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나란 존재는 무엇인가?”
나는 누구고 어디에서 왔고 무엇을 위해 살고 있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어느 정도 생각이 자라기 시작한 나이부터 끊임없이 고민하며 해답을 찾으려 고군분투한 질문들이다. 이 답을 찾아내고자 노려했지만 나는 내가 어떤 존재 인지 아직 잘 모르겠다.
나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질문 “ 나는 누구인가?” 겉으로 드러난 나는 나이에 비해 어려 보이고 뛰어난 외모를 가지고 있으며 두 아이의 엄마고 학원을 운영하며 책 읽는 것을 좋아하고 글을 쓴답시고 쓴 커피를 내리 마시며 밤을 밝힌다. 하지만 이런 것들로 나의 존재를 정의한다는 것은 어딘지 모르게 공허한 느낌이다.
이미 모든 것이 결정되어 있어 무엇을 해도 결론이 정해진 현실에서 살아가는 모습은 답답하기 그지없다. 그렇다고 재생산되는 계급에 항복하고 정해진 현실에 순응하고 살고 싶지만은 않다.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내 운명이었다고 해도 지금 상황을 어떻게 해도 타파할 수 없을 것 같다고 해도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도 해봐하지 않을까?
노력. 깡. 존버 정신. 해낼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함께할 사랑하는 사람.
나란 존재는 이미 정해진 운명을 갖고 태어났을 수도 있지만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지금까지 내 선택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내 조건과 상황 속에서 그런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상황이 내 선택을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해진 운명에 순응하지 않고 스스로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은 자신을 아는 것이다. 지금 자신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보고 자신의 결정된 운명에 도전장을 내는 것이다. 유일한 방법은 결정된 운명적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있어야 상황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하는 선택이 아닌 자신의 의지대로 자신이 원하는 선택할 수 있다.
내 존재의 이유를 미리 정해 놓고 나를 평가하게 놔두고 싶지 않다. 나는 내 삶의 주인이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기 위해 노력한다. 나의 미래는 내 의지대로 만들어 나갈 것이다. 정해진 운명 따위 개나 줘버리자. 물론 개도 싫다고 던져버리겠지만. 이건 개에게도 미안한 일이다.
고민을 시작한 우리 모두의 자각이 당연한 것 같은 세상에 돌을 던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태어날 때부터 지워진 운명을 무한 경쟁 사회라는 허울 좋은 세상에 밀어 넣고 무능이라 낙인찍어 자신들의 계급을 재생산시키는 사회에서 각성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운명 결정론적 사고가 우리 다음 세대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지 않도록 눈을 크게 뜨고 정신 똑바로 차라고 노력해야 한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