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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sy Jan 28. 2021

[작문연습41] 대형 드론

- 불쌍한 비둘기는 죄가 없다

 중요한 일을 앞두고 희생물을 바치며 성공을 기원하는 건 인류의 오랜 전통이다. 그런 점에서 88 올림픽 성공의 영광은 일정 정도 비둘기의 공이 돼야 한다. 개막식 날 먼 길을 달려온 성화 봉송 주자가 성화대에 불을 붙였다. 성화대에 앉아있던 비둘기들은 불길이 치솟자 속절없이 불구덩이 속으로 떨어져야만 했다. 평화의 상징으로 흩뿌려진 비둘기들은 멀리 날아가지도 못한 채 올림픽 성공을 위한 제물이 된 셈이다.


 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 덕인지 비둘기는 오랜 기간 평화의 상징으로 활약했다. 그 뒤로 많은 장소에서 비둘기 날리기 행사가 등장했다. 비둘기가 가장 활약한 곳은 발라드 가수의 무대였다. 노래가 절정에 이르면 순백의 비둘기가 무대 위로 날아들었고, 분위기는 고조됐다. 서울 도심에 방생된 외국산 비둘기들은 대를 이어가면서 토착화됐는데, 그 과정에서 얼룩덜룩 회색 무늬도 생겨났다.


 서울의 삶은 사람에게만 고된 게 아니다. 조(鳥)생은 인생보다 고단하다. 인간이 먹고 남긴 찌꺼기를 찾아 좁은 골목길을 배회하는 삶이다. 영양 상태가 좋지 못한 것은 당연하다. 아스팔트 바닥은 발 건강에도 최악이다.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는다면 도심에서 두 발이 성한 비둘기를 찾아보기 힘들단 사실을 알 수 있다. 미국의 과학 잡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카는 홈페이지에 각국 도심의 비둘기를 추적한 사진을 게재한 바 있다. 눈물 없이는 스크롤을 내리기 힘들다.


 어떤 이들은 이 같은 비둘기들을 불쌍히 여겨 과자 가루를 뿌려주기도 한다. 그러나 대다수에게 비둘기는 유해동물이다. 비둘기 날갯짓에 온갖 지저분한 먼지들이 쏟아진다고 하니 당연한 반응이다. 비둘기 똥은 어떤가. 시도 때도 없이 아무 곳에서나 볼일을 본다. 그 탓에 시설물 부식과 세차의 주범이다. 사람들의 혐오를 온몸으로 받아내는 비둘기들은 종종 도심 로드킬로 생을 마감하기도 한다.


 서울 하늘의 비둘기들은 조상들이 영문 없이 타국으로 팔려온 순백의 비둘기란 사실을 알고 있을까. 최근 비둘기들에게 나쁜 소식이 하나 들린다. 서울시가 2025년 드론 택시를 상용화하겠다고 나섰다. 승객이 탄 대형 드론과 비둘기가 서울 하늘을 공유하게 된 것이다. 드론 택시가 성공적으로 안착된다면 교통난에 시달리는 서울시민들의 삶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반면 근미래에 비둘기들은 로드킬을 넘어 버드 스트라이크까지 걱정해야 할 수도 있다. 평화의 상징 비둘기는 어느새 도시의 천덕꾸러기가 됐다. 비둘기는 앞으로도 인간들의 혐오를 피하긴 힘들 것이다. 병들고 더러운 비둘기를 위한 동물권은 어디에도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잊지 말자. 비둘기는 인간을 위한 제물이었단 사실을. 불쌍한 비둘기는 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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