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어떤 글을 읽고 싶어 할까?
사람들이 읽고 싶은 글과 내가 쓰고 싶은 글 사이에는 차이가 있는 것을 안다.
'서울대 입학의 비결', 이런 제목을 달면 사람들은 더 글을 읽어줄까? 하는 궁금증에서 이번 글을 써보려고 한다. 나는 현역으로 서울대 화학부에 입학했다. 대치 키즈도 아니고, 화려한 사교육을 받지도 않았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집 안팎에서 공부를 잘하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분명 초등학교 때는 시험을 많이 보지도 않았는데 그런 왜곡된(?) 이미지가 형성되어 있었다. 책을 늘 읽고 있어서 형성된 가짜 이미지였던 것 같다.
막상 실력이 탄로 난 것은 중학교 때였는데, 중학교 1학년 첫 시험에서 나는 내가 최상위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초등학교 내내 피아노, 바이올린, 미술학원만 열심히 다녔다. 중학교 때는 심화 수학학원에 다니긴 했지만 중학교 내신과는 관계가 없는 학원이었다.
중학교 시험은 전 과목을 다 보는 시험이라 굉장히 꼼꼼해야 했다. 기술 가정 사회 음악 체육 이런 것도 전부 암기과목에 들어갔다. 중1 때까지는 나는 반에서 2-3등 정도 했던 것 같다. 아직도 기억난다. 기술가정에서 88점을 맞고 스스로에게 '흠, 이 정도가 나의 수준이군' 하는 기꺼이 자복하는 마음이 들었던 순간을.
중학교 2학년때부터 전환기가 찾아왔다. 당시 반 1등은 '감자'가 별명이었던 어떤 못생긴 남자애였는데 늘 전교 1-2등을 했다. 그 아이는 공붓벌레스타일이라 일진 아이들에게 자주 놀림을 당하면서도 우리 반 1등을 놓치지 않았다. 나는 우리 반 만년 2등. 전교 20위권 밖.
우리 반 담임선생님은 엄한 파마머리 여선생님이셨다. 과목은 수학. 내가 존경하는, 혹은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남자고 여자고 간에 내가 미학적으로(!) 호감을 느끼는 인간형은 담채수묵화 같은 사람이었다. 세상에도 자기에 대해서도 지나친 확신 없이, 똑똑함이 '조용히' 배어 나오는 사람. 그럼에도 경쾌한 사람.
선생님께서는 안타깝게도 그와는 결이 다른 사람이었다. 내 눈에 멋진 사람이 담임선생님이 아니셔서 중2는 내게 힘든 시기였다. 나는 싫어하는 사람은 쳐다보는 것도 힘든 지랄 맞게 예민한 아이였다. 선생님께서는 나와 1등 남자아이를 편애하셨지만, 그로 인해 선생님에 대한 호감도가 커지지는 않았다. 취향이란 참 완고한 데가 있다.
1학기 기말이었나, 시험기간에 소설책을 들고 집에 가다가 선생님께 처음으로 꾸중을 들었다. 시험기간에 소설책을 읽고 있냐고. 나는 정말 궁금해서 여쭸다. '시험기간엔 책을 읽으면 안 되나요?' 선생님은 고민 없이 말씀하셨다. '절대 안 되지. K처럼 공부만 열심히 해야지.'
그때였나, 2학년이 끝나기 전에 선생님 눈앞에서 뭔가를 증명해 보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미안하지만 그 남자아이를 한번 잡아야겠다는 생각도. 그러고 보니 분노는 그때도 나를 추동하는 힘이 되었구나. 그렇게 어릴 적부터.
중2, 처음으로 독서실이라는 곳에 가서 각 잡고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암기과목을 공부하는 방법을 잘 몰라서 책을 통째로 외웠다. 한 단원을 읽는다. 책을 덮고 머릿속으로 내가 읽은 부분을 다시 복기한다. 나는 손이 아파서 글씨는 잘 쓰지 않고 머릿속으로 공부하는 것을 선호했다.
시험기간 2주 동안 독서실을 끊고, 늦은 시각까지 공부를 하고 새벽 이슬이 내려앉은 아스팔트 길을 홀로 걸어 집에 돌아왔다. 그때 시도 썼었던 것 같다. '새벽 아스팔트에서는 초콜릿 향기가 난다.' 어쩌고 하는 시였다.
그리고 그 남자아이를 잡았다. 전 과목에서 1개인가 틀렸던 것 같다. 등수 발표 때까지 궁금해하며 기다리지 않아도 내 위치를 알 수 있도록 나는 최선을 다했다.
선생님이 모든 아이들을 모아놓고 뜸을 들이시며... 이번 반 1등은 K가 아닌 나, 그리고 전교 1등도 나라는 발표(?)를 하실 때의 쾌감. 크. 그리고 하교 때 본 그 남자아이의 축 쳐져 보이는 뒷모습. 미안했지만 전적으로 내 탓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날을 계기로 좀 독해졌던 것 같다.
그 이후로 나는 계속 전교 1-2등을 놓치지 않았고 그 남자아이는 투지를 잃었는지 전교 10등 밖으로 밀려나버렸다. 내신 점수 따기는 한심하게도, 공부머리가 아닌 '투지'가 필요한 일이다. 이것이 과연 옳은 교육일까? '정신교육' 정도는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좋은 대학을 갈 수 있었던 것은 물론 국영수를 미리 다 잘해놨기 때문이다. 중3 겨울방학 때 국영수 수능 모의고사를 를 봤는데, 이미 거의 만점이었다. 하지만 서울대는 내신을 많이 보니까(현재 입시도 그런지 모르겠다), 이 중2 때의 독해졌던 (?) 순간이 내신관리를 잘하는 데로 이어졌던 것이 아닐까 싶다. 혹시나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 서울대를 목표로 하시는 분들이 있으면 나 같은 전략을 짜시는 것을 추천드린다.
나는 국어학원에 다닌 적이 없음에도 국어는 원래 잘했다. 요새 유행하는 독서학원에서 하는 교육을 우리 부모님은 아주 일찌감치 하고 계셨다. 일기 쓰기, 독서, 독후감, 신문 읽기 등등. 그것도 그렇지만 책은 내 유일한 진짜 친구였기도 했다.
수학은 중학교 때 다닌 선행학원에서 경시대회도 나가고, 아주 어려운 심화문제를 많이 접했던 것이 도움이 되었다. 중학교 때 KMO 준비를 했었고 중3 때 수 2까지 다 끝냈었던 것 같다. 선행학습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글쎄.. 고등학교 수학정도면 중학교 때까지 못 끝낼 양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영어는 제일 늦게 시작했다. 엄마가 중3정도에 과외를 시켜주셨는데, 프랑스 유학파 출신의 전업과외 선생님이셨다. 첫 시험을 봤는데 너무 못 봐서 선생님이 우리 엄마 보기가 민망하셨다고 했다. 그래도 하다 보니 재미가 붙었다. 같이 그룹과외를 하던 남자아이들이 처음엔 나보다 영어를 잘했는데 나중 가니까 점점 나와 격차가 벌어지는 게 재밌어서 더 열심히 했다. 1년 정도 과외를 했더니 수능 모의고사 정도는 다 맞게 되었다. 그리고 선생님과 토익과 토플 공부를 했다. 중학교 때부터 과외를 함께 받던 아이들과 토익을 봤는데 그때부터 만점가까이 나왔고, 고등학교 때부터는 과외를 그만둔 후에도 심심해서 혼자 계속 토익을 쳤는데 몇 번 만점이 나왔다(만점을 받고 싶어서 만점을 받을 때까지 계속 쳤다). 고등학교에서 영어 경시시험을 봤는데 많이 잘 봐서 영어 경시반 담당 선생님께서 부모님한테 전화를 하셨다고 한다. 국내파라고 했더니 어떻게 영어교육을 시켰냐고 자세히 물어보셨다고. 우리 부모님은 아직도 뿌듯하게 그 일을 말씀하신다. 1년 정도 과외로 가성비 최강이라는데 초점을 맞추시는 것 같긴 하지만.
아무튼 이렇게, 나는 국영수를 중학교 때 공부했고 막상 고등학교 때는 거의 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는 주로 과학과 내신 공부를 했다. 물리와 화학의 재미에 눈을 떴었다. 화학은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학문답게' 배운 과목이다. 그래서 대학도 화학을 선택했다. 다른 모든 과목은 점수를 잘 따기 위해서 공부했지만 화학은 그냥 즐겁게 배웠다. '송'씨였던 화학선생님을 짝사랑하기도 했고.
송선생님이 수업시간에 피와 땀의 전해질 농도에 대해서 말씀하셨던 게 기억난다.
"땀은 짜지요? 그런데 땀을 계속 흘리면 왜 소금을 먹어줘야 할까요?"
내가 손을 들고 대답했다. "피는 땀보다 더 짜니까요."
선생님은 큰 눈을 굴리시며 "오.. 맞아요!"라고 대답하셨다.
정말 짜릿하고 즐거운 배움의 순간이었다.
또 이런 원론적인 질문들. 나는 이런 것들을 선생님과 문답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송: "바람은 어떻게 생길까요?"
달: "압력의 차이 때문에요."
송: "그러면 압력의 차이는 어떻게 생길까요?"
달: "온도차이 때문이요. 태양이 지구를 고르게 데우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송: "맞아요!!"(큰 눈이 도로록..)
아무튼, 나는 이렇게 공부했다. 선행과 심화를 병행한.
그러고 보면 요새 사교육 시장도 극선행과 독서교육을 강조하는 것 같다. 나는 일찍부터 트렌디했던 것이다. 적어도 입시의 측면에서는.
*아, 이것은 '입시' 비결이지 '공부' 비결은 아니다.
제대로 된 공부는 지금까지 쓴 내용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생각한다.
도움이 되셨나요?
이런 글이 재밌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