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래너 쓰는 올빼미

by 이작가



새벽형 올빼미가 되겠다는 다부진 마음은 현실 앞에 휘청거린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니 분명 하루가 길어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시간을 살아내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늦은 시간까지 밤 시간을 보내는 것은 느긋하고 여유가 있었다. 힘든 하루를 보상받는 느낌을 느끼며 하루를 마무리하고 내일을 계획했다. 하지만 아침에 일찍 일어나면서부터는 마음 가짐이 달라졌다. 새벽에 일어나서는 여유 있고 느긋한 느낌보다 역동적이고 활기 넘치는 마음이 더 컸다. 새벽부터 플래너에는 할 일들이 빼곡히 들어찼다. 하루 일과를 시작하기 3시간 전에 이미 많은 것을 끝낸다. 얼마나 뿌듯한지 피곤함이 안개처럼 사라진다.


아침 플래너를 쓰기 시작했다. 아침에 플래너를 쓰니 느낌이 다르다. 새벽에 할 일, 아침에 할 일, 오후에 수업하는 동안 공강이 생기면 해야 할 일 그리고 퇴근 후 해야 할 일들을 빼곡히 쓰고 그 일을 했을 때마다 색연필로 쭉쭉 그어나간다. 색연필로 해낸 일을 지울 때는 기분이 최고다. 또 하나의 색연필 줄을 긋기 위해 또 다음 일을 수행한다. 재밌다. 고등학교 때 공부하면서 했던 플래너 쓰는 요령도 새록새록 생각난다.


플래너를 쓸 때, 큰 단위로 계획을 세우면 그것을 해내기 어렵다. 그래서 나는 플래너를 분 단위 또는 시간 단위로 쓴다. 성경 필사 30분, 영어 지문 필사 40분, 아침 독서 50분, 영어 단어 1시간 암기, 플루트 연습 30분과 같이 긴 시간이 아니라 충분히 할 수 있을 만큼의 적당한 시간을 목표로 하면서 플래너에 적은 일은 되도록 지키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다 채워진 플래너를 보면 자존감이 생긴다. 빼곡히 지워진 플래너는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사랑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준다.


시간 단위로 플래너를 쓰는 것이 힘들 때면 시간을 기준으로 플래너를 쓰는 것 대신 양을 목표로 한다. 영어 단어 50개 외우기, 책 100쪽 읽기, 영어 지문 4개 공부하기, 모의고사 1회 풀어보기와 같이 양을 정해 놓으면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하루 중 그 일을 끝내면 되므로 압박을 덜 받을 수 있다. 어떻게 하든 최대한 부담 없이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해내는 것이 중요하다.



새벽에 일어나서 플래너를 쓰고 밤이 되어 그날의 플래너를 보면 하루가 뿌듯하고 기분이 좋다. 죄책감 없이 맥주 한 잔쯤 벌컥벌컥 들이켜도 될 것 같다. 이렇게 플래너를 쓰다 보니 욕심이 생겼다. 조금 더 체계적으로 플래너를 쓰고 싶어 졌다. 유튜브를 보니 아이패드를 이용해 플래너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이패드는 있지만 어떻게 써야 할지 몰랐는데 이제는 배워야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대학생이 된 제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쌤이 아이패드로 플래너를 다운 받아서 쓰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물어봤다. 그 녀석은 온라인 수업이라 학교에 안 갔다며 기꺼이 학원에 찾아와서 다운 받는 법도 알려주고 녀석이 다운 받아 논 스티커까지 공유해주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까지 사주고 갔다. (내가 아이들을 잘 가르치긴 했나 보다.) 이제는 아이들과 위치가 바뀌어 내가 아이들에게 배우는 게 더 많다. 나는 모르는 것이 있을 때는 대학에 간 아이들에게 자꾸 전화해서 물어본다. 그러면 아이들은 짜증도 내지 않고 친절하고 알기 쉽게 잘 가르쳐 준다. 앞으로는 내가 배울 일이 더 많을 것 같다.


<새롭게 쓰기 시작한 플래너 형식>


굿노트라는 프로그램에 다운 받아 앞으로 쓰게 될 플래너다. 시간 단위로 플래너를 쓴다는 것이 조금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새벽형 올빼미가 된 이상 멋지게 비상하고 싶다. 새벽을 즐기는 올빼미를 생각만 해도 신난다.


고등학생도 아니고 수험생도 아닌 내가 이렇게까지 시간 단위로 플래너를 쓸 필요가 있을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체계적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다 보면 내 삶이 어떻게 바뀌어 있을지 확인하고 싶다. 지금이 새로운 삶을 만들어가는데 결코 늦은 때가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에게 증명해 보이고 싶다. 하루가 내가 계획한 대로 다 이루어지진 않겠지만 내가 생각한 대로 삶을 이끌어 간다는 것은 짜릿한 일이다.


세상에 결코 늦은 때는 없다. 언제고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뛰어들면 된다. 그 일을 시작하는데 완벽한 조건은 존재하지 않는다. 준비만 하다가 그 일을 시작도 하지 못하고 끝나는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일단 시작하고 나면 다음부터 차근차근 발전시켜 나가면 된다.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쓸 필요 없다. 자신의 삶을 계획하고 선택하고 살아가는 것은 자신뿐이다. 나는 더 이상 누군가의 시선에 내 삶을 내어주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나의 하루를 계획하고 만들어가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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