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 세계화의 진짜 모습을 마주할 때
초록빛 이파리보다 꽃망울이 먼저 터지는 목련은 봄의 전령으로 여겨진다. 계절의 변화를 가장 빠르게 체감케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봄의 전령 목련보다 더 빨리 봄을 알리는 손님이 나타났다. 중국발 황사다. 이맘때면 불어오는 모래 폭풍은 풀린 날씨가 무색하게 사람들의 발길을 실내에 묶어둔다. 세계의 공장이 된 중국과 맞닿은 한반도민의 비애다.
대기가 희뿌연 모래로 덮이는 동안 바다도 안심할 만한 곳은 아니다. 옆 나라 일본은 성공적인 도쿄 올림픽 개막을 위해 후쿠시마 원전 냉각수를 바다에 방출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방사능에 오염된 냉각수가 방출되면 가장 큰 피해는 일본 자국 다음으로 우리의 몫이다. 한국 정부와 국제 환경단체는 냉각수 방류에 적극 반대하고 있으나, 일본 정부를 제어할 실질적인 수단은 마땅치 않다.
세계화 열풍이 전 세계를 휩쓴 지 한 세대가 지났다. 그 이후에 각국 풍경은 급격히 변했다. 우리가 세계화로 얻은 건 경제적 번영만이 아니다. 각종 오염 물질도 국경을 넘어 지구 전체를 표류하고 있다. 우리도 황사와 오염수에 의한 피해자 신세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가 배출하는 수많은 폐기물은 한반도 땅을 가득 채운 뒤 영해 밖으로 떠밀려가고 있다. ‘기후 악당’의 명성은 쉽게 생기지 않는다.
냉전에서 승리한 뒤 서구 사회는 장밋빛 미래만을 그렸다. 자유주의와 시장경제로 이룩한 견고한 세계 질서, 그 속에서 항구적인 평화만 보였을 뿐이다. 미국의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말’을 점치기까지 했다. 역사의 발전은 이제 끝났다는 오만한 선언이었다. 그는 최근 서구 몰락의 원인을 탐구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한다. 세계화는 물론 주요 키워드다.
당시엔 우리도 다르지 않았다. 김영삼 정부는 Segyehwa(세계화)를 국정 운영의 주요 화두로 내건 바 있다. 어떤 성찰도 철학도 함의하지 못한 Segyehwa에 담긴 무한한 잠재력을 의심하는 이들은 드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의 세계화는 한동안 매우 성공적으로 보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모든 일엔 일장일단이 있는 법. 미국과 중국이 ‘기침’을 하면 우리는 ‘독감’에 걸리는 높은 외부 의존도는 우리가 감내해야 할 것이었다.
그렇다면 21세기 들어 문제시 되고 있는 국경 없는 오염 물질도 그간 세계화의 수혜를 누려온 우리가 감당해야 할 짐인지 모른다. 모래 폭풍도 방사능 오염수도 단순히 이웃국가의 부주의가 아닌 우리가 추종해온 세계화의 결과물일 수 있으니 말이다. 왕이 되고 싶은 자는 왕관의 무게를 견뎌야 한다는 말이 있다. 이제 세계화의 진짜 모습을 마주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