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주의자는 있어도 완벽한 사람은 없다
“사실 뭐 꼭 제가 완벽주의는 아니에요. 잘하고 싶은 정도?” 대부분의 완벽주의자들의 반응은 이렇다. 완벽주의자들은 스스로 두 가지를 잘 인정하지 못하는데 하나는 자신이 완벽주의라자라는 것과 또 하나는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다는 것이다. 자신이 완벽주의자라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이 완벽하게 완벽주의자의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상에 완벽한 존재는 없음을 인정하지 못하는 이유는 완벽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스티븐 호킹 박사의 “우주의 한 가지 기본적인 법칙은 아무것도 완벽한 것은 없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완벽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불완전함이 없다면 우리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은 완벽주의자들 입장에서는 충격적이다.
마흔, 이제는 완벽에 대한 허상을 벗어버리고 싶다. 꼭 원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레 내려놓아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세상에 완벽한 것이 없다’라는 말은 완벽하지 않은 스스로에게도 적용하고 싶어 진다. 사실은 완벽이라는 기준은 나에게만 있다는 것. 세상에는 내가 기준에 완벽하게 맞는 것은 없다는 것. 나 또 한 내 ‘완벽’에 기준에 맞출 수 없다는 것을 이제 그만 받아들이고 싶은 때이기도 하다. 완벽이라는 기대를 내려놓고 그대로를 볼 수 있을 때 비로소 삶은 충만해진다. 내가 만든 나에 대한 완벽한 기준으로부터 자유로와진다.
완벽주의에는 슬픔이 있다. 어디도 존재 불가능한 완벽을 충족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스스로 정한 ‘완벽’에 늘 도달하지 못하는 슬픔. 도달하지 못하니 스스로를 못나게 여기는 슬픔이 있다. 그 때문에 어떤 무엇이든 완벽하게 할 수 없을 것 같으면 시작조차 않는다. 하는 일의 결과가 자신이 생각하는 기준에 완벽하게 부합되지 않으면 일이 아직 끝났다고 조차 생각하지 못한다. 계속 시달린다. 때로는 완벽하게 해 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일을 미룬다. 완벽주의자들이 게으르거나 느리다고 오해를 받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뭐 완벽주의가 도움이 될 때도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일은 ‘완벽’하게 할수록 좋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심리학자들은 완벽주의와 일을 잘해서 성과를 내는 사람의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가장 큰 차이는 똑같이 일을 잘해 놓고도 완벽주의자는 만족이 없다고 한다. 결과에 대한 만족이 없기도 할뿐더러 자신의 노력에 대한 만족도 없다는 것이다. 열심히 하고도 만족이 없으니 잘하고도 행복하기는 틀려 보인다. 그리고는 이 부분이 더 놀랍다. 완벽주의자들은 일을 잘해 놓고도, 자신이 진정 완벽하게 능력이 있었다면 그 일을 성취하는데 그렇게 고생을 안 해도 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단다. 말하자면, 자신이 완벽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의 성과를 내는데 남다른 노력을 했어야만 한다는 생각을 한다는 것.
심리학자들의 글을 모아 정리해 놓은 GoodTherapy라는 사이트에서 완벽주의자들의 행동에 대해 정리해 놓은 예는 흥미롭다. 이 행동들의 리스트들은 이러하다. 1) 이메일을 쓰는데 30분 동안 쓰고 다시 쓰고를 반복해서 2 문장을 쓴다. 2) 시험에서 2점을 깎인 것이 실패의 증거라고 생각한다. 3) 성공한 사람들을 보며 행복해하기 어렵다. 4) 완벽하게 하지 않을 바에야 의미가 없기 때문에 수업에 빠지던지 집안일을 하지 않는다. 5) 다른 이들의 성취의 기준에 자신을 맞추려 하거나 자기 자신을 비판적으로 다른 이들과 비교한다. 등등이 있다. 읽으면서 들킨 것 같아 웃기도 놀라기도 했다.
나의 완벽주의는 어디서 온 것일까? 작은 일을 성취하고도 기뻐라 하는 이들이 부럽다. 완벽주의 때문에 도전한 것도 있겠지만, 그만큼 마음에 흡족함이 없었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어쩌면 완벽을 추구하는 것은 나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하나의 방법이지 않았을까? 잘 해내면 돋보이고, 그러면 나의 존재가 더 드러난다고 생각했던 게 아닐까? 누구에게 나의 존재를 드러내려는 건지 조차도 모른 채 말이다. 이 앞뒤가 안 맞는 생각이 마음의 방황을 만들어 내었구나 싶다. 과연 존재가 증명이 되던가? 존재는 그저 '있는 것'이며 실제다. 하늘의 존재가, 바다의 존재가 없다고 부정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의 존재도 실제다. 증명하고 말고 가 없다. 존재는 증명해 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인정하는 것이다. 그 증명할 수 없는 것을 ‘완벽하게 무언가를 해냄’으로 증명하려 했으니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었던가?
나는 일을 참 열심히 했다. 왜 그렇게까지 하느냐고 주변에서 많이 물었다. 그때마다 나는 내 일에 대한 책임이 크고 결과를 만들 때의 기쁨이 크다고 말했다. 거짓은 아니다. 하지만, 정해놓은 기준에 스스로 모자란 것 같은 슬픔에 그다음을 그다음을 생각하고 있었다. 일을 사랑하고 열심히 한다는 것은 멋진 일이었다. 하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고 스스로의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나를 마구 몰아치곤 했다. 그러니 어느 순간 지치는 시간이 왔다. ‘내가? 일에 지친다고?’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심지어 그 순간에도 더 완벽하게 늘 생기 있게 살아내야 한다고 스스로를 떠밀었다. 하지만 이제는 알고 있다. 실은 일에 지친 것이 아니라 나의 완벽에 대한 집착, 그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실망감이 나를 지치게 했다는 것을. 말도 안 되게 일로 존재를 증명하려 했다는 것을. 나는 더 이상 일과 존재의 가치를 섞지 않기로 했다. 완벽주의를 저 멀리 보내고 편해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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