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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sy Jan 07. 2021

[작문연습26] 조두순

- <베니스의 상인> 속 한 장면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베니스의 상인> 속 한 장면. 샤일록은 약속된 날짜에 돈을 갚지 못한 안토니오를 찾아간다. 계약에 따라 그의 살 1파운드를 가져가겠다고 말한다. 안토니오는 원금보다 훨씬 많은 돈을 줄 테니 봐달라고 하지만 샤일록은 계약 이행만을 강조한다. 갈등 중재에 나선 재판장은 샤일록을 설득해 합의를 종용한다. 샤일록은 정당한 계약을 이행하는 것으로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재판장은 결국 계약의 이행을 허락한다. 단, 살을 가져갈 때 피는 한 방울도 흘려선 안 된다는 조건을 분명히 했다. 계약에 피를 가져간다는 언급은 없었기 때문이다.


 재판장의 기지가 한 사람의 목숨을 건진 이야기다. 이를 현대를 배경으로 재해석한다면, 21세기 재판장의 처지는 이야기 속 재판장보다는 샤일록에 더 가까울 것이다. 죗값에 합당한 형벌을 내리는 과정이 샤일록이 안토니오의 살 1파운드를 피 흘리지 않고 도려내려는 시도처럼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의 ‘존경하는’ 판사님들은 자주 입방아에 오르곤 한다. 회자되는 경우는 드물다. 대게 판결의 적절성을 문제시하는 비판의 대상으로 언급된다. 판사들이 양형 이유에 공을 들이는 이유다.


 그 이유란 가지각색이다. 법리적으로는 전부 합당한 이유겠지만 사람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표현도 자주 등장한다. 사회·경제적 공헌, 건강상의 이유 따위로 형량을 낮춰주는 경우다. 그중 압권은 음주로 인한 심신 미약 상태가 감형으로 이어진 상황일 것이다. 국민적 공분을 일으켰던 조 씨의 감형 이유이기도 했다. 재판장은 주취 상태를 이유로 입에 담기도 힘든 흉악 범죄를 저지른 조 씨에게 12년형을 선고했다.

  

 국민 대다수가 납득하기 힘든 형량이었다. 안토니오의 살만을 도려내겠다던 샤일록이 1파운드의 살보다 많은 양의 피를 흘린 격이었다. 조 씨 출소가 가까워지자 정부는 부랴부랴 대책을 마련하며 국민적 공분을 잠재우고자 했다. 민심은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재판장의 판결에 수긍하지 못한 이들은 스스로 재판장이 되고자 했다. 몇 사람들은 조 씨의 집으로 찾아가 그를 죽이겠다고 소리쳤다. 언론은 이들의 행태를 중계하듯 보도했다. 그 사이 피해자의 잊힐 권리와 주민들의 사생활은 보호되지 않았다.


 모두가 재판관을 자처하는 사회는 일면 정당해 보인다. 국가 권력이 저지른 과오를 바로 잡겠다는 행동이 정의롭게 느껴지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런 사회는 이미 오래전 구시대의 유물이 됐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사회적으로 커다란 부작용을 야기해왔기 때문이다. 사인 간의 재판과 처벌을 용인한다면 도려낸 살과 흘린 피로 온 사회가 얼룩질 것은 자명하다. 피를 흘리지 않고 살을 도려내는 방법은 없다. 그러나 그 피는 최소화 해야 한다. 재판관의 어깨가 무거워야 하는 이유이자 재판관이 존재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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