 드리기 전에 먼저 저를 왜 부르신 거죠?"

꼬마의 알 수 없는 질문에 나는 황당하고 어이없는 기분에 순간 머리가 멍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 나를 지켜보더니 꼬마가 이어서 질문을 한다.

"아이 참... 아저씨가 저를 불렀잖아요..."

"뭐어..?내가..."내가 언제 널..?난 너를 모르는데?"

나의 당황하는 모습에 꼬마는 약간의 짜증 나는 얼굴로 대답한다.

"아까 운전하면서  소원을 들어주면 뭐든지 한다면서요?"

"어? 뭐라고.... 너.. 너.. 도대체 누구니?"

나는 도대체가 알 수 없는 아이 존재로 인하여 이제는 이 꼬마가 두렵고 무서운 기분마저 들었다.

몇 초간의 짧은 정적이 두 사람을 이어주고 있었으나 체감상으로는 시간이 멈춘듯한 기분이었다. 이어서 꼬마는 무언가 들어있는 듯한 세 개의 주머니를 내 앞에 들어서 흔들어 보이며 이렇게 말하였다.

"자요... 아저씨가 말한 소원.... 어떤 걸 선택하시겠어요?"

"뭐? 소원.... 선택을... 하라고?"

"네.... 선택하세요. 단 조건이 있어요... 내가 말하는 걸 잘 들으셔야 해요. 선택하신 후에는 되돌릴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누구나 실수할 수는 있으니까 뭐 한 번 정도는 되돌릴 수 있는 기회는 드릴게요. 대신 주문을 외우셔야 해요."

"조건? 선택? 주문?"

"네... 주문은 별거 아니에요... 반성합니다. 기회를 주세요라고만 말씀하시면 돼요."

도무지 알 수 없는 꼬마의 등장과 이상한 제안 그리고, 무언가 알 수 없는 힘으로 나를 거부할 수 없는 케이지에 가둬두는 느낌을 받았지만 한편으로는 호기심이 발동하기도 하였다.

"무엇을 선택하면 되는 거니..."

"음.... 여기 세 개의 주머니에는 재물, 시간, 가족에 해당하는 소원이 들어있어요. 

어떤 걸 선택하시겠어요?"

"재물... 시간... 가족이라고?"

"네"

나는 더더욱 궁금증이 더해져서 보채듯이 물어본다.

"아아니... 그게.. 말이다... 그냥 그렇게만 말하지 말고.. 어떤 내용인지도 설명을 해줘야지 꼬마야."

나는 조금 전 나고가 나서 꼬마에게 화가 난 것도 이미 잊은 상태다.꼬마는 귀찮다는 듯이 내 앞에 손을 들어 보이던 주머니를 툭 내려놓으며 설명을 한다.

"이 주머니 안에는 세 가지 물약이 들어있어요. 노란색 주머니는 재물인데 이것을 선택하면 얼마든지 부자가 될 수 있어요. 대신 아저씨 나이에 30년을 더하시게 될 거예요. 파란색 주머니는 시간인데 이것을 선택하면 원하는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데 최대 30년은 젊어지실 거예요. 마지막 빨간색 주머니는 가족인데요. 이것을 선택하면 화목하고 사랑이 넘치는 가족관계가 개선되거나 유지될 거예요. 대신에 시간은 현재가 될 것이고요 재물도 빚지지 않을 정도의 평범한 일상으로 사시다가 생을 마감하시게 될 거예요. 자 그럼 됐죠? 선택하세요! 선택은 한 번이고요 경험하시고 선택한 것이 마음에 안 들 경우 다시 한번의 선택 기회는 가능하답니다."

꼬마는 설명을 마친 후 한쪽 손에 들려있는 주머니를 다시 내 앞에 올려다 보이며 흔들어댄다. 나는 짐짓 겁이 났지만 설명을 듣고 난 후 더욱더 호기심이 생겼고 이미 머릿속에는 무엇이 더 좋을까 하고 계산까지 하고 있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노란색 알약 

잠시 고민을 하다가 나는 제일 먼저 재물을 생각하였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내가 부자를 얼마나 꿈꾸었던가... 나이를 좀 먹게 돼서 노인이 되면 어때 돈만 있으면 편안한 노후가 될 테고 그럼 된 거 아니야? 여행이나 다니면서 즐겁게 살면 되지."생각이 여기까지 이르게 되다 보니 

더 이상 고민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래 네 말이 사실이라면 나는 노란색 주머니를 선택하겠어."

내 말을 들은 꼬마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노란색 주머니를 내 앞에 내밀었다. 순간 왠지 모를 야릇한 달콤한 향이 코끝을 스쳐갔다.나는 꼬마가 내민 노란색 주머니를 받아들고 두 손으로 주머니를 열어서 안을 들여다보았다. 약간 황금빛에 가까운 노란색 캡슐 형태의 알약이 한 알 들어있었고 크기는 일반적인 알사탕 크기보다는 약간 큰 것이었다. 주머니 속에서는 달고나향 같기도 하고 과일향 같기도 한 야릇한 달콤함이 진하게 올라왔다.나는 무언가의 힘에 이끌리듯이 손을 주머니 속으로 집어넣고 알약을 집어 든다.약간 말랑말랑한 느낌이다. 꺼내어 눈앞에서 자세히 보았다. 여전히 금빛을 띤 노란색의 구슬 형태 알약이다. 잠시 망설였지만 다시 결의에 찬 표정으로 입으로 냉큼 가져갔다. 달달한 맛이 혀끝에 맴돈다. 평소에 사탕을 먹던 습관으로 인하여 나도 모르게 어금니로 알약을 짓눌러 깨물었다.

"툭" 하는 소리와 함께 알약 안에 들어있는 시럽 같은 느낌의 액체가 입안 가득 퍼졌다.무척 달콤하고 짙은 과일향 같은 맛이 온몸에 퍼지는듯했다.그렇게 우물거리며 맛을 음미하던 중 갑자기 온몸이 공중에 붕 뜨는 기분이 들었다.그러더니 순간 내 주변의 사물들이 안개에 가려지듯이 뿌옇게 아련히 가려져서 안 보이기 시작했다. 동시에 나 역시 살짝 기절한 듯 눈을 감았고 다시 정신을 차린 후에 주변을 둘러보니 꼬마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내 차를 보고는 깜짝 놀랐다. 고물똥차인 내 차가 고급 외제차로 변해있는 것이 아닌가... 이차가 내 것인지 알게 된 건 어렵지 않았다. 차량번호가 내 차 번호와 같았기 때문이었다.

"세상에 이게 뭔 일이래...?"

나는 어리둥절한 기분으로 꼬마가 한말이 떠올랐다.

"정말 그 꼬마가 말한 대로 부자가 된 거야?"

차 안으로 들어가서는 더욱 놀랐다. 내가 노인이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뭐... 뭐야... 진짜 내가 노인? 내 나이가 정말 80세야?"

아닌 게 아니라 나이가 50세에서 80세로 변하자 운전석에 앉은 나의 허리는 무척 아팠고 마음은 안 그런데 몸이 둔해진 느낌이었다. 사람 마음이 간사해서 나이가 많아도 돈만 많으면 괜찮다고 말한 내자신이 순간 후회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갑을 열어보고는 이내  마음이 풀렸다.

"어? 뭐야 플래티넘 카드에 현금은 언제 이렇게 많아진 거지?"

손목에는 값비싼 명품시계가 채워져 있었으며 자세히 보니 입고 있는 양복도 명품 양복이었다. 나는 더욱 자세한 것을 확인하기 위하여 집으로 차를 몰았다.평소 타고 다니던 똥차와는 비교가 안되는 승차감이다.

"역시 돈이 좋긴 좋구먼... 허허.."

마치 고속도로에서 주행을 하듯이 난폭운전에 가까운 주행을 하고는 바로 집 앞에 차를 세운다. 그리고 마음과 달리 움직여주지 않는 다리로 빠른 걸음을 재촉했다.

"띵동~띵동~"

"누구세요~?"

"여보 나야 문 열어."

"네? 누구시라고요?"

"아 나라니까 어서 문 열어!!"

왠지 모를 여성의 목소리인듯싶었지만 분명히 내 집이기에 잘못 들은 것으로 생각하며 재촉하는 내 목소리에 짜증이 섞인 큰 목소리가 들린다.

"우리 집에는 남자가 없는데 누구세요?"

"네? 뭐라고요?"

나는 순간 당황했지만 분명히 다른 여성의 목소리임을 감지했기에 존댓말이 튀어나왔다. 내가 말을 마치자마자 문의 걸쇠를 걸고는 한 여성이 문을 빼꼼히 열고는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며 말한다.

"집 잘못 찾으신 거 아니에요? 저희 집엔 남자가 없어요... 엄마와 저 둘이 살거든요.."

"아.... 아니... 여기 여기가.. 분명히 맞는데..."

30대 조반쯤으로 보이는 여성은 여전히 의심을 풀지 못하고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한다.

"할아버지... 집을 잃어버리신 거예요? 도와드릴까요?"

"아........ 아니 그게..."

순간 번쩍 정신이 들었다. 아까 그 꼬마의 소원 때문에 모든 것이 바뀐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내 집은 어디란 말인가....

나는 죄송하다는 어정쩡한 말과 함께 밖으로 빠져나와서 휴대폰을 쳐다본다. 왜 이 생각을 못 했는지 주먹을 쥐고 스스로 머리를 쥐어박는다.

"진작에 전화할 생각을 하지.. 으이그. 멍텅구리."

갑작스러운 변화에 놀라서 서두르다 보니 이런 일조차 생각을 못 한 것이다.

휴대폰에는 다행히 아내의 전화번호가 존재했다. 전화기 신호가 울리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아내가 전화를 받기를 기대하며 두 손으로 전화기를 받쳐 들고 귀에 바짝 가져다 댄다.

평소 아내에게 전화를 이렇게 애틋하게 한 적이 있던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 내 상대편에서 전화를 받았다. 다행히 아내였다. 아내는 다짜고짜 나에게 야단을 치기 시작했다.

"아니 당신은 아침 일찍 나가더니 도대체 어디서 뭘 하다가 지금 전화하는 거예요? 오늘 점심 식사 

예약은 잊지 않은 거죠?"

갑자기 모든 게 바뀌어버린 상황에서 익숙한 아내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반가웠다.

"어어? 아... 그래그래.. 내가 잊을 리가 있어? 아니 근데 우리 집이 어디더라..?"

갑자기 집의 위치를 묻는 나에게 아내는 핀잔을 준다.

"아니 이 영감탱이가 노망이 났다. 자기 집 주소도 잊어버려서 지금 나한테 묻는 거예요?"

"아니... 그게 아니라.... 뭘 좀 샀는데 택배를 부치려고 하니까 갑자기 주소가 생각이 안 나네 허허허."

"으이구...영감탱이도 원...하기사 얼마 전 이사 왔으니 그럴 만도 하구려... 받아 적어요! 또 잊어버리지 말고..."

"아... 그래그래 고마워."

아내가 불러준 주소를 휴대폰 메모란에 잘 적어두고는 서둘러서 집으로 향한다. 과연 이사 간 집은 어떤 모습일까. 부자가 됐으니 정말로 으리으리한 집일까? 나는 기대와 궁금한 마음으로 악셀을 힘껏 밟는다.

집에 도착한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넓은 마당도 그러하지만 한쪽 구석에는 오줌 누는 아이의 동상에 연못과 분수까지... 게다가 잘 지은 저택은 삼층 구조인데 으리으리한 것이 마치 궁전과도 같은 장엄함까지 느끼게 해주었다. 또한 평소 내가 그토록 꿈꿔온 골드리트리버라는 견종의 개도 두 마리나 뛰어노는 것이 아닌가.그렇게 혼자서 집을 보며 놀라고 있는 사이에 아내가 한껏 차려입은 채로 부리나케 문을 열고 나오고 있었다.

"늦었어요... 어서 서둘러요. 오늘 식사 자리가 꽤나 중요한 자리이니까 당신은 괜한 소리 하지 말고 그저 점잖게 미소만 짓고 있으면 돼요."

"어..?무슨 자리인데?"

"이 양반이 오늘 왜 이래...?오늘 땅주인을 만나서 계약하기로 한 날이잖아요." 

"땅주인이라고...?"

"그래요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그 땅을 눈독 들였어요. 드디어 주인이 판다고 할 때 얼른 계약합시다."

아내는 흥분과 기대로 얼굴에는 약간의 홍조까지 띠며 들뜬 모습이다. 땅이라니... 우리가 집도 모자라서 땅까지 사는 그런 부자까지 된 건가? 어쨌든 나는 아내를 따라나선다. 도착한 곳은 유명 일식집인데 바깥에 대문만 봐도 제법 방귀라도 뀐다는 사람 아니면 들어가기 힘들듯하게 보이는 고급 식당이었다. 우리가 일찍 도착했는지 상대방은 아직 도착 전이었다. 잔잔한 피아노 연주곡이 흐르고 있었고, 실내에는 과하지 않은 재스민 향의 디퓨져 향기가 기분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나는 상대방이 나올 때까지 차분한 자세로 앉아서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따뜻한 차가 식도를 타고 넘어가면서 그동안의 흥분과 긴장감이 어느 정도 해소되는 느낌을 들게 해 주었다. 10여 분 정도 기다렸을까 말쑥한 감색 정장 차림의 중년 남자와 어깨에 숄을 두른 모습이 돈 꽤나 있어 보이는 인상을 주는 약간은 도도한 얼굴을 한 부인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갯짓으로 인사를 한다. 우리는 마치 두더지 게임 기계의 두더지처럼 동시에 벌떡 일어서며 두 사람에게 인사를 건넨다.

"처음 뵙겠습니다."

"아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호호."

그렇게 인사가 오고 간 후 메뉴판을 서로에게 양보하며 어떤 비싼 음식을 시키더라도 얼마든지 사주겠다는 분위기였으며 마치 이자리는 부르주아의 만찬장이 된듯 하였다.진심인지 거짓인지 서로 하하 호호 해가며 덕담과 칭찬으로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고 있었고, 자연스레 주식과 땅 이야기로 각자의 부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나누며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처럼 대화는 점점 더 길고 깊어만 갔다. 나는 제3자의 역할에 충실했으며 대화를 집중해서 듣고 있었다.

"네네 그러시지요.. 그렇게 해주신다면 저희로서는 너무나 감사한 일이죠... 호호호."

아내는 기분이 좋은가 보다. 생각보다 좋은 조건에 땅을 살 수 있는 모양이다. 그렇게 모인 자리는 서로에게 인사를 건네고는 끝이 났다. 나와 아내는 차에서 식사 자리에서 나눈 대화에 대하여 얘기를 했다.

"참 자기가 돈이 많으면 얼마나 많다고... 아주 유세를 해요 유세를 해. 흥!"

"왜 그래? 아까는 분위기만 좋더구먼... 당신은 기분까지 좋아서 웃으며 얘기까지 하고서는."

"참내 웃으면 다 좋은 거유? 이 양반이 세상 물정을 몰라 전부 비즈니스잖아요... 형식적으로 그러는 거지 뭐 속까지 좋아서 그러겠어요? 그 여자 하는 소리 못 들었어요? 실컷 제자랑만  늘어놓더니 선심 쓰는 척 쥐똥만큼 깍아주잖아요.그 가격은 싸다고 볼 수 없는 거예요. 일단 생각 좀 해보기 위해 시간을 벌 생각으로 고맙다고 한 거지..."

나는 놀랐다. 언제부터 내 아내가 돈에 대해서 이렇게 무서운 여자였던가... 콩나물 반찬과 된장찌개만 놓고 식사를 하더라도 늘 감사한 마음으로 기도를 했고, 검소했으며 욕심이라고는 없는 여자였었다. 부자가 되면 다 이렇게 변하는 건가 하는 생각에 나는 덜컥 겁까지 났다.

땅주인을 만나고 부동산에 대한 얘기로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이었다. 넓고 아늑한 거실에서 부자가 된 기분을 만끽하고 있는 오전이었다. 갖 짜낸 달콤한 오렌지 향내가 거실을 가득하게 진동을 하더니 아내가 두 잔의 신선한 오렌지 주스를 들고 거실로 걸어왔다.

"당신 주식은 요즘 어때요? 요즘 심상치가 않단 말이야.. 쯧." 

미간을 찌푸리며 노란색 액체를 입술에 가져다 대며 아내는 미간을 찌푸린다. 어떻게 저렇게 향기로운 주스를 마시면서도 인상을 쓸까 생각하다가 나는 아내에게 질문을 한다.

"당신은 아침부터 돈 얘기 말고는 할 얘기가 없소? 우리 나이에 이제는 가질 만큼 가졌으면 좀 더 행복한 인생을 위하여 다른 할 얘기는 없냐는 말이오."

나의 질문에 아내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동그란 눈을 뜨며 대꾸한다.

"아이고 참 당신도... 아니 세상에 돈 버는 일 말고 재미난 일이 또 뭐란 말이유? 지금 이 모든 게 우리 노후 준비에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크고 넓은 집 있겠다. 좋은 차와 여유자금 또한 넉넉한데 뭐가 더 필요하다는 말이요?"

나의 다그침에 아내는 신경질적인 반응으로 오렌지주스가 담긴 유리잔을 

거실 테이블에 깨질 듯이 내려놓는다.

"제발 좀 정신 차려요... 우리 나이에 이 정도는 누구나 하고 사는 거예요. 세월이 갈수록 물가는 오르고 돈의 가치는 계속 떨어지는데... 내일 죽을 거면 몰라도 앞으로 20년 이상은 더 살아야 할 텐데 10년 뒤 도 20년 뒤 도 이렇게 유지가 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내일 일을 모르는 게 인간 아닌가? 그런데 앞으로 10년 20년을 걱정하며 현재의 가진 것에 만족을 못 하는 아내 모습을 보며 나는 왠지 모를 서글픔이 마음속에서 생겨났다.도대체 얼마를 가져야 행복할 수 있는 것인가? 내 앞에서 무언가 열심히 설명하는 아내의 말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나는 깊은 생각에 빠져들고 있었다.

이건 아닌데.. 이런 걸 바라는 게 아니었는데...

나는 돈만 있으면 뭐든지 좋게만 변할 거라는 막연한 생각만 했을 뿐, 그로 인한 많은 변화는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인간이란 원래 그런 존재였던가? 욕심에는 정말 끝이 없는 것일까? 정말로 완벽한 인생, 완벽한 행복에는 어떤 것들이 있어야 완벽하게 이루어지는 것일까?나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묻고 있었다.그러다가 꼬마가 말한 두 번째 선택을 떠올렸다.

"한 번의 기회를 준다고 했었어.. 맞아... 단순히 돈만 많다고 부자가 되지는 않아... 여유롭고 완벽한 상황! 시간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 진정한 부자가 아닐까?"

그러나 그 꼬마를 어떻게 다시 만나야 하는지 떠오르지 않았다. 이리저리 생각하다가 떠올랐다.

"맞다 맞아... 주문을 외우라 했지!"

이미 늙어버린 나는 목이 자주 마르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이왕이면 좋은 목소리로 외치고 싶어서 마치 웅변대회에 연사가 목청을 가다듬는 식으로 기침소리를 두번 냈다.

"흠! 흠!.."

"반성합니다! 기회를 주세요!"

그렇게 외치자 순간 약간의 어지럼증이 생겼다.

그러다가 흠칫 놀랐다. 누군가 뒤에서 내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쳤기 때문이다. 꼬마였다.

"그럴 줄 알았어요. 헤헤."

남의 속도 모르고 천진난만하게 꼬마가 웃었다.

"뭐야 넌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들리는구나?" 

"안다기보다 저를 처음 만난 사람들 모두 처음에 선택하는 게 그거였거든요."

"음... 그렇겠지."

"자요 이제 어떤 걸 선택하시겠어요? 시간과 가족 

둘 중에요."

나는 다시 고민을 하다가 시간을 선택을 했다.

시간을 30년만 되돌릴 수 있다면 잘못된 선택으로 허비한 청춘을 다시 바로잡을 수 있고, 굳이 일확천금이 아니더라도 그 시간 동안 얼마든지 노력해서 내 손으로 자수성가를 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시간으로 하겠어!"

"역시... 그렇군요."

"왜? 다른 사람들도 그런 판단을 했니?"

"음... 딱히 그렇지도 않아요. 하지만 대부분 그렇게 결정하긴 해요. 자 그럼 받으세요. 후회는 없겠죠? 이젠 되돌릴 수 없어요."

"그래 알았어."

나는 꼬마가 내민 파란색 알약이든 주머니를 받아들었고 주머니에 정신이 팔린 순간 꼬마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파란색 알약.

나는 파란색 알약이 든 주머니를 열었다. 주머니 안에서는 민트향 같은 시원한 향이 흘러나왔다.

나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서둘러 집어 들어서 입안으로 넣고 몇 번 입안에서 굴리다가 과감하게 씹었다.

경험도 있겠다 빨리 변하고 싶은 마음이 앞섰던 것이다.그러자 발끝에서부터 머리 위쪽까지 바람이 올라오는듯한 기분이 들면서 회오리 같은 바람이 온몸을 휘감았고 그 바람 때문에 순간 눈을 질끈 감았다.

"제발 제발..."

나는 막연한 바람으로 기도하듯이 혼자 중얼거렸다.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회오리는 점점 그 강도가 약해지더니 이내 잠잠해졌다. 나는 왼쪽 눈부터 살짝 실눈을 뜨기 시작했다. 한 번의 경험이 있지만 역시 놀랍다. 나의 몸 상태가 20대 초반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변화의 놀라움에 어정쩡하게 서있을 때 누군가 나의 뒤통수를 후려치는 바람에 앞으로 순간 고꾸라 질 뻔했다.

"야 인마 뭐 하고 있어 담배나 한대 빨러가자니까."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친구 녀석이었다. 이놈은 그다지 모범생은 아니었다. 아니 차라리 불량배에 가까운 놈이었고 주변에서는 문제가 일어나면 이 녀석을 먼저 떠올릴 정도로 요주의 인물이었다. 그런 녀석과 어울리는 것은 자의반 타의 반으로, 심약했던 나에게는 어느 정도 방패가 되어주기에 어울리는 것이었다. 

사실 겉멋이 든 것이다.

"으응... 그래 알았어. 가자.."

나는 친구 녀석과 골목 안쪽에서 담배를 피우며 길가는 여자들을 힐끔 거렸다. 그러던 중 친구 녀석이 

말을 꺼낸다.

"야 오늘 저녁에 한잔하고 나이트클럽에 가서 여자나 꼬시자."

"술? 여자?"

"아놔 이놈이 오늘따라 왜 이렇게 띨하게굴어."

녀석은 평소답지 않은 나에게 핀잔을 주며 주먹으로 때리는 시늉을 한다. 나는 짐짓 놀라 한 발을 빼면서 

손사래를 친다.

"아아 알았어 그러지 마.."

"으이구 좀생이 같으니라고... 잘 챙겨 입고 나오란 말이야 그리고 돈도 좀 갖고 와라. 알았지?"

"어? 나 돈 없는데..."

돈이 없다는 말에 그 녀석은 주먹으로 왼쪽 가슴을 툭 치며 말한다.

"이 새끼가 디질라고...디지기싫으면 잘해라. 응?"

"아... 알았어."

그렇다 나는 그 녀석의 친구라기보다는 녀석의 꼬봉이었던 것이다. 그 녀석은 협박 같은 당부를 마치고 

털레털레 자리를 뜬다.

"아씨... 하필이면 이때로 돌아온 거지? 좀 더 뒤로 가든지 좀만 앞으로 가든지 하지... 다시 만나기 싫은 녀석인데."

그렇게 저녁이 되었고 녀석과 나는 술을 거나하게 걸치고는 나이트클럽에 가서 춤도 추고 여자도 꼬시고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제 성인이 되었다는 기분에 술은 거의 매일 마시다시피 했으며,유흥꺼리를 찾았고 어른 흉내를 내며 그렇게 시간을 허비했던 것이다.

"아니야. 이러면 안 돼! 똑같은 실수를 다시 반복하면 안돼!" 

나는 다시 과거로 온 목적을 생각하며 여자들에게 잘 보이려고 안간힘을 쓰는 친구 녀석을 뒤로하고 몰래 자리를 떴다. 나중에 알게 되면 난리 법석을 떨겠지만 지금은 예전과 다르기에 도망치듯이 자리를 빠져나온 것이다.다음날 그 녀석의 호출도 외면하고 되도록 멀어지기 위해서 피해 다니며 공부를 하기 위해 도서관으로 향했다.나는 가정 형편이 안 좋은 이유로 공부와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했다. 나이가 젊기에 아르바이트 자리는 어디서나 환영이었다. 오전 10시부터 저녁 10시까지 레스토랑에서 서빙 일을 했다. 식사도 제공해 주기 때문에 월급은 그대로 모을 수가 있었다. 그렇게 생활을 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그래 예전 같으면 그 녀석과 계속 어울리며 시간만 허비했을 텐데 그나마 이렇게 인생을 조금 수정했을 뿐인데 미래가 달라지는 희망이 보이네."나는 스스로 대견하게 생각하며 시간을 선택한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3개월쯤 지나자 일도 익숙해졌지만 12시간 일을 하며 공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란 것을 느끼게 되었다.저녁 늦게 마치고 몸이 고단 해지 자연스레 공부는 뒷전이 되기 십상이었다.

"아... 피곤해 내일 하면 되지 뭐 나이가 아직 20대인데 하루 이틀 쉰다고 크게 달라지겠어?"

그렇게 나는 스스로 자위를 하며 불량스러운 친구 녀석은 아니지만 같은 업종에서 알게 된 동료들과 일을 마치고 술자리를 자주 갖게 되었고, 점점 공부와는 다시 멀어져 갔다. 그러면서 다른 곳에서 십만 원 더 준다고 하면 가게 옮기기를 밥 먹듯이 하게 되었고, 기분 나쁘다고 한 잔, 기분 좋다고 한 잔, 그렇게 나는 과거로 온 목적을 망각하며 20대라는 여유로움에 빠져서 30대가 되었고 제대로 된 직장을 갖기 위해서 노력도 안 하고 시간을 보내고 말았다.운명은 앞에서 날라오는 화살이라 피할 수 있지만, 숙명은 뒤에서 날라오는 화살이라 피할 수 없다고 했던가...

나의 시간은 소원으로 인하여  이 시간에 오게 됐지만 다른 이의 시간은 여전히 그 시간대에 이루어지는 것을 몰랐다. 그것을 느끼게 된 것은 30대 초반에 어느 토요일 오후였다. 주머니의 휴대폰이 울렸고 전화기를 받아든 나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길거리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지금 어디냐? 빨리 집으로 와라. 아버지가 암에 걸리셨다."

지금까지 미래를 준비 못 한 채로 시간을 보낸 나는 다시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아버지의 후두 암 말기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게 되었고, 나는 아버지의 병원비를 위해서 사채를 제외한 모든 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아버지는 그렇게 일 년여를 투병하시다가 결국 돌아가시게 되었다. 결국 남은 것은 무리한 대출로 인한 빚만 남았다. 역시 인간은 변하지 않는 존재인가?다시 시간이 주어졌건만 미리 살아보고도 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하다니.... 결국 제자리로 돌아와서 이렇게 되는 것인가. 남은 시간은 내가 잘 알고 있다.

이렇게 빚에 허덕이며 10년 정도를 겨우겨우 살다가 40대를 넘겨서 겨우 늦게나마 배우자를 만나고 직장을 얻어서 간신히 생활하며 일확천금만 바라며 살아가는 중년이 되는.... 지지리 궁상스러운 모습인 것이다.

그렇게 원점으로 돌아가는 스스로의 모습을 보며 허탈함에 그리고 자책감과 자괴감으로 매일이 술이었다.

도무지 다른 방법이 생각 안 날뿐더러 당장의 답답하고 허한 심정에는 술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취중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돈으로도 해결 안 되고, 시간으로도 해결이 안 되고, 그럼... 가족이 정답이란 것인가? 도대체 가족이 뭐가? 돈도 없고 시간도 없는 중년에게 가족이 무슨 대안이란 것인가?"

나는 씁쓸한 마음에 술잔만 비워냈고 그렇게 술병은 계속해서 늘어갔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것.

"아... 도대체 모르겠어. 인생에서 정말 뭐가 중요한지...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는지..."

늘 술에 취한 채로 한탄이 섞인 혼잣말을 버릇처럼 해대며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탁탁"

술어쩔어서 고개를 숙이고 있을 때 술병이 널브러져서 고약한 술 찌꺼기 냄새가 진동하는 밥상을 누군가 노크하듯이 두드리는 소리에 힘없이 고개를 들었다. 꼬마였다.

"너.... 너..."

"왜요? 소원이 끝나서 안 나타날 줄 알았어요?"

"어? 으응..... 어쩐 일로 여기에?"

나의 얼떨떨한 모습에 꼬마가 나이 맞지 않게 미간에 주름을 지어가며 심각하면서도 화난듯한 표정으로 노려보았다. 그 모습에 왠지 미안하기도 하면서도 두려운 마음에 살짝 외면하면서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렇게도 모르겠어요?"

"뭐... 뭐를?"

"살아가는 방법을요... 아주 단순한데 꼭 떠먹여줘야 아시겠냐구요!"

꼬마의 목소리는 어린아이의 똘망한 목소리였지만 말에는 어른스러움이 묻어나는 듯한 강렬함이 있었다.

"아... 그게... 글쎄 그렇더구나. 도무지 모르겠어."

나는 고개를 숙이며 말끝을 흐렸다. 그 모습에 꼬마는 권하지도 않은 맞은편 자리에 털썩 주저앉으며 팔짱을 끼고 노려보며 말을 한다.

"아저씨. 잘 들으세요! 저는 아저씨의 수호천사예요. 아저씨가 출근할 때 소원을 빌었던 그 수호천사요. 그리고 내가 누구를 닮았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나는 그 말에 꼬마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순간 소름이 끼쳤다. 그 꼬마의 모습은 나의 어릴 적 모습과 많이 닮아 있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놀라며 양손을 뒤로 젖힌 채로 입을 벌리고 있었고 꼬마는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일찍이 아저씨의 어릴 적 모습으로 나타나면서 어느 정도 눈치를 채리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하면 뭔가 빨리 깨달을줄 알았거든요.어쨌든 아저씨! 어떻게 하면 행복한 인생이 될 수 있는지 고민되시죠?"

뭔가 답을 줄 것만 같은 물음에 은인이라도 만난 듯 상체를 일으키며 얼굴을 바짝 갖다 댄다.

"그래그래 알고 있는 게 있다면 제발 알려다오 꼬마야! 아니 수호천사님."

꼬마는 그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낮은 음성으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재물은 정해져 있어요. 원한다고 가질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사람의 그릇의 크기에 따라 주어지는 거예요. 아무리 많이 주어진다 해도 그릇이 안되면 모두 날아가거나 감당이 안되는 재물은 사람을 변하게 하고 병들게 하죠. 자신의 그릇에 맞지 않은 무조건 많은 재물을 바라는 것이 그래서 위험한 거예요."

"아......"

나의 슬픔 섞인 탄성에 쉬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두 번째 시간은요... 물론 재물보다는 현명한 선택이긴 했어요. 다만, 막연히 시간만 되돌린다고 인생이 리셋되지는 않아요. 그것은 더러운 물을 깨끗한 다른 병에 옮기는 것과 같아요. 사람은 변하지 않아요. 그리고 설령 변한다 해도 나와 연관된 주변의 다른 사람들의 인생까지도 변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부자가되고 시간만 되돌리면 모든 게 해결되리라는 발상 자체가 문제가 있어요. 그것은 욕심에서 시작된 것이기 때문이죠."

"욕심......"

신음에 가까운 나의 음성에 꼬마는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창가 쪽으로 걸어가서 하늘을 바라보며 말을 한다.

"아저씨.... 가족이란 말이죠. 하늘이 주신 선물이며 축복입니다. 물질과 시간이나 혹은 세상 어느 것과도 견줄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에요. 비록 부유하지 못해도 서로의 사랑과 믿음으로 의지가 되는 그것만으로도 물질적 가치 그 이상의 소중함이 있어요. 후회스러운 인생을 살았을지라도 마찬가지예요. 그 모든 것을 보듬어주고 감싸주며 사랑으로 위안과 안식이 되는 소중한 것이죠. 그런 가족의 존재의 소중함을 모르고 가볍게 생각한 나머지 믿음을 져버리고 사랑을 외면한다면 모든 것을 잃는 거나 다름없어요. 모든 행복과 성공의 기초에는 가족이 기반이 되고 시작이랍니다."

나는 꼬마의 말에 후회가 물밀듯이 밀려왔고 꼬마에게 애원하듯이 물어본다.

"그럼 이제 내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 무슨 방법이 없을까?"

나의 말에 꼬마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팔짱을 낀 채로 쳐다본다. 키가 작은 체구였지만 오늘따라 왠지 커다란 거인이 내려다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도리가 없어요... 더 이상의 저의 권한은 넘어서는 것이니까요."

나는 애원하듯이 꼬마의 바지를 잡고 애원을 하지만 꼬마는 완강하였으며 오히려 천둥소리와 같은 음성과 꾸짖음으로 나를 밀쳐낸다.

"이 어리석은 인간아 너의 욕심과 나태함이 지금의 너를 만든 것이다!!"

굉음 같은 꼬마의 음성은 더 이상 꼬마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런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란 나는 뒤로 자빠지면서 허우적거리다가 누군가 강렬하게 어깨를 잡는 바람에 눈을 떴다.

"꿈꿨어요? 으이그... 어제 늦게 자더라니. 어서 일어나요. 늦겠어요."

아내였다. 베개가 땀에 흠뻑 젖었다. 고개를 들어서 창밖을 바라봤다. 아침햇살이 눈부셨다. 황급히 일어나서 창문을 열어서 밖을 바라봤다.

"아..... 살았다. 어찌나 생생한지.. 진짜 꿈이었나?"

나는 큰 한숨을 내쉬며 아침 공기를 흠뻑 들이마셨다.

왠지 모르게 꿈에서 느꼈던 달고나 향기 같은 달달한 느낌이 났다.그리고는 또한 익숙한 향기에 고개를 돌려서 주방을 봤다. 오렌지주스다.

"어제 시장에서 오렌지가 싱싱하고 싸길래 좀 사 왔어요. 어서 와서 마시고 밥 먹어요."

밥상에는 오렌지주스와 콩나물무침, 된장찌개가 차려져있었고 아내가 정성껏 밥을 그릇에 담고 있었다. 나는 그런 아내에게 뒤로 다가가서 꼭 끌어안았다.

"여보 사랑해! 앞으로 잘할게..."

"이이가 오늘따라 왜 이래? 뭐 좋은 꿈이라도 꾼 거예요? 그렇다면 로또 사야겠네?"

"아니!당신이과 우리 가족이 나한테는 로또야."

평소답지 않은 나의 반응에 아내는 동그랗게 눈을 뜨면서도 좋은 듯 미소를 짓는다. 나는 아내가 만들어준 사랑이 가득담긴 오렌지주스를 마시면서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며 감사의 기도를 했다.

"소원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드문드문 솜사탕 같은 구름이 보이는 하늘은 예쁘게 푸르렀으며 기도를 듣고 대답하듯이 새들이 지저귀면서 창가를 스쳐 지나갔다.


출근길 소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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