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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양이 CATOG Jun 26. 2022

사랑과 미움 그리고 사과 없이 용서에 다가가기.

'애증'과 '용서'에 대하여

사랑하고 또 미워하는 사람이 있다. 


 그를 미워할 수만 있다면 좋겠는데 그게 안돼서 힘들다. 미움으로 그를 끊어내려고 하더라도 언저리에 남은 '애정'에 관한 감정이 나를 붙잡아 도돌이표 처럼 다시 그 자리에 돌려놓기 때문이다. 때론 그를 미워하는 마음이 생겼다는 상황에 대한 죄책감이 더 힘들어지게 만들곤 한다. 


당장이라도 그 사람에게 달려가 그때 나에게 왜 그랬냐고 시시비비를 따지고 싶다. 그때 나한테 왜 그랬냐고, 너무한 것 아니냐고 말이다. 밤잠을 설치게 만들 정도의 커다란 미움의 감정이 물에 적신 솜처럼 무거워지다 보니 어느새 이 지독한 감정을 떨쳐버리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안쓰럽게도, 그 사람의 행동에 대해 진심 어린 사과를 받기란 쉽지 않다. 그 당시 그에게 나름의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나를 힘들게 했던 그 사람에게 달려가, '나 당신이 정말 미워요! 그때 나한테 왜 그랬어요?'라고 외치면, '너를 힘들게 해서, 네 마음을 알아주지 않아서 미안해.'라는 따뜻한 사과의 말을 들을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오히려 책망 또는 '그냥 네가 이해해.'라고 '그때는 이러저러해서 그럴 수밖에 없었어~!' '기억이 안 나'라는 말을 듣게 되면서 미움에 '원망'을 또 더하는 일이 생기곤 한다. 결국 물에 적신 솜 같은 미음이 점점 더 깊게 무거워지게 한다.


 그러면, 마지못해 '용서'라는 것을 해볼까? 그 사람이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겠지 이해해보려고 노력해보고, 미움을 내려놓고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훌륭한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용서'라는 것을 해보려고 한다. 

솔직히.... 억울해진다. '내가 도대체 왜?' 하는 생각이 들고 말이다. 


 제시 지현 Jessie Jihyun Lee, 회복탄력성의 자연 시리즈, 회복탄력성의 버가못 (The resilient nature series, the resilient bergamot), digital print, 297mm x 297mm, 2021


 그 사람을 이해해보려는 노력에도 그 미움이 덜어지지 않는 것은, 내 마음을 이해해보려는 노력이 빠졌기 때문이다. 사정이 있던 상대방의 마음은 그 사람의 것으로 제쳐두고, 쓰라렸던 내 마음을 오롯이 보살펴보기로 한다. 


'도대체 나한테 왜 그런 거야? 상처받았단 말이야!'

'미운 마음이 들었던 것도 당연해.'

'원망이 들었던 것도 당연해.'


 그럴 때는 그냥... 아 그래... 내가 그 사람을 미워하는구나.라고 인정해보기로 한다. 그 사람을 찾아가. 나 당신을 정말 미워해요~!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보자. 함부로 그 사람을 이해해보려고 하지 말고, 함부로 없었던 일로 하려고 하지 말고, 똑같은 일로 나에게 상처 주지 않게 그렇게 딱 내 마음을 지키는 거다. 


그 누구도 방해할 수 없는 안전한 내 공간에서 그 지독한 미움에 대한 정당성을 온전히 수용하고 나면, 그 사람의 사과 없이도, 조금은 나른한 시선으로 그 사람을, 미움을, 응시할 수 있게 된다. 


 빼꼼히 고개를 내밀고 있는 그에게 느끼는 사랑의 감정도 배제하지 말자. 그에게 내가 허용할 수 있는 방식으로 사랑을 보내주고 사랑을 다시 되돌려 받을 생각을 하지 말고, 그에게 표현해도 내가 상처받지 않을 만큼만 그렇게 딱 나를 지키면서 마음껏 사랑의 표현을 허용하는 거다.


나의 애증은 그런 거다.


'그를 미워하지 말고 사랑만 해야 돼'라고 스스로에게 강요하는 마음도 내려놓아보자. 그를 사랑하는 건 미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한 거다. 그를 미워하는 건 사랑만 해야 한다는 강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한 거다. 그냥 그게  전부 다 내 거구나.라고 인정해 주는 거다. 


나는 그를 사랑하고 그리고 미워합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한 번 크게 외쳐보는 것도 꽤나 괜찮은 것 같다.

'나는 그를 사랑하고 또 미워합니다. 그렇다고요!!'


미운 마음을 수용하니 미움이 덜어짐을...

느린 시선만이 남아있음을...

오. 롯. 이. 느껴본다.


사랑하고 미워하는 그 사람의 사과 없이 용서에 다가간다는 것은,

힘들었던 일들이 없었던 것으로 지워버린다는 게 아닌 것 같다.

끈질기게 용서를 받아내는 것도 아닌 것 같다.

그것은 미움을 붙잡고 있는 내 마음을 '탁'하고 놓아 버리는 것이다.


그를 무리해서 용서하기보다.

미운 마음을 붙잡고 있는 나를 놓아버리는 것이다. 


그 찰나에 찾아오는 깊은 고요, 그리고 안도감이 썩 만족스럽다. 

제시 지현 Jessie Jihyun Lee, 회복탄력성의 자연 시리즈 1-42 (The resilient nature series 1-42), digital print, 297mm x 297mm,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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