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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sy Mar 01. 2021

[작문연습64] 불

- 공통의 경험도 정서적 유대도 없는 타인에게

 ‘강 건너 불구경’은 이제 우리 삶에 하나의 태도로 자리 잡았다. 전통적으로 농업 국가였던 한국에서 공동체 밖 개인은 생존에 불리했다. 산업국가로 발돋움한 후에도 공동체 지향의 삶은 오랜 시간 강요돼왔다. 그 때문에 민주화 이후 한국의 역사는 개인주의 확산의 과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엇이든 빠르게 해치우는 나라답게 눈치 보며 혼밥 하던 나라에서 혼밥이 트렌드가 된 나라로 거듭났다. 이젠 공동체에 속박된 삶에서 벗어나는 것을 넘어 나와 남 사이에 거대한 강마저 생기는 양상이다.


 개인 간 분화는 두 층위에서 발생하는 듯하다. 물리적 분화가 가장 두드러진다. 부동산을 위시한 자산 가격 상승은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의 생활을 분리시켰다. 이제 한 교실에서 고소득 부모와 중산층, 저소득층 가정 내 학생들이 섞이기는 힘들어졌다. 강남 8학군을 중심으로 자산 가격에 따른 지역 분화가 거의 완료됐다. 혹자의 말처럼 “어디 사세요?”란 말이 실례가 된 시대다. “무슨 계층이세요?”와 같은 질문이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정서적 분리도 가속화되는 중이다. 사는 환경이 달라지면 보이는 풍경도 달라진다. 이른바 문화 자본론이다. 스마트 기기의 발전은 너와 나의 공통 공간도 삭제했다. 예전처럼 모두가 인기 TV 방송을 시청하는 시대는 저물었다. 각자의 관심사에 몰두한 채 관심을 공유하는 이들끼리 결속력을 다진다. 코로나 위기는 공간과 정서의 분리에 마침표를 찍었다. 상황이 이러하니 강 건너에 불이 나도 큰 관심이 없는지 모른다.


 그사이 사회 문제에 대한 해법 찾기는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합의와 양보 없이 해결할 수 있는 사회 문제는 없다. 그러나 강 건너 불을 끄기 위한 약간의 수고에도 강한 저항이 튀어나온다.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다. 공통의 경험도 정서적 유대도 없는 타인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긴 쉽지 않다. 불이 강 건너를 다 태워도 내가 사는 곳까지만 불똥이 튀지 않으면 될 일이니 말이다. 말 그대로 각자도생의 세상인 셈이다.


 이런 사회에서 개인은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분투해야 한다. 불똥이 튀지 않도록 남과 나 사이의 강을 더 깊고 넓게 만든다. 그러나 그럴수록 남이 나를 구하는 일도 요원해지기 마련이다. 권위주의 시대에서 탈출해 우리 사회가 처음으로 꿈꿨던 개인주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적어도 지금의 모습은 아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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