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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머리 앤이 나에게 말을 걸 때 7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기.

by 이작가
나는 마음껏 기뻐하고, 슬퍼할 거예요.
이런 날 보고 사람들은
감상적이라느니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표현한다고
수군 거리겠지만
나는 삶이 주는
기쁨과 슬픔, 그 모든 것을,
아무리 작은 것이라 해도
마음껏 느끼고 표현하고 싶어요.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몇 번의 필터를 거쳐 표현하는 나를 본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내가 이런 행동을 하면 친구들이 나와 더는 친구를 해주지 않으면 어떻까?


나는 어려서부터 감정을 속이는 법을 배웠다. 부모님은 아파도 참을 줄 알아야 한다고 하셨고 기뻐도 너무 크게 웃지 말라고 하셨고 너무 튀게 옷을 입지 말라고 하셨고 슬퍼도 울지 말라고 하셨다. 감정과 느낌을 드러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교육을 받았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태어나지 않았다. 나는 어려서부터 작은 일에도 큰소리로 웃었고 감동했고 슬퍼했고 아파했다. 그래서 아빠에게 꾸중을 듣기도했다.


불혹의 나이에도 나는 여전히 감정에 충실하다. 꽃이 예쁘면 주변에 사람이 있건 없건 큰 소리로 예쁘다며 감탄하고 길거리에서 즐거운 음악이 나오면 신경 쓰지 않고 춤을 추기도 하고 노래도 따라 부른다. TV에서 슬플 장면이 나오면 그곳이 찜질방이든 음식점이든 가리지 않고 눈물이 흐른다. 대학 때 CC 였던 남편은 처음에 이런 나를 당황해하고 감당하기 어려워했지만 이제는 그냥 이대로의 나를 사랑해준다. 가끔씩 과장된 나의 표현이 없을 땐 오히려 서운해하는 것 같기도 하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까?

오늘 이렇게 즐겁게 웃으며 보내는 시간이 나의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매일 밤 그리고 아침 나는 늘 나의 죽음을 생각한다. 지금 이 순간이 마지막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시작하면서부터 더 감정에 충실하고 더 많이 웃으려 노력하고 더 감사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나의 감정에 충실하기위해 노력한다.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얼마나 힘을 내 살아낼 가치가 있는지, 그리고 내가 얼마 만큼 행복한 사람인지, 잠깐 멈춰 서서 세상을 둘러보면 바로 알 수 있다. 나뭇잎 사이로 모자이크 모양을 그리며 떨어지는 햇빛도 마라톤 경주를 하듯 앞서기니 뒤서거니 하며 피부를 관통하는 바람도 이리저리 모양을 만들며 소풍을 나온 구름도 이름을 알 수 없는 새의 지저귐도 마음껏 느끼고 누리며 살아 낼 가치를 충분히 제공한다. 잠시만 눈을 돌려고 어린아이처럼 기쁘고 감사한 일들이 넘쳐 난다. 누군가의 시선에 갇혀 자신을 가두고 싶지 않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도 모든 기쁨과 슬픔을 그리고 느낄 수 있는 모든 것을 마음껏 누리게 하고 싶다.


때론 행복이라는 단어에 갇혀 진정한 삶의 기쁨을 놓치기도 한다. 삶은 행복하기 위해서도 살아가지만 살면서 행복한 순간은 그렇게 자주 오지 않는다. 일상의 소소함 속에서 즐거움과 기쁨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행복이 삶의 목표가 될 수는 없는 것 같다. 삶과 행복, 삶과 즐거움, 삶과 기쁨, 삶과 슬픔, 삶과 아픔은 언제나 함께 다니는 세트 같다. 살다 보면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고 아프기도 한 것은 당연하다. 그 순간순간들이 삶이 되고 그 삶 안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다면 좋은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앤이 꽃으로 장식한 모자를 쓰고 교회에 나타났을 때 모두들 앤을 보고 수군댔지만 앤은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밋밋하고 개성 없는 모자를 쓴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눈치 보지 않고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그런 자신의 행동을 즐기는 것은 더욱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 아이들이 그런 아이들로 자라줬으면 좋겠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자신의 행동을 즐거워하는 사람은 꼭 행복이라는 단어로 표현하지 않아도 충분히 자유롭고 즐거운 삶을 통해 그 감정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있는 그대로 자신을 받아들이는 연습이 필요하다. 자신을 믿고 사랑한다면 자신의 느낌과 감정에 충실할 수 있다. 마음껏 즐거워하고 마음껏 슬퍼하고 마음껏 기뻐해도 된다. 누군가 수군거리는 것 쯤은 넘겨버릴 수 있는 마음을 갖는다면 삶은 지금보다 더 즐겁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부모라면 아이에게 어떤 삶을 살라고 할까? 곰곰이 생각해 본다면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도 저절로 알게 될 것이다. 아이가 살았으면 좋을 것 같은 삶을 지금 자신이 살면서 아이에게 보여주면 된다. 자신의 감정과 느낌을 솔직하게 표현하며 즐겁고 기쁘게 사는 부모님을 보고자란 아이는 분명 그 뒤를 따라 살게 될 것이다. 자녀의 멋진 그림자가 되고 싶다면 눈치 보지 말고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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