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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야 LEEya Oct 24. 2021

끝나지 않는 꿈의 마력

문제는 꿈이다

지금도 우리는 꿈을 꿀 수 있을까? 우리의 새로운 꿈은 늦어 버린 것이 아닐까? 마흔의 꿈이라니! 꿈이 아니라 노후준비가 급한 것이 아닐까? 도전을 했다가 갖은것을 잃지는 않을까? 망치면 다시 시작할 기회가 없을 텐데 해도 될까? 마흔의 꿈을 이야기하려고 시작을 하면 이미 수도 없이 질문이 올라온다. 이 질문들에 답이 꼭 있어야 하는지 아닌지도 모른 채 질문만 던지며 우물쭈물한다. 

꿈은 또 다시 걷게한다, 살게한다 2021.10

나의 마흔의 꿈은 마흔에 관한 에세이를 쓰는 것이었다. 정말이지 많이 망설였다. 마흔에 관한 에세이를 내가 써도 될까? 쓸 수 있을까? 영어교육에 관해서는 그냥 앉아서도 몇 시간을 이야기할 수가 있으니, 내 일에 관한 이야기를 쓰는 것이 더 안정적이지 않을까? 에세이를 쓰려면 글을 많이 써 본 경험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이삼십 대에 에세이집 한 권 정도는 내고, 상도 타보고... 그래야 하지 않을까? 그저 꿈을 조용히 실현해가면 되는 것을 쓸데없이 주변을 살피기 시작한다. 주변은 이미 노후준비가 끝난 사람들도 있는데, 나는 너무 준비도 없고 무지한 것은 아닐까? 갑자기 주제가 노후준비로 가는가 하면, 무엇이 건설적인지 정의도 내리기 전에 ‘이 꿈이 건설적인가?’를 묻는다. 점점 이유도 없는 질문을 한다. 한가로이 마흔에 관한 자료나 조사하고, 글을 읽으며 감동하고 있는 것이 괜찮을까? 책을 이렇게 자꾸만 사들여도 괜찮을까? 마흔에 에세이 한 번 써 보겠노라고 꿈을 꾸는 순간에도 이렇게 어지러운 질문들에 휩싸인다. 


“문제는 꿈이다. 꿈을 품은 마흔은 젊지만 잃은 마흔은 이미 늙은 것이다” <마흔의 서재> 장석주의 글을 읽었다. 책을 읽는 내내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그저 글을 쓰고 싶었다. 나는 글을 써야겠다. 초보여도 좋고, 훌륭하지 않더라도 써야겠다. 또다시 다음으로 미루는 일은 그만두어야겠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자. 미룬다고 이 마음이 사라지지 않을 것 같으니, 그냥 해 보자. 사그라지지 않는 꿈은 바라볼 때마다 생생하다. 당장 내 손에 결과로 잡히지 않아도 내 마음이 그곳에 있다면 마음이 말하는 곳으로 가보자. 딱 한 발자국만 가 보자. 그러고 나니, 가로막던 온갖 질문들이 사라진다. 왜 할 수 없는지 변명이나 하듯 반복하던 질문들이 멈추어진다. 내가 생각하는 그 꿈이 실제로 존재한다. 마음의 두근 거림이 그 증거이다. 살짝만 그 쪽으로 움직여 본다면, 내 꿈의 실체를 보게 될 것이다. 


꿈을 이야기하는데 복잡한 질문들이 발목을 잡는 것은 두려움 때문이다. 마흔이 넘어 새로운 도전을 하고 꿈을 이룬 사람들의 성공담이 한둘일까? 마흔이라 시작할 수가 없고, 꿈을 꿀 수가 없다고 누구도 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이를 넘어선 도전에 박수를 보내기도 한다. 성공담은 아름답고, 도전할 수 있는 동기를 준다. 딱 거기까지다. 문제는 늦게 시작했지만 ‘성공했다’에 집중하는 태도다. 그 때문에 자꾸 ‘늦게 시작하는 꿈이니 나도 그들처럼 성공을 해야겠지?’하는 아무도 주지 않은 부담감을 끌어안는다. 시작은 어찌해 보겠는데 결과가 좋아야 한다는 부담이다. 꿈의 실현은 만들어 가는 것이다. 한 번에 활을 쏘아 과녘에 맞추겠다는 욕심을 내려놓으면 꿈을 이루어 가는 과정도 이미 꿈의 실현이다. 나는 내 인생의 꿈을 한 땀 한 땀 수놓듯 실현해 가고 싶다. 중학교 시절 수를 놓아 본 적이 있다. 한 땀 한 땀 그 작은 수가 모여 큰 그림을 만들었다. 지루한 듯 같은 움직임인 듯 보였던 것이 마침내 하나의 모양을 띄었을 때의 밀려오던 기쁨을 기억한다. 그렇게 하나씩 하면 된다. 


꿈은 진정한 ‘나’를 만나는 것이다. 막연히 ‘~을 하고 싶어요’ 말하는 것 같아도 그 안에는 ‘내가 누구인가? 나는 결국 어떤 사람인가’가 들어있다. 정말 자신의 꿈을 만난 사람은 그 꿈이 큰지 작은지 비교하지 않는다. 초라한지 화려한 지도 따지지 않는다. 꿈, 그 자체의 순수함을 소유한다. 진정으로 자신의 꿈을 만나면 사람은 기어이 그것을 향해간다. 능력이 있고 없음을 따질 필요도 없다. 진정한 꿈은 삶을 인도한다. 꿈이 생기면 욕심이 생긴다. 뭐 그 욕심이 좋고 나쁨의 문제는 아니다. 하고 싶은 마음이다. 욕심이 생기면 힘이 들어도 해 내고 싶어 진다. 그럼 거기서부터는 스스로 방법을 찾는다. 어려움도 감당하면서 그 꿈을 향해간다. 역경과 어려움이 있더라도 꿈을 향한 여정은 설레고 가슴 벅찬 움직임이다. 


그러니 마흔의 꾸는 꿈에 귀 기울여 보자. 그 꿈이 우리를 더 용감하게 할 테니.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나 자신의 한계도 넘게 할 테니 말이다. 꿈은 결국 우리를 자유롭게 할 테니 말이다. 꿈을 꾸는 것은 현실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다. 꿈을 꾸는 것은 앞으로의 시간을 당겨 머릿속에 구상해 보는 것이다. 그러니 꿈은 현실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 현실이라는 화폭에 그림을 그려나가는 것이 꿈을 실제로 이루어 가는 과정이다. 꿈을 꾸는 사람은 현실적이면서도 동시에 현실을 넘어선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상상하는 능력을 발휘한다. 당장의 결과에 굴하지 않고 그 너머에 있는 큰 그림을 실현시키고자 앞으로 간다. 실패와 두려움을 넘어서서 마음껏 살아가게 한다. 마흔의 꿈은 더욱 나다운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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