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을 오징어 씹듯 잘근잘근 씹어 먹을 것 같던 나도 일이 꼬이기도 하고 마음이 다치기도 하고 몸에 병이나기도 한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고 살다보면 그런 날도 있는 것이다. 말도 안되는 일로 친구와 말다툼을 하고 직장 동료와 사이가 틀어지고 남편과 사이가 냉냉해지거나 아이들이 뜻 없이 하는 말에 끝없는 나락으로 곤두박질 친다.
뇌에서 빨간 불빛이 왜앵왜앵 정신 없이 돌아간다. 긴급 상황이니 어서 해결하라는 신호다. 종합병원 응급실처럼 긴박하게 움직이는 머리와 가슴에 산소 호흡기를 처방한다. 대단한 것은 아니다. 평소 캔맥주를 즐기지만 특별히 오늘은 와인 한 병을 딴다. 그리고 근사한 와인 잔에 쪼르륵 반을 채우고 조각 치즈 몇개를 준비하는 것이다. 그 준비 과정만으로도 빨간 불빛은 주황색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모두가 잠든 고요한 밤에 좋아하는 음악을 튼다. 시간을 고려해 이어폰을 준비하는 것은 센스다. 음악을 들으며 와인 한모금을 마신다. 와인은 천천히 모세혈관을 타고 온 몸을 여행한다. 그리고 나도 천천히 몸과 마음을 이완 시킨다. 눈물이 흐르면 흐르는 대로 그냥 둔다. 이런 날 볼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마음 속에 켜켜히 쌓였던 아픔, 고독, 외로움, 짜증, 오해, 질투 .. 온갖 지저분한 감정들을 씻어낸다.
책을 읽지 않아도 글을 쓰지 않아도 내일 할 일을 생각해 두지 않아도 좋다. 어쩌다 한 번 찾아오는 감정을 모른척 하면 안 된다. 밤 시간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 11시 30분부터 1시 30분까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1시 30분이 되면 무조건 취침하기로 한 약속도 하루쯤 눈감아 준다. 나를 일으켜 세우는 것이 먼저다. 밤 시간의 모든 생각이나 활동 그리고 계획은 철저히 나를 중심으로 한다. 더 즐겁고 행복한 나를 위한 시간이니 만큼 내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몸은 정직해서 아프면 신호를 보낸다. 어서치료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그러니 어서 치료하라고. 때론 눈물도 흘린다. 몸이 아프다고. 하지만 우리의 마음은 정직하지 않다. 아파도 아프지 않은 척, 슬퍼도 슬프지 않은 척, 외로워도 외롭지 않은 척, 함께 있고 싶어도 그렇지 않은 척 마음은 거짓말쟁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우리 마음을 잘 들여다 봐야 한다. 아픈지, 슬픈지, 외로운지 친구가 필요한지. 그리고 잘 달래 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마음은 우리가 잠들어 있을 때 혼자 운다. 마음이 혼자 울지 못 하도록 밤 시간에 마음이를 잘 봐주고 토닥여주고 마음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내가 중심인 11시 30분부터의 시간은 단단한 나를 만들고 단단한 나는 더 힘찬 내일을 산다.
밤을 지배하는 자, 내일을 지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