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작가 Oct 28. 2021

초밥집에서 먹은 케이크의 맛

초밥을 좋아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날것을 먹을 때의 느낌이 아직 살아 있는 것을 먹는 것 같아 기분이 썩 좋지 않아서다. 초밥의 맛을 제대로 알게 된 것은 나이 40이 넘어서다. 40이 넘어 알게 되는 것들이 많이 있다. 그중 하나가 초밥의 맛이다. 고들고들하게 양념된 밥이 입안 여기저기를 제각기 돌아다니며 씹힐 때 고추냉이가 알싸한 맛을 내며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강슛을 날린다. 그때 초밥 위에 올려진 생선 조각은 입안에 폭죽을 터트린다. 고들한 밥과 적당한 고추냉이 그리고 그 위에 올려진 것들은 입 안에서 축제를 벌인다. 왜 그때는 이 맛을 몰랐을까? 초밥의 맛을 알지 못했던 때가 아쉽기까지 하다.


어제는 동생과 오랜만에 점심을 같이 먹었다. 푸트코트에서 메뉴를 정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바람이 쌀쌀해지고 포만감도 느끼고 싶은 계절에 어울리는 회전 초밥을 점심 메뉴로 정했다. 점심시간이었지만 사람이 별로 없었다. 처음 가보는 음식점이라 직원의 설명을 강의 듣듯 들었다. 먹는 것에 진심인 편이므로 제대로 먹고 싶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초밥집에 왔는데 샤부샤부를 먹을 수 있다고 한다. 튀김을 마음껏 먹을 수 있고 우동이 오늘의 요리라고 했다. 조각 케이크와 쿠키 코너가 케이크 전문점만큼 크게 자리하고 있었다. 그 모든 것들이 반짝이며 나를 유혹하고 나섰지만 내 눈은 오직 빙글빙글 돌아가는 초밥에 꽂혀 굽힘이 없었다. 음식을 향한 대쪽 같은 마음이 대견하기까지 하다.


자리를 잡고 앉아 몇 접시를 먹을지 동생과 설레는 마음을 잠깐 교환하고 각자의 할 일에 집중하기로 한다. 먹고 싶은 초밥을 놓칠세라 눈을 크게 뜨고 돌아가는 초밥의 행진을 바라본다. '아니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실망하는 표정이 고스란히 드러났는지 동생이 공감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먹을 게 없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초밥들이 저렇게나 많은데 먹을 게 없다. 각종 새우 초밥과 달걀 초밥이 주를 이루었다. 연어 초밥의 연어는 너무 흐물거리고, 문어 초밥의 문어는 질겨서 씹어지지 않고, 장어 초밥의 양념은 또 왜 이러는 것이냐! 


고기라면 눈이 뒤집히는 우리 자매도 먹을 수 없는 고기가 있다는 것을 초밥집에서 알게 될 줄이야. 샤부샤부에 나온 얇게 썬 고기 색이 심창지 않았지만 끓이면 다 괜찮아진다은 신념으로 야채와 함께 가열차게 끓였다. 보글보글 야무지게 끓고있는 냄비에서 알 수 없는 냄새가 났다. 불을 껐다. 그리고 우린 자연스럽게 일어나 튀김 코너를 향해갔다. 감자튀김, 김말이, 또 새우튀김, 탕수육을 닮은 튀김을 하나씩 담아와 먹었다. 바삭바삭한 튀김이 바삭바삭 가뭄이 든 것 같은 마음속처럼 쓰다. 타이어를 튀겨도 맛이 있다는데 이렇게 튀기기도 쉽지 않았겠다.  마음이 상할 대로 상한 우리의 눈이 향한 마지막 희망의 불빛은 후식 코너에서 빛났다.


과일은 물기를 잃은 지 오래였고 그나마 먹을 만한 것은 알록달록한 크림이 잔뜩 올려진 미니케이크와 쿠키뿐이다. 접시에 올려 담은 케이크 네 가와 쿠기 두 개 동생과 하나씩 나눠 먹고 조용히 계산서를 집어 들었다. 점심 런치 특별가 19800원!! 오랜만에 비싼 케이크 먹었다. 초밥집에서 열과 성을 다해 사이드 메뉴를 설명할 때 알아봤어야 했다. 요란하게 설명할 때 알아봤어야 했다. 진짜가 사라진 설명을 귀 기울여 들었던 허망한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


삶을 살다 보면 그렇게 중심을 잃을 때가 있다. 확실한 목표를 두고 매일매일 계획을 세우며 그것을 향해 나아가지만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지, 삶의 알맹이가 무엇이지 헷갈릴 때가 있다. 해야 할 일은 못하고 하지 않아도 될 일에 열중하며 열심히 살았다고 스스로를 토닥인다. 그런 날들이 반복될수록 점점 목표는 흐릿해져 삶의 방향을 잃게 된다. 흔들릴 때는 다른 것을 보는 것보다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목표를 다시 한번 기억하며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초밥집은 초밥이 맛있어야 한다. 손님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다른 것들에 에너지를 쓰지 말고 초밥을 더 잘 만들기 위해 연구하고 공부하며 노력해야 한다. 우리의 삶도 그렇다. 케이크보다 초밥에 에너지를 쓰는 삶을 살아야 한다. 앞으로 초밥을 생각할 때마다 케이크가 떠오를 것이고 그럴 때마다 삶의 자세를 뒤돌아보게 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가족 단체 톡방을 만들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