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의학인 아로마 테라피의 관점에서는 인간 스스로 자신을 치유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관점을 취한다. 스스로의 몸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회복할 수 있게 도와준다는 관점으로 그 해답을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데서 의미를 찾는다. 현대 의학은 인간이 살아가는데 많은 혜택을 주었지만 생활 수준이 윤택해 지면서 사람들은 '조금 더 나은' 삶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각각 개개인의 특성에 맞는 치유와 회복의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한 것이다. 같은 치료 법이라도 개개인에 따라 회복 반응이 다르며 아로마 향기에 대한 반응읕 더욱 더 다양하다. 그래서 현대 의학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재현성'을 증명하기 어려운 점을 겪는다. 예를들어 '타이레놀을 먹으면 두통이 해결된다.' 라는 보편적인 적용방식에 있어 어려움에 봉착하는 것이다. 개개인의 상태에 따라 같은 향기라도 이 향기가 너무 좋을수도 있고 너무 싫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페퍼민트'향기는 저혈압이 있으면 좋아할 확률이 높다. 고혈압이 있으면 싫어할 확률이 높다. 페퍼민트가 혈관의 수축을 돕는 기능이 있기 때문! 실제로 저혈압이 있는 나, 그리고 함께 공부했던 수녀님은 매일 아침 페퍼민트 향기를 찾을 정도로 선호 하지만 고혈압이 있으신 아빠는 페퍼민트 향기가 '뾰족뾰족' '까끌까끌하다'라고 이야기 하시곤 한다
아로마 테라피의 관점에서 '너~무 좋거나' '너~무 싫다'는 반응이 내 몸의 어딘가가 필요하거나 도움이 필요하다는 반응으로 여긴다. 개인적으르도 건강했을 때는 '응 향기가 있구나' '으음~ 좋다' 정도의 반응으로 반응했다. 그러나 일련의 사건 사고를 겪는 상황을 통해 나는 아로마 향기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반려동물을 대상으로 아로마 테라피를 했을 경우에도 매우 신기한 일들이 일어난다. 반려동물은 사람의 1만배 정도 발달한 훌~씬 예민한 후각 세포를 가지고 있기에 더 확실하게 반응이 나타난다. 건강한 반려동물일 경우, 향기가 필요하지 않기에 '심드렁'한 반응이거나 아니면 '멀리 도망가는' 반응을 보인다. 그러나 그 향기가 반려 동물에게 필요할 경우에, 향기 가까이 다가와서 배를 벌러덩 드러내 놓고 애교를 부리거나 향기 가까이를 멤도는 신기한 광경을 목격하곤 한다. 친구의 구조된 고양이에게 치아를 전부 발치해야할 만큼 심각한 구내염이 있었다. 일곱마리나 되는 새끼 고양이를 살리기 위해 잇몸에 피를 흘리면서도 먹을 것을 꾸역꾸역 먹던 안타까운 고양이었다. 다행이 다정한 주인을 만나 치아 발치를 할 수 있게 되었으나... 출산 이후 필사적으로 먹을 이유가 없어진 이 고양이는 점점 말라가기 시작했다. 안타까운 고양이의 염증 조절을 위해 '카모마일'향을 맡게 했는데, 카모마일 향기가 나는 그릇에 코를 박고 내 앞에서 마구마구 애교를 부리는 신기한 광경을 목격했다. 물론 동물 병원에서도 도움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그 이후로 포동포동 살이 오르는 것을 보니 여간 뿌듯한 것이 아니었다.
1+1이 꼭 2가 되지 않기에 현대 과학의 관점으로 사람들을 설득하는데 어려움을 겪지만 분명한 것은 아로마 향기는 한 사람의 삶 또 반려 동물의 삶까지도 윤택하게 만들 수 있게 도움을 주는게 사실이다. 그러고보니 아로마테라피는 호스피스 병동과 정말 잘 어울린다. 아니 꼭 필요할 듯 하다. 삶을 되돌아보고 정리하는 시간을 가질때, 인생의 정답을 찾고 있을 것 같지는 않기에...
어디가 크게 아픈 사람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항상 치유와 회복이 필요한 존재일 수 밖에 없다. 그것은... 아마도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벗어나있기 쉬운 존재이기 때문일수 있겠다. 나는 '자연스럽다'라는 말을 참 좋아한다. 억지스러운것 보다 자연스러운 것이 좋다. 그러나 우리는 자연스럽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기 쉽다. 눈치를 보아야할 때도,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기준에 무리하게 맞추어 살려고 할때도 불필요한 비교를 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럴수도 있고 저럴수도 있다는 것. '정답' 보다는 '해답'을 찾아보는 것. 그러한 '오늘'을 하루 하루 살아내는 것. 호스피스 병동의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피어난 아로마 향기를 통해 배워간다.
최근 친구가 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꼭 눈앞에 돌을 하나씩 놓으면서 가는 사람 같아.
거창한 계획을 세우고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라.'
어쩜 이렇게 통찰력이 있을까? 정말 맞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평균'보다 느린 사람인 것 같다. 느린 것을 알았다는 것 자체가 큰 발전이다.
누군가가 말하는 정답보다, 나만의 해답을 찾아가는것.
이럴수도 저럴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가는것.
누구에게나 '처음'인 '오늘'의 이야기 이다.
눈 앞에 돌을 하나씩 놓으면서
오늘도 딱 하루만큼 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