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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야 LEEya Oct 24. 2021

쉼표 없는 음악이 상상이 안되듯

쉼은 잘 살기 위함이다

쉼표가 없는 음악은 상상할 수가 없다. 아름다운 선율의 음악이 연주된다. 그리고 연주를 하다가 한 박자, 반 박자, 때로 그 보다 더 짧게 혹은 더 길게 아무 소리가 나지 않는 쉼이 있다. 그 쉼을 표시해 주는 기호, 쉼표. 쉼표 없이 연주되는 음악은 없다. 만약 음악이, 쉼표 없이 연주가 된다면, 연주자들이나 듣는 이들 모두가 질식할 것이다. 쉼표라는 짧은 쉼은 음악에서 빠질 수가 없는 요소이다. 음악의 쉼표는 여러 역할을 감당한다. 쉼표, 그 짧은 쉼의 순간. 그 침묵은 단절이라는 오해도 받지만, 사실 음악의 전체적인 흐름을 연결해 준다. 또한 잠시 숨을 쉴 틈을 준다. 이 틈은 연주자와 듣는 이를 쉬게 한다. 그리고는 음악에 깊이와 감정을 더한다. 이 뿐 아니다. 쉼표는 새로운 시작을 알려 주기도 앞과 뒤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하기도 한다. 쉼표 없이는 온전한 음악의 완성은 없다. 

쉼표는 음악을 완성시킨다 (2021. 10)

쉼표가 있어야 음악이 완성되듯이, 삶에도 쉼표가 필요한 순간들이 있다. 그 순간을 놓치면 전체 흐름에 문제가 생긴다. 그야말로 몸과 마음이 번 아웃(burn out), 소진이 되어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은 상태가 된다. 마흔을 가까이 두고 혹은 마흔을 넘어 이렇게 소진되는 경험을 하는 주변 사람들을 보았다. 이런 소진이 일어나는 것은 단지 마흔이 되어서가 아니다. 나이가 더 들어서가 아니라 이미 무리한 상태로 버틴 탓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 소진이 오기 전에 쉼표를 찍어야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쉬지 못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멈추면 끝날 것 같기 때문이다. 또한 잠시의 멈춤을, 잠시의 침묵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 쉬지 못한다. 주변은 계속 움직이고 있는데, 쉬면 도태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쉬지 못하기도 한다. 그러나 명백하게도 음악에서 쉼표가 끝이 아니듯 삶에서도 쉼표는 끝이 아니다. 내용이 조금 다른 인생을 펼치기 전에 꼭 필요한 멈춤이다. 더 나은 연주를 위한 쉼이다. 


정말이지 잘 쉬고 싶다. 몸과 마음에 새로운 에너지를 얻기 위해 잘 쉬고 싶다. 다양한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기 위해 잘 쉬고 쉽다. 무엇보다 즐거워하고 설레며 살기 위해 잘 쉬고 싶다. 쉼은 어디에 있을까? 어떻게 쉬면 잘 쉴 수 있을까? 정말 쉬는 상태는 어떤 상태일까? 쉼은 고요함 속에 있는 것이다. 고요함 속에 있는 마음의 상태가 쉼이다. 쉰다고 종일 텔레비전 앞에 앉아있지만 또는 종일 누워 있지만 여전히 쉰 것 같지가 않다. 잘 쉬었다면 개운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니, 잘 쉬지를 못 한 까닭이다. 몸은 늘어져 있는 듯 보여도 머릿속이, 마음이 쉬지 못했으니 결국은 쉬지 못했다는 말이다. 진정한 쉼은 마음의 고요함에서 온다. 그리고 얻어내기가 쉽지가 않다. 


어떻게 쉬면 ‘쉼’을 누렸다 말할 수 있을까? 짧은 시간이라도 마음의 고요한 상태를 누릴 수만 있다면 진정한 쉼을 만나본 것이리라. 18년간 영어를 가르치며 지내왔다. 두 권의 책을 출간하고 나니 강의 문의도 들어왔다. ‘지금이 더 열심히 뛰어야 하는 때구나.’하던 그때 몸에 무리가 온 것을 알았다. 첫 번 째 책을 쓰면서도 정신을 한 번 잃은 적이 있으니, 두 번째 책은 체력 관리에 신경을 많이 썼다. 좋다는 것을 챙겨 먹기도 하고 할 일이 아무리 많아도 잠은 충분히 자려고도 했으며 틈틈이 운동도 챙겨했다. 그런데 두 번째 책을 출간하고는 기력이 다 빠진 것 같았다. 허리에 통증이며 지친 느낌이 몇 달간 사라지지 않았고, 출간 후에 계획한 강의들도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었다. 머릿속에서는 지금이 더 빨리 많이 일을 해야 할 때가 아닐까 하는 부담감이 떠나지 않았다. 몸은 따라주지 않고 막상 많은 일을 하고 있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쉬지도 못하는 상태로 시간만 갔다. ‘왜 하필 지금 그렇게 지친 거야? 일어나 뛰어야 하지 않겠어?’ 스스로를 다그쳐도 보았다. 동기를 부여받을 만한 강의도 찾아보았다. 고요히 쉬지 못했던 시간. 그렇다고 일에 뛰어들 수도 없을 만큼 지쳤던 시간. 결국 스스로 지쳤다는 게 받아들여지자, 그제야 쉬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에게는 지금 쉼이 필요한가 보다. 상황적으로는 책을 출간하자마자 활발히 활동하는 게 맞아 보이지만, 나에게는 쉼이 필요한 시간인가 보다.’ 인정하고 나니 마음이 놓였다. 그제야 마음이 잠잠해진다. 그제야 깊은 잠도 자기 시작을 했고, 그제야 나를 돌보기 시작했다. 음악의 쉼표처럼 충분히 쉬고 나면 새로운 내용의 악장이 펼쳐지겠지 하는 기대감으로...


쉬기 위해서는 결단이 필요하다. 잘 쉬기 위해서 꼭 필요한 일만 했다. 당장 급하지 않은 일이나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들은 모두 멈추었다. 잘 쉬기 위해 일도, 생활도 단순하게 했다. 꼭 해야 하는 영어수업들을 제외하고는 일부러 일을 늘리지 않았다. 나머지 시간은 운동을 하거나 충분히 휴식을 취했다. 좋아하는 책들도 읽고, 사람들도 만났다. 당장 하던 일을 모두 멈출 수 없었다. 하지만 매일 무엇을 꼭 해야 하는지를 분별하고 잠시라도 가만히 쉬는 시간을 만들었다. 그리고 나니 숨이 쥐어지고, 그리고 나니 다시 무언가가 하고 싶어졌다. 쉼이 가져다준 선물은 전보다 더 강렬한 삶에 대한 열정이다. 지금 지쳤있다면, 용기를 내어 스스로에게 쉴 기회를 주자. 적절한 쉼표가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내듯, 쉼은 인생을 더 찬란하게 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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