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튜는 앤에게 정신적 기둥이었다. 앤의 삶에서 매튜는 아빠였고 멘토였고 지지자였고 친구였다. 그런 그가 세상에서 사라졌다. 세상의 전부였던 매튜를 잃은 앤은 마릴라의 가슴에 파묻혀 운다. 울고 또 울면서 마릴라와 매튜에 대해서 끝없이 말한다. 앤은 끊임없이 과거로 돌아가고 또 돌아간다. 과거로 돌아가 매튜를 만난다. 그의 따뜻한 말과 온화한 표정 그리고 앤에게 해주었던 말들을 기억해낸다. 앤은 슬픔이 찾아올 때마다 매튜와의 추억을 떠올린다. 결국 앤은 조금씩 마음을 추스르고 힘들었을 때 매튜가 했던 말을 생각하며 삶으로 돌아온다.
아주머니, 실컷 울게 해 주세요.
우는 게 그 아픔보다는 덜 괴로워요.
얼마 동안 제방에 있어주세요.
저 좀 안아주세요.
슬픔은 피하려고 노력한다고 해서 피해지는 것은 아니다. 삶을 살면서 슬픔을 피해 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데서 오는 상실감은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
아빠가 암에 걸려 투병 끝에 돌아가셨다. 전이가 빨라 암에 걸린 것을 알고 난 후 급격히 병이 악화되어 6개월 만에 돌아가셨다. 슬픔을 받아들이기 전에 장례를 치러야 했고 처리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나는 맏이였고 마냥 울고만 있을 수 없었다. 장례를 마치고 아빠를 보내드렸지만 내 마음속에서는 아직도 아빠를 보내드리지 못하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운구차에서 아빠의 영정 사진을 보는데 그제야 아빠의 죽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목놓아 울었다. 온 힘을 짜내듯 내 안에 아무것도 남기지 않을 것처럼 울었다. 지쳐 잠들었다. 다음날이 되어도 눈물을 멈추지 않았다. 다음날도 또 그다음 날도.
아빠가 너무 간섭을 많이 한다고 투정을 부리는 사람들을 보면 ‘그래도 아빠를 볼 수 있고 투정도 부릴 수 있고 손을 잡을 수도 있고 같이 밥을 먹고 웃고 일상을 이야기할 수 있잖아.’라고 생각하며 주저앉아 한참을 운다. 가족이 둘러앉아 외식하는 모습을 봐도 눈물이 나고 드라마를 봐도 책을 봐도 눈물이 났다. 그렇지만 아빠를 보내드려야 한다는 것을 안다.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은 그렇질 못한다. 이성과 감정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다가 어느날 문득 그냥 받아들이기로 한다.
슬픔은 피해 갈 수 없다. 피한다고 피해지지 않고 지름길도 존재하지 않는다. 슬픔은 마주해야 한다. 그렇게 아빠를 기억하기로 했다. 아빠가 생각날 때마다 생각하고 좋은 기억을 끄집어냈다. 좋은 기억을 마음 속에서 끄집어내기 시작하면서 슬픔이 기쁨이 되었다. 아빠와의 즐거웠던 추억을 하나하나 꺼내며 오히려 아빠에 대한 감정이 더 충만해졌다. 슬픔에 충실하자 고통과 절망과 아픔은 행복과 즐거움과 희망이 된 것이다.
슬픔을 충실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 과정의 시간들은 고통스럽고 아프겠지만 그 시간을 갖지 않은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상실로부터 영원히 자유롭지 못하다. 충실한 슬픔의 터널을 통과하면서 더 큰 사랑과 삶을 살아갈 희망을 얻게 된다. 그렇게 힘들어하는 자신 옆에서 터널을 잘 빠져나오길 묵묵히 기다려준 사람을 보게 된다. 내 슬픔에 빠져 아무것도 못 보고 있던 모든 순간을 옆에서 말없이 지켜주고 있던 사람을 보게 되는 것이다.
아직 마음이 여전히 슬프고 아프다면 더 울어도 된다. 흐르는 눈물을 일부러 참지 말고 그냥 둬도 된다. 언젠가 그 슬픔의 시간을 보내고 난 후 그 슬픔을 이야기하며 받아들일 수 있게 되면 하늘도 보고 별도 보고 나무도 꽃도 볼 수 있게 된다. 이별이 끝이 아니기에 슬픔 또한 끝을 내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별과 슬픔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그리고 아픔은 피할 수 없다. 그러니 더 이상 두려워하면 안 된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후 즐거운 추억을 더 많이 기억할 수 있도록 지금을 더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비는 그치고 바람도 잦아든다. 그리고 삶은 여전히 살아야 하므로 그 삶을 후회하지 않도록 추억할 것들을 더 많이 만들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해야 한다. 나를 만나는 모든 사람이 언젠가 나와 이별했을 때 나를 통해 더 나아지고 행복해지길 바란다. 앤이 매튜를 기억하며 더 행복한 삶을 살고 내가 아빠를 기억하며 더 성숙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