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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사람(2)

by Dahl Lee달리

주변에서 자꾸만 발생하는 사고들과 A를 연관시키는 일은 머릿속에서 갑자기 일어났다.

혹시나 A가 나에게 앙심을 품고 이런 일들을 꾸미고 있을지 모른다는 근거없는 의심이 든 후로, 나는 몹시 불안해졌다.


그리고...그날은 목요일이었다. 나는 목요일마다 야간 진료를 한다. 목요일에 나는 간호사들을 다 퇴근시키고 혼자 진료실에 남아있다 퇴근하는 날이 잦았다.


불 꺼진 진료실에서 막 나서려는 차, A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 퍼뜩 떠오르며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퇴근을 위해서는 지문인식을 해야 한다. 그래야 문이 잠기고 세콤이 작동된다. 문제는 내 지문은 언젠가부터 알코올솜에 닳아버렸는지, 한 번에 인식이 안되고 열 번 넘게 시도 끝에야 간신히 성공적으로 인식된다는데 있었다. 한의원은 2층에 위치해 있는데, 5층의 노래방을 제외한 건물의 대부분은 벌써 불이 꺼졌고 복도는 칠흑처럼 깜깜했다.


검지손가락을 지문인식 화면에 계속 눌렀지만 역시나 계속 실패. 뒤통수가 아프게 뜨거워지는 게 느껴졌다. 뒤에서 누군가가 다가온다면 나는 속절없이 당하겠지...나는 덜덜 떨리는 손가락을 간신히 부여잡고 열번 넘게 시도 끝에 지문인식을 성공하고, 구르듯 계단을 내려와 주차장의 차로 달려갔다. 휴. 살았다.


그날 밤 꿈을 꾸었다.

나는 정신을 잃은 채(하지만 꿈속답게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 어느 폐건물의 A의 아지트로 끌려가고 있었다. 꿈에서 내 몸은 젖은 이불처럼 무겁게 느껴졌고, 손하나 까딱 할 수 없었다. A는 내 머리채를 질질 끌고 긴 복도를 지나 어느 방으로 들어갔다. 꿈속에서 그의 큰 체구는 과장되어 더 크고, 붉게 상기된 얼굴은 더 검붉고, 쳐진 눈시울은 상시보다 깊게 젖어 있었다. 그는 내게 알 수 없는 원망의 말을 속사포처럼 토해냈다. 꿈속이 아니더라도 이해할 수 없을 말이었다. 대충 자신은 순수하고 진실한 영혼을 가진 피해자이며, 나는 새털같이 가벼운 영혼의 악녀 중의 악녀라는 말이었던 것 같다. 그에게, 차마 묘사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심한 짓을 당하고 나는 잠에서 깨었다. 이불이 잔뜩 젖어있었다.


나는 A의 sns를 확인해 보았다. 나만 손절했을 줄 알았는데 그는 우리가 함께 했던 소모임 자체를 탈퇴하고 팔로우를 완전히 끊어버렸다. 새 id를 파서 새로운 소모임을 가입해 새 삶을 시작한 것 같았다.


A가 정말 위험한 사람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다만 다양한 관계 속에서 자신을 자주 "피해자"로 설정하는 사람, 동시에 소위 "가해자"들에 대한 분노를 자주 표출하는 사람은 시한폭탄 같은 느낌이 든다는 것은 분명하다.


구원자 콤플렉스 때문일까, 나는 그런 사람을 도와주고 싶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많다. 그러나... 이것도 일종의 자기 학대 아닐까? 내 속에 잠재한 문제들로 인해, 본능적으로 두려운 마음이 들면서도 기어코 그들에게 손을 내밀게 되는 것이 아닐까? 나 역시 나 자신에게 그들 못지않게 위험한 사람이 아닐까?



*이 글의 일부는 픽션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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