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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작가 Dec 14. 2021

나의 어린 시절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나의 어린 시절을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다면, 그 이유는?”


나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어렵다. 다른 어떤 질문에도 당황하지 않을 자신이 있지만 나에 대한 질문에는 언제나 손에 땀이 나고 입이 바짝바짝 마른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나는 나를 알리고 싶지 않았다. 사람들이 나의 진짜 모습을 보면 내 옆에 있지 않을 것 같았다. 내가 살고 있는 환경을 알고 나면 아무도 나를 사랑해주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였을까? 나는 ‘선택적 고립’ 상태에서 살았다. 나만의 집을 짓고 그 안에는 아무도 들이지 않았다. 걷으로는 쾌활하게 웃고 일상적인 일들을 쉴 새 없이 떠들어 댔지만 진짜 나의 모습은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았다.


외로움.


어린 시절의 나를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외로움’ 일 것이다. 학년이 끝나면 흰 종이에 각자의 이름을 적고 반 모든 아이들이 그 이름에 적힌 친구들에게 한 마디씩 하는 롤링 페이퍼를 할 때마다 친구들은 ‘밝은 너의 모습이 좋아. 늘 긍정적인 모습 응원해. 늘 웃고 있는 모습이 좋아. 너랑 있으면 편해.’라고 했다. 그랬을 것이다. 아침에 부모님께 꾸중을 들어도 현관문을 나서면 나에겐 가면이 씌워졌으니까. 



“나는 내 안에서,

나 자신에게서 우러나온 삶을,

오로지 그런 삶을 살기를 원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데미안>



한 번은 가장 친한 친구가 술자리에서 “너는 왜 니 이야기는 안 해?”라고 물었다. 하루 종일 나는 쉬지 않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 친구는 왜 내 이야기는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현타. 술자리에서 친구가 나에게 했던 그 질문이 나를 멈추게 했다. ‘왜 나는 나를 드러내려고 하지 않지? 왜 나는 진짜 내 삶을 살지 못하고 있지? 왜 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사랑을 받으려 했을까? 왜 나는 외로움을 선택했을까?’ 스스로에게 끊임없는 질문을 퍼붓기 시작했다.


지금도 여전히 나는 말이 많다. 세상 모든 것들에 대해 떠들어 대고 세상 모든 것들에 대해 긍정적인 마음으로 살아간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내 생각을 표현하기 시작했지만 아직도 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데 두려움이 다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굳게 닫혔던 내 집의 창문을 열고 환기도 시키고 가끔 문 밖으로 산보를 나오기도 한다. 무거웠던 외투를 벗은 느낌 같기도 하고, 무릎까지 차오른 수렁에서 빠져나온 느낌 같기도 하고, 천근만근 무거웠던 마음이 가벼워진 것 같기도 하다. 


나를 들여다보는 것. 

그러므로 나를 찾아가는 것. 

그렇게 나의 삶을 살아보는 것.

내가 살고 싶은 삶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

그리고 그렇게 사는 것.


 지금껏 삶을 살아왔지만 그 삶이 진짜 내 것이었는지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내가 나에게 질문하기 시작하면서 내가 조금 더 나 다뤄진 것 같다. 내가 나답다니 좀 우습기도 하지만 나는 나답기 위해 많이도 돌아왔다. 아직도 나다운 것이 무엇인지 확신이 서지 않을 때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이젠 집 문을 걸어 잠그지는 않는다.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법도 알았고 나를 지키는 것이 문을 걸어 잠그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도 만났고 있는 그대로 사랑해줄 수 있는 사람들도 생겼다. 오늘도 나는 나에게 묻는다. ‘왜 그때 웃지 못했어? 왜 그 상황을 모른 척했어? 왜 말하지 못했어? 왜 괜찮은 척했어?’ 나는 나에게 묻고 나의 대답을 기다린다. 조금씩 천천히 나는 내가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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