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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만남

즐거운 마지막 만남

by Dahl Lee달리

어제저녁, 수영장 회원님이자 전업작가이신 B님과 짧은 만남을 가졌다.


작년 가을쯤 잠시 머물렀던 마스터반에서 몇 차례 회식을 했는데, 거기서 B님이 작가라는 얘기를 들었다. 많은 궁금증이 일었다. (아 참, 사실 그분의 직업보다 먼저 눈길을 끈 것은 그분의 예쁜 이름이다. 내 이름 못지않게 예쁜 이름이 그 마스터반에만 2명이 있었다!) 하지만 내향인 중의 내향인인 내가 누군가에게 개인적으로 다가가 이야기할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다.


B님은 수필집으로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을 받으셨다(고 전해 들었다). 나는 B님의 브런치 주소를 알아내서 작년 가을부터 이맘때까지 몰래(!) 그분의 글을 읽었고, 최근에 신간이 나왔길래 막 사려던 차였다. 공교롭게도 수영장의 다른 회원님께서 선물로 주셔서 완독했다. 브런치에 없는 글들도 있어서 '우왓!' 하면서. 수영장에서 그분을 뵈면 항상 데면데면했지만 속으로는 일방적인 내적 친밀감을 쌓아 올리고 있었다. 누군가의 글을 읽는다는 것은 그 사람의 가장 깊은 목소리를 듣는 기분이기에.


그런데 며칠 전 수영장 로비에서 만난 그분이, 수영장 가까운 지인들과 송별회를 한다고 말씀해 주셨다. 송년회가 아닌 송별회라고? 어딜 가시는 걸까. 알고 보니 곧 2년간 해외에 머무실 계획이라고 하신다. 이런.. 나도 따라가고 싶었지만 사람들이 많은 회식자리는 내가 제일 취약한 곳이고, 바로 다음날 추나강의가 있어서 예습을 해야 되었다.

늘 눈치만 보고 망설이는 나, 역시 실기失期하는구나 싶었지만, 운 좋게도 어제 짧은 만남을 가졌다. 궁금하던 것을 많이 여쭤보고 말씀하시는 것도 듣고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B님은 수영도 잘하시고 자기 관리를 잘하시는 분이다. 겉으로 뵀을 때는 그분이 쓰시는 글과 잘 어울리지 않는 이미지같기도 하다. 내가 글을 통해 느낀 그분은 좀 더 샌님스럽고(!) 학구파스러운데(!), 그분의 겉모습은 너무 세련됐다. 까맣게 태닝 된 피부가 인상적이어서 태닝 하신 건지 여쭤본 기억이 난다. 역시나, 맞았다. 옷도 예쁘게 잘 입으신다. 내 생각엔 우리 수영장에서 제일 잘 입으시는 것 같다. 수영복도 언제나 화려하고 잘 어울린다. 내가 남자로 태어나면 옷은 꼭 B님처럼 입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이다.


어제 갔던 카페는 너무 사람이 많고 시끄러워서 조금 아쉬웠다. 그분은 목소리가 특이하다. 목소리를 잘 듣고 기억하고 싶어서 바짝 붙어서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실례일까 봐 다가가지 못했다.


나는 한 마리의 하이에나처럼(!) 그동안 눌러왔던 궁금증들을 속사포처럼 물어봤다. 사생활 침해를 싫어하기에 개인적인 질문은 받지도 하지 않는 편인데, 이것이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체면을 내려놓았다. B님은 최선을 다해 성심성의껏 대답해 주셨다. 그렇게 글쓰기, 독서, 개인적인 궁금증, 운동 이야기 등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실용적인 조언도 많이 주셨다.


나보다 어휘력이 좋은 사람과의 대화는 참 즐거웠다. 그리고 내가 읽은 책을 거의 다 읽고, 내가 아는 작가를 다 아는 사람과의 대화는 정말 짜릿했다. 그렇게 많이 알고 많이 읽었는데도 꼰대가 전혀 아닌 사람. 선의로만 가득 찬 만남. 맛있는 커피(사실은 밀크티!). 넓고 유연한 어른의 세계.


게다가 운동광. 수영도 러닝도 나보다 잘하시고, 트라이애슬론은 다섯 번(!)이나 나가셨다고. 서핑에 사이클에...


작가 B님을 만나러 갔다가 인간 B님의 매력에 흠뻑 빠져버렸다. 똑똑한데 겸손한 사람은 타인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는 것 같다. 어제가 마지막 만남이라는 생각에 더 아쉽고 매 순간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어젯밤엔 오랜만에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불면증 환자인 나이지만 이 정도로 못 잔 것은 오래간만이다. 역시나 야심한 밤에 너무 고자극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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