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어붙은여자 >
#아니에르노 #레모
#문학살롱 #도서협찬
“그는 그걸 무심하게 들어 넘긴다. 아치 평범한 언어인 것처럼. 혹은 고용주의 마음속에서 둔감하고 무시해도 되는 후렴구와 규정되는 특수 노동자의 항의인 것처럼.”
온 동네를 제집처럼 뛰어다니며 자신의 즐거움만 생각하며 살아온 생기 넘치고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여자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육아를 남편 뒤치다꺼리를 하며 몸도 마음도 얼어붙은 여자가 되는 이야기다.
세상이 변했다고는 해도 여전히 여자에게 더 가혹한 육아와 집안일을 겪고 있는 한국사회의 여성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남성들이 읽는 다면 ‘이렇게까지 생각한다고?’ 하며 고개를 흔들 수도 있다. 그래서 남자들이 이 책을 읽어봤으며 좋겠다. 물론 읽고 나서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중 어느 정도만 이해해도 세상은 지금보다 더 평화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자신의 발전을 위해 고민하고 노력해왔던 여자. 그 여자는 단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것뿐이다. 그러나 그 단순한 행동의 결과는 처참하다. 그녀의 삶은 결혼 전의 자유롭던 모습을 송두리째 뽑아 없애버리는 것이다. 또한 그 자유를 갈망하는 것조차 사치라고 생각하게 한다. 그런 면에서 사회는 무섭고 두려운 가치를 강요하는 독재자나 다름없다. 공동의 가치를 강요하고 그렇지 않은 소수를 비정상으로 치부하는 사회.
어느새 세상이 만들어 놓은 가치관에 자신을 맞추고 그 안에 안주하며 편안함을 추구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소스라치게 놀란다. 과거의 자신의 모습과 자신을 비교하며 더 나은 자신을 갈망하던 모습과는 달리 다른 여자들의 모습과 자신을 비교하며 그 안에서 우월감을 느끼기도 하고 좌절감을 느끼기도 한다.
나는 그들과는 다른 이상적인 사람을 찾아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게 될 거라는 순진무구한 환상을 품고 그런 남자를 찾고 찾아 결혼을 한다. 결과는 말하지 않아도 안다.
아들보다는 딸을 먼저 배려하고 더 좋은 것 더 예쁜 것 더 귀한 것을 경험하게 한 집안 분위기에서 자랐다. 엄마는 딸들에게 설거지도 시키지 않았고 아빠는 딸들에게 더 공부를 강조했다. 꿈을 꾸게 했고 딸들의 발전을 위해 시간과 돈을 아끼지 않았다. 여자를 더 아끼는 분위기에서 자란 나는 결혼을 하고 나서도 당연히 그렇게 생활을 했다.
집안 청소도 식사를 준비하는 것도 대부분의 것들을 결혼하고 나서도 나는 잘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나는 주눅 들지 않았고 그런 나를 당당히 표현했다. 결혼한 지 16년 지금도 나는 요리를 못 한다. 살림은 말할 것도 없다. 남편이 저녁을 해 놓고 빨리 들어오라고 전화를 하고 설거지는 자신이 하는데 왜 고무장갑을 작은 걸로 사냐고 투정을 부리기도 한다. 시댁 어른들도 내가 그렇다는 것을 받아들이셨고 이제는 그냥 요리를 해서 먹기 좋게 포장을 해서 주신다.
그렇다고 내가 막무가내 분별없는 아내도 엄마도 며느리도 아니다. 전생에 나라를 구한 여자도 아니다. 나는 그냥 나로 살아가면서 조금씩 맞춰가며 살고 있는 것이다. 아이를 키우는 동안 자신의 시간을 희생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 시간 동안 사회와 단절된 기분이 드는 것도 젖소와 같은 삶을 살고 있다는 좌절감에 빠지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아이들이 주는 행복과 즐거움이 있다. 오로지 나만을 의지하며 조그만 손으로 나의 손가락을 움켜쥐는 아이를 키워내는 일은 그저 나에게 주어진 축복이라고 여기기로 한다. 실제로 그렇기도 하다.
책을 읽으며 속상하고 짜증도 났다. 읽고 있는 나도 또 어딘가에서 함께 가슴을 칠 많은 얼어붙은 여자들을 대신해서 맥주 한 캔을 숨도 안 쉬고 들이킨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뿌리 깊이 박힌 남자와 여자에 대한 인식이 쉽게 바뀌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기 때문 일 것이다.
얼어붙어 버린 여자를 다시 녹일 수 있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 이혼?
얼어붙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비혼?
곧 얼어붙은 남자들의 세상이 올 것이다. 그러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 지금 뭐 하고 있는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않은가? 주저앉아 자신을 한탄만 하며 이번 생을 틀렸다며 그럭저럭 살다 말 것인가? 달라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