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회

by 글싸라기

2-8 화 재회.

갑자기 찾아온 한 남자 때문에 반가움과 원망스러움의 감정으로 눈물을 훔치던 은정은 어수선한 집구석을 허둥지둥 치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찬혁이 집안으로 들어서자 거실 바닥에는 비어있는 와인병과 빈 컵라면 용기 몇 개가 쌓여 있었고 과자 봉지도 뒹굴고 있었다. 이부자리도 제대로 정리가 안 된 채로 구석에 구겨져 있었다.

“은정아.. 이렇게 살고 있었구나. 아저씨가 너무 늦었지 미안하다.”

“아뇨, 괜찮아요. 그나저나 아저씨도 많이 아프셨다고 들었는데 이제 괜찮으세요?”

“그래, 이제 겨우 기억도 찾았어.”

“아, 그래요. 다행이에요.”

찬혁이 무언가를 찾는 듯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엄마는? 엄마 어디 계시니?

“아저씨...”

은정이 자리에 풀썩 주저앉으며 손바닥으로 얼굴을 감쌌다. 찬혁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엄마가...”

“엄마가 왜?”

“엄마는 아직 병원에 계세요.”

“뭐? 기명이 말로는 네가...”

“수술이 잘못 되어서 지금까지 혼수상태로 병원에 계세요. 아저씨 어떡해요 우리 엄마 불쌍해서.”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저도 처음엔 놀라서 어쩔 줄 몰랐어요. 그런데, 엄마의 영혼이 매일 찾아 왔어요. 흑흑..”

“아니 그게 무슨...”

“엄마는 아저씨한테 뭔가 꼭 할 말이 있다고 했어요. 아마도 못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저렇게 된 상태에서도 아저씨를 찾아 다니시나 봐요. 제발 엄마 좀 살려 주세요 아저씨.”

찬혁도 다리에 힘이 풀려서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은정이 고개를 들고는 문 앞을 바라보며 말했다.

“엄마. 아저씨 왔어. 아저씨, 옆에 엄마가...”

그러나 찬혁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저씨. 엄마가 옆에 계세요.”

[자기야 왜 이렇게 말랐어? 이제 아픈 데 없이 괜찮은거 맞지?]

“엄마가 걱정하네요. 많이 마르시고 아픈 데는 없냐고.”

“그래 이제 괜찮아...”

눈물과 함께 식도가 타들어가는 듯한 고통을 느끼며 찬혁은 간신히 대화를 이어갔다.

[자기야, 미안해]

“미안하시데요.”

“아니야, 아니야.. 내가 미안해.”

[나, 자기한테 미안하다고 꼭 하고 싶었어. 그동안 자기 힘든거 이해 못 해준게 너무 후회돼. 미안하고 정말 고생 많았어. 고마워]

“이해 못 해주고 고생했다는 말 못 해서 후회되신대요. 고생 많았고 고맙대요.”

“아, 아니야.. 내가 미안해, 미안해. 난 나만 생각했어. 못난 남편 때문에 고생만 하고 미안해. 나 용서해 줘.”

[자기도 참.. 용서가 무슨 말이야. 우리 서로 사랑하는데.]

“서로 사랑하는데 용서가 무슨 말이냐고 하시네요.”

“그래. 흑흑.”

은정이 은미의 영혼을 바라보며 조르는 듯이 말했다.

“엄마 이제 알겠지? 여기에 더 이상 오지 말고 응?”

[그래, 알았어. 아저씨 말씀 잘 듣고 있어.]

“알았어. 엄마도 기운 내고 어서 일어나야 해. 알았지?”

“자기야, 걱정 마. 자기가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내가 어떻게든 해볼게.”

[내 사랑, 영원히 사랑해]

“영원히 사랑한대요.”

“나, 나도 우리 봉봉이 영원히 사랑해.”

은미가 찬혁을 포옹하듯이 양팔을 벌려서 끌어안더니 이내 홀연히 사라졌다. 이후로 두 사람은 한참 동안을 흐느껴 울었고, 그 울음은 은정의 휴대폰 소리 때문에 멈추게 되었다.

“네? 뭐라구요?”

“왜? 무슨 일인데?”

전화를 끊은 은정이 찬혁에 매달리듯이 애원했다.

“아저씨 우리 엄마 좀 살려 주세요. 지금 엄마가 위급하다고 병원에서 연락이 왔어요.”

“뭐라고? 알았다. 걱정하지 마. 아저씨가 가 볼게.”

“저도 같이 가요.”

“아니다 집에 있어. 아저씨가 생각이 있어서 그래.”

찬혁은 기명이가 떠올랐기에 뭔가 방법이 있다고 생각했다. 서둘러 대문으로 향하던 찬혁이 뭔가 생각난 듯 돌아서서 은정에게 가방을 내밀었다.

“이 가방 잘 가지고 있어. 잊어버리지 말고. 이 안에 중요한 것이 있으니까. 알았지? 나중에 필요할 거야.”

가방을 건네주고 서둘러 집을 나서자 은정이 다급하게 찬혁을 불렀다.

“아저씨!”

찬혁이 돌아서자 은정이 눈물 젖은 미소를 지으며 어렵게 말을 꺼냈다.

“꼭 다시 돌아오셔야 해요! 아 빠..”

“아빠? 그, 그래! 은정이 내 딸.. 꼭 다시 올게. 기다려.”

찬혁은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고, 은정은 가방을 꼭 끌어안은 채 눈물을 닦아내며 뛰어가는 찬혁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전 07화집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