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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ocker 19화.

19화 밴드 슬레이지 해머.

by 글싸라기


"형... 형... 뭐야?"

"오... 오빠 진짜 오빠가 만든 라인이야?"

꽁지머리와 보컬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간이 의자에 앉아서 내가 만든 신곡 베이스라인을 작은 앰프 볼륨으로 합주를 맞춰보고는 입가에 옅은 미소와 커다랗고 동그란 눈을 하고서 칭찬 섞인 놀라움을 표현을 해줬다. 쑥스러웠지만 매우 기뻤다.

"응... 뭐 나름 노력은 해봤어. 마음에 들어?"

둘은 모니터를 하기 위하여 휴대폰으로 방금 합주했던 라인을 재생하면서 대꾸한다.

"응 그래... 기대 이상이야. 전혀 예상하지 못한 라인인데..."

"맞아 음악이 무척 고급 지게 들리네."

두 사람의 이어지는 칭찬에 이제는 부끄럽기까지 했다.

"에이 자꾸 그러니까 거짓말 같다 그만해라."

"형 내가 말했잖아! 내가 아는 베이스 주자 세 사람 중에 형이 들어있다고... 형은 어떻게 하면 비벼대야 할지 알고 비비는 거지."

"이 새끼가.. 비비다니! 마구리라는 소리냐? 하기야 마구리는 맞다. 정식으로 배운 베이스는 아니니까."

꽁지머리의 장난스러운 농담에 다 같이 웃음이 터졌다.

"자.... 그럼 정식으로 합주를 해보자."

"그래."

"좋았어 한번 달려봅시다."

묵묵히 듣고 있었던 드러머도 입을 열었다.

"근사해요 형! 드럼칠맛 납니다. 자 갑니다."

드럼의 스틱 신호가 시작을 알릴 때쯤 나머지 세 사람은 인간에서 락커로 또, 락의 전사로 탈바꿈하는 자세를 취했다. 꽁지머리는 특유의 가랑이를 벌리고 기타를 내리고 연주할 준비를 했고, 보컬은 작고 가녀린 몸매였지만 노래 부를 때만큼은 여전사였다. 보컬도 왼 다리를 앞으로 오른 다리는 살짝 뒤로하고 머리를 앞으로 숙였다. 나 역시 가랑이를 벌리고 베이스 기타 바디부분을 오른쪽 허벅지 아래로 내렸다. 존경하는 지미 페이지처럼....

어마어마한 천둥소리 같은 드럼을 필두로 기타와 베이스는 서로 부둥켜안고 하나가 되어 하늘로 용솟음치듯이 뒤틀리고 꿈틀대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사운드를 폭발해냈다. 이때다 싶은 보컬은 자기 박자에 머리를 앞으로 뒤로 구부리고 젖히며 특유에 굵고 거친 그로울링을 뿜어댔다. 종아리 뒤편부터 엉덩이를 타고 올라와 뒷골을 때리는 전기 같은 짜릿함이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순간 나 자신도 누군지, 여기가 어디인지, 내가 무엇을 하는지조차 모르게 행복했다. 정말 세상 모든 고민과 걱정은 모두 소멸되었다. 오로지 공기 중에는 찬란한 보석 같은 음률만이 합주실 안을 찬란하고도 바삭바삭하게 가득 매웠다. 나머지 멤버들 역시 그러했다. 모두 집중했고 행복한 모습이었다. 악기뿐 아니라 멤버 네 사람이 한 몸이 되는 그 광경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세상 그 어떤 쾌감이 이럴 수 있을까? 이런 행복 때문에 모든 음악인들이 세상의 그 고달프고 속상한 눈총을 감내하며 이겨내고 음악을 하는 것이다.

합주를 마치고 잠시 쉬는 시간 모두들 소파에 널브러졌다.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보컬도 꽁지머리도 특히 드러머는 더욱 그러했다. 모두들 앉아있다라기보다는 소파에 거의 드러눕다시피 하였고 그 상태에서 머리만 간신히 들고서 얘기를 나누었다.

"인천 클럽은 매주 공연하기로 했고, 홍대 클럽에도 오케이 했는데 어때?"

꽁지머리의 질문에 모두들 상체를 일으키며 이구동성으로 대꾸한다.

"뭐가 어때 해야지!"

"해야지!"

"자리만 있다면 해야지!"

망설임 없는 대꾸에 꽁지머리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간다.

"그래? 그러려면 우리 평일에도 합주해야 돼! 모두들 가능하셔들?"

평일에 합주를 해야 한다는 소리에 의견이 분분했다.

"난 가능해."

먼저 대답을 한 건 나였다. 그러나 보컬과 드러머는 사정이 달랐다.

"오빠 난 목요일밖에 안돼."

"난 금요일..."

난감한 상황에 시간을 조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토요일 합주는 일요일로 변경하고 금요일로 하자! 토요일은 인천클럽 공연이 예정되어 있으니... 그리고 금요일은 몇 시가 좋을까?"

"오빠 난 저녁 8시."

"난 저녁 7시 이후면 가능해."

"난 오후 5시에 퇴근이니 6시 정도면 가능하고..."

세 사람의 시간이 정해지자 꽁지머리가 마무리를 짓는다.

"좋아 그럼 금요일 저녁 8시로 하고, 일요일은 오전 11시로 정합니다. 금요일 합주를 하면 다음날 공연이니 감잡기에도 좋고 됐네. 모두 오케이?"

"그래 좋아."

"응 좋아."

"그래 좋아."

합주 계획도 잡혔고 이제 레파토리 계획을 잡아야 한다.

"음 그리고...레파토리는 오늘 맞춰본 자작곡 두 곡과 판테라곡 세 곡... 이 정도면 됐어! 당분간 자작곡 위주로 합주하고, 다음 카피 곡 추천해 주시고 새로운 자작곡을 위해서 리프나 아이디어가 생각나면 바로 공유할 수 있게 해주세요!"

"오케이!"

"알았어."

"알았어."

모두들 다시 소파 쪽으로 고개를 젖힌다.

"오늘 기분도 좋고 새 곡두 정리됐으니 한잔 어때?"

"오빠 난 늦게까지는 힘들어 동생 만나기로 해서."

"그래? 밥만 먹고 가.."

"그럴까?"

보컬만 빼고는 나머지는 모두 한잔하자는 얘기에 주섬주섬 움직일 준비를 한다.

"닭갈비 어때?"

"그래 좋아."

"또 닭이냐?"

드러머의 핀잔에 꽁지머리가 째려보며 말한다.

"형이 쏘는 거면 더 좋은 곳으로 가고..."

"누가 쏘든지 다른 거 먹자."

늘 양이 많은 닭갈비 아니면 찌개류만 먹었던지라, 그런 불만이 나올 법도 했다. 그런 대화를 듣던 내가 제안을 해본다.

"오랜만에 삼겹살 어때?"

"오... 형이 쏘는 거야?"

"자식... 알았다. 오늘 칭찬도 들었겠다 내가 쏜다 가자."

"오~오빠 죽이는데?"

"형 무리하네 나중에 딴소리 없기야."

"닭갈비는 내가 쏘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지."

드러머의 너스레에 다들 웃음이 터졌다. 그렇게 우리는 악기를 정리하고 서둘러서 식당으로 향했다.

누릿한 돼지고기 굽는 냄새가 천정에 달린 노란 전등 불빛과 묘하게 잘 어울리는 고깃집. 우리는 연탄불이 들어있는 둥그런 드럼통이 테이블로 짜여진 고깃집 한 귀퉁이에 동그랗게 모여서 눈은 삼겹살에 고정하고 입으로는 연신 신곡과 레파토리에 대해서 열띤 토론 같은 대화를 주고받았다. 가끔은 의견이 안 맞아서 싸움이 날 것 같은 신경전이 펼쳐지기도 했으며, 때로는 사소한 장난질로 배꼽이 빠져라 웃기도 했다. 그러다가 취기가 오르자 누가 음악 하는 사람들 아니랄까 봐 듣고 싶은 음악을 틀어놓고 멍하니 감상하기도 했다. 그렇게 술잔은 비워지고 다시 채워지며 멤버들의 얼굴에는 취기와 흥이 넘쳐났다. 술잔을 들어서 내게 내밀며 풀린 눈으로 흐뭇한 미소를 짓던 꽁지머리가 내게 한마디 한다.

"다시 만나서 좋네.. 그리고 같이 연주하게 돼서 좋아. 게다가 멋진 라인도 만들어 주고..."

꽁지머리의 건배 제의에 나도 술잔을 들어서 화답해 주었다.

"그래... 살아있으니 또 이렇게 만나서 같이하게 됐네. 멋지게 한번 해보자."

술잔이 부딪히는 순간 두 잔에 있는 술이 넘실거리며 마치 하이파이브 하듯이 상대방의 잔속에 섞여 들어갔다.그런 둘을 바라보던 보컬이 한마디 하며 끼어든다.

"오빠들... 머리 기를 거죠? 길러라... 응? 그래도 락커라는 사람들이 분위기가 안 나잖아 분위기가!"

얼굴이 벌게진 드러머가 한마디 한다.

"그래.. 맞아 형은 잭 와일드 추종자니까 잭 와일드 스타일인데... 베이스 형은 누굴 좋아해요?"

"음... 글쎄 원래는 존 폴 존스인데.... 기저 버틀러도 영향받았고.... 외향적인 모습만 본다면, 지미 페이지?"

갑자기 모두들 의아해한다. 그것도 그럴 것이 지미 페이지는 레드 제플린의 기타리스트였기 때문이었다.

"하하... 전에도 알고는 있었지만 참 희한한 양반이란 말이야. 베이시스트가 기타리스트를 좋아한다니 말이야."

삼겹살이 구워지는 구이판 옆에 있던 미지근해진 술잔을 들이키고는 설명을 해준다.

"베이시스트는 무슨... 시스트는 전문적으로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 사람 아니야? 난 그 정도는 못되니까 그냥 베이스 플레이어 정도만 해두자. 그리고 내가 지미 페이지를 좋아하는 건 물론 폼도 멋있지만 무엇보다도 그 사람의 예측할 수 없는 플레이즈와 마법사가 마법을 부리는듯한 기타 톤 때문이야. 레드 제플린 이후 그 어떤 밴드에게도 그런 쇼킹한 음악과 연주를 들어본 적이 없어. 물론 개인적인 느낌이고 취향이지만..."

말을 마치고 다시 술잔에 술을 따르려 하자, 보컬이 술병을 뺏어들고 한마디 거든다.

"오빠 내가 한 잔 따라줄게... 그래 그런 거 같아. 오늘 오빠가 만들어온 베이스라인 만으로도 거의 편곡이 다 된 거 같으니 말이야. 오빠는 겸손해하는데 내가 볼 때는 오빠는 타고난 거 같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오해 때문에 밴드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으르렁대며 싸웠던 사이인데 이렇게 또 따뜻한 면도 있다니 놀랍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다.

"고맙다... 좋게 생각해 줘서."

"고맙긴... 내가 고맙지 멋진 베이스를 만나서."

둘이 마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따뜻한 눈빛과 예쁜 눈동자를 한 여자애가 웃고 있었다.

"자 짠~해."

"그래.."

보컬과 잔을 부딪히고서는 알콜을 목으로 넘겼다. 꽤나 마신 것 같은데 술이 무척 달게 느껴졌다.

"자... 오늘 기분 좋은데? 다들 취한 것 같지도 않고."

"그러게 역시 술은 기분 좋게 마셔야 해."

"맞아. 오빠들 멋지네.. 근데 나 이제 가봐야 해."

"그렇지 술은 이렇게 마셔야지."

모두들 한마디씩 하며 헤어짐이 아쉬운 듯 술잔에 마지막 술을 채운다.

보컬이 소주잔을 들고 큰소리로 외친다.

"슬레이지 해머 화이팅!"

"화이팅!!"

모두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잔을 올리고 서로 부딪쳤다.

거나하게 취한 우리들과 기분 좋게 출렁이는 밤거리. 드러머가 먼저 집으로 돌아갔고, 꽁지머리와 내가 입에 담배를 물고 음악 얘기를 하며 걸어가자, 보컬이 두 사람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양쪽으로 팔짱을 낀다.

"아 이 양반들이 둘이 뭔 작당을 하는 거야. 나도 하나 줘봐."

내가 담배를 입에 물려주며 불을 붙여주려 하자 라이터를 뺏어든다.

"아냐 오빠 불은 남자가 붙여주는 거 아니래. 그냥 줘봐."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입에 물고는 다시 양쪽으로 팔짱을 낀다.

"아.... 오빠들 덕분에 기분이 좋네... 든든하구먼!"

"든든하냐? 다행이다."

꽁지머리가 대꾸하자 보컬은 내 쪽으로 고개를 획 돌리며 질문한다.

"오빠는? 왜 말이 없어? 이쁜 동생이 말을 했으면 무슨 대꾸가 있어야지!"

"나? 하하하 그래 기분좋지..나도 든든하다!"

"으이구 노땅들 아니랄까 봐 인색하긴."

보컬이 두 사람을 질타하자 꽁지머리가 응수를 한다.

"야야... 다 좋은데 스스로 이쁘다고 하는 건 아니지!"

"뭐라구?"

보컬의 장난스러운 발길질에 꽁지머리는 엉덩이를 뒤로 빼며 둘은 그렇게 몇 분을 마치 숨바꼭질하는 술래처럼 거리를 휘젓고 다녔다.나는 그 모습 자체가 너무 아름답게 보였다.그리고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저 모습을, 저런 우애를 오래도록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생각을 하며 나는 시계를 보고 여전히 아이들 같은 두 사람을 불렀다.

"야 이리로 와봐!"

두 사람은 내가 부르는 소리에 여전히 장난치며 내 쪽으로 왔다. 나는 두 사람을 아무 말도 없이 양팔로 꼭 끌어안으며 말을 했다.

"고맙다."

팔을 풀고 두 사람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간다.

"자 이제 가야지... 넌 여기서 택시 타고 가고, 넌 나랑 같은 방향이니 전철을 타고 가면 되고.."

"그래요 오빠들 저 먼저 가요 연락해요."

"그래 조심히 들어가라."

"가라 선머슴아."

끝까지 꽁지머리의 장난스러운 인사가 이어지자 보컬도 지지 않고 주먹을 앞으로 불쑥 내놓는다. 역시 우리 보컬이다.여자라도 저 정도 깡이 있는 게 이뻐 보였다.

"하여튼 가시나 알아줘야 해."

꽁지머리는 멀어지는 보컬이 탄 택시를 보고 한마디 하고는 내 옆으로 돌아왔다.

"형 오늘 우리 멋졌어요. 그렇죠?"

"그래그래.. 우리 멋졌지... 우리..."

꽁지머리가 하이파이브를 제의한다. 우리 둘은 손바닥을 마주쳤고 전철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마치 자신의 무기를 등에 짊어진 전사처럼 기타 케이스를 둘러맨 우리 둘의 뒷모습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음악인의 뒷모습 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오늘 하루만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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