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미움 그리고 사과 없이 용서에 다가가기.

'애증'과 '용서'에 대하여

by 개양이 CATOG

사랑하고 또 미워하는 사람이 있다.


그를 미워할 수만 있다면 좋겠는데 그게 안돼서 힘들다. 미움으로 그를 끊어내려고 하더라도 언저리에 남은 '애정'에 관한 감정이 나를 붙잡아 도돌이표 처럼 다시 그 자리에 돌려놓기 때문이다. 때론 그를 미워하는 마음이 생겼다는 상황에 대한 죄책감이 더 힘들어지게 만들곤 한다.


당장이라도 그 사람에게 달려가 그때 나에게 왜 그랬냐고 시시비비를 따지고 싶다. 그때 나한테 왜 그랬냐고, 너무한 것 아니냐고 말이다. 밤잠을 설치게 만들 정도의 커다란 미움의 감정이 물에 적신 솜처럼 무거워지다 보니 어느새 이 지독한 감정을 떨쳐버리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안쓰럽게도, 그 사람의 행동에 대해 진심 어린 사과를 받기란 쉽지 않다. 그 당시 그에게 나름의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나를 힘들게 했던 그 사람에게 달려가, '나 당신이 정말 미워요! 그때 나한테 왜 그랬어요?'라고 외치면, '너를 힘들게 해서, 네 마음을 알아주지 않아서 미안해.'라는 따뜻한 사과의 말을 들을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오히려 책망 또는 '그냥 네가 이해해.'라고 '그때는 이러저러해서 그럴 수밖에 없었어~!' '기억이 안 나'라는 말을 듣게 되면서 미움에 '원망'을 또 더하는 일이 생기곤 한다. 결국 물에 적신 솜 같은 미음이 점점 더 깊게 무거워지게 한다.


그러면, 마지못해 '용서'라는 것을 해볼까? 그 사람이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겠지 이해해보려고 노력해보고, 미움을 내려놓고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훌륭한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용서'라는 것을 해보려고 한다.

솔직히.... 억울해진다. '내가 도대체 왜?' 하는 생각이 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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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 지현 Jessie Jihyun Lee, 회복탄력성의 자연 시리즈, 회복탄력성의 버가못 (The resilient nature series, the resilient bergamot), digital print, 297mm x 297mm, 2021


그 사람을 이해해보려는 노력에도 그 미움이 덜어지지 않는 것은, 내 마음을 이해해보려는 노력이 빠졌기 때문이다. 사정이 있던 상대방의 마음은 그 사람의 것으로 제쳐두고, 쓰라렸던 내 마음을 오롯이 보살펴보기로 한다.


'도대체 나한테 왜 그런 거야? 상처받았단 말이야!'

'미운 마음이 들었던 것도 당연해.'

'원망이 들었던 것도 당연해.'


그럴 때는 그냥... 아 그래... 내가 그 사람을 미워하는구나.라고 인정해보기로 한다. 그 사람을 찾아가. 나 당신을 정말 미워해요~!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보자. 함부로 그 사람을 이해해보려고 하지 말고, 함부로 없었던 일로 하려고 하지 말고, 똑같은 일로 나에게 상처 주지 않게 그렇게 딱 내 마음을 지키는 거다.


그 누구도 방해할 수 없는 안전한 내 공간에서 그 지독한 미움에 대한 정당성을 온전히 수용하고 나면, 그 사람의 사과 없이도, 조금은 나른한 시선으로 그 사람을, 미움을, 응시할 수 있게 된다.


빼꼼히 고개를 내밀고 있는 그에게 느끼는 사랑의 감정도 배제하지 말자. 그에게 내가 허용할 수 있는 방식으로 사랑을 보내주고 사랑을 다시 되돌려 받을 생각을 하지 말고, 그에게 표현해도 내가 상처받지 않을 만큼만 그렇게 딱 나를 지키면서 마음껏 사랑의 표현을 허용하는 거다.


나의 애증은 그런 거다.


'그를 미워하지 말고 사랑만 해야 돼'라고 스스로에게 강요하는 마음도 내려놓아보자. 그를 사랑하는 건 미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한 거다. 그를 미워하는 건 사랑만 해야 한다는 강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한 거다. 그냥 그게 전부 다 내 거구나.라고 인정해 주는 거다.


나는 그를 사랑하고 그리고 미워합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한 번 크게 외쳐보는 것도 꽤나 괜찮은 것 같다.

'나는 그를 사랑하고 또 미워합니다. 그렇다고요!!'


미운 마음을 수용하니 미움이 덜어짐을...

느린 시선만이 남아있음을...

오. 롯. 이. 느껴본다.


사랑하고 미워하는 그 사람의 사과 없이 용서에 다가간다는 것은,

힘들었던 일들이 없었던 것으로 지워버린다는 게 아닌 것 같다.

끈질기게 용서를 받아내는 것도 아닌 것 같다.

그것은 미움을 붙잡고 있는 내 마음을 '탁'하고 놓아 버리는 것이다.


그를 무리해서 용서하기보다.

미운 마음을 붙잡고 있는 나를 놓아버리는 것이다.


그 찰나에 찾아오는 깊은 고요, 그리고 안도감이 썩 만족스럽다.

제시 지현 Jessie Jihyun Lee, 회복탄력성의 자연 시리즈 1-42 (The resilient nature series 1-42), digital print, 297mm x 297mm,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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