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습 002. 일요일

기록하는 습관 002_2019.12.01

by 이연

일을 하지 않아도 일요일이 아침이 주는 공기는 다르다. 2층 침대를 쓰는 동생은 아침마다 몇 번이고 알람을 꺼버린다. 7시부터 시작되는 알람은 주기적인 간격으로 울린다. 속이 텅 비어서 더 울림이 큰 철제 침대 전체가 운다. 동생도 회사에 가기 싫어 울면서 내려온다.


일요일은 그런 긴장이 없다. 퇴사한지 3주차에 접어든 나도 좀 더 늦잠을 즐긴다. 누워 있는 상태로 밀린 카톡과 밤 사이 밀린 세상사를 검지로 살핀다. 몇 번을 뒤척거리다가 일어나서 화장실을 간다. 화장실을 가야만 그제야 일상이 시작된다. 2층 침대에 자는 듯 누워 있는 동생은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폰을 한다. 동생이 깨어 있는 게 반가워 2층에 올라 가서 손을 잡았다.


“뭐야?”

난 동생이 싫어하는 게 좋다. 때때로 무례하고 퉁명한 게 좋다.


“배고파. 밥해줘.”

하지만 밥해달라는 동생은 싫다.


“마트 가서 닭만 사와. 그럼 닭도리탕 해줄게.”

동생이 솔깃한 제안을 한다. 그럼 나는 어디서 사야 하는지, 어떤 걸 사야하는지, 다른 건 살게 없는지 계속되는 질문으로 동생을 귀찮게 한다.


“그냥 나랑 같이 가자.”

언니가 못미더운 동생은 침대에서 내려온다. 성공이다.


*


쿠쿠가 밥을 하는 평온한 주말. 동생과 나는 각자 몫의 일을 한다. 동생이 요리를 하는 동안 나는 빨래를 개고 화장실 청소를 한다. 함께 살기 위해선 그때그때 일을 분담해서 처리해야한다. 집안일은 티가 안 나기 때문에 동시에 티가 안 나는 일을 해야 덜 억울하다.


동생은 나보다 요리 솜씨가 좋고 센스가 있다. 요리를 할 때 한 번에 인덕션 두 개를 쓰고 무언가가 끓는 동안 넣을 채소를 다듬는다. 나는 그런 멀티태스킹이 되지 않아 하나를 끝나고 하나를 겨우 시작하거나, 다듬은 채소를 몽땅 넣어버리고 푹 끓여버린다. 채소마다 먼저 볶아야 할 것이 있고 나중에 넣어 식감을 살릴 것이 있지만 평소 느긋한 나는 그때만큼은 성격이 급해진다.


짝을 맞춰 예쁜 식기들을 꺼내고 밥을 담고 앞 접시도 준비한다. 혼자 먹을 땐 커다란 접시에 아무렇게나 뷔페식(?)으로 담고 말지만 같이 먹을 땐 접시 개수에 좀 더 관대해진다. 설거지는 내가 하기 때문이다.


잘 차린 밥상은 가족 단톡방에 업로드 된다. 우리가 이렇게 사이좋게 잘 먹고 잘 살고 있다는 인증 샷을 보내면 엄마는 그만큼 안심한다. 당근이 몸에 좋으니 당근도 꼭 넣어먹으라고 하시겠지만 당근은 좀처럼 맛이 없다.


엄마의 걱정을 안고 동생과 나는 같이 살고, 같이 밥을 먹고, 같은 공간에서 잠을 잔다. 해는 벌써 조금씩 떨어지고 동생은 내일이 오지 않기를 기도한다. 내일도 동생은 아침 알람에 바로 깨지 못하고 알람을 몇 번 멈춘 뒤에야 비틀거리며 화장실로 향할 것이다. 나는 실눈으로 동생이 나가는 모습을 보며 나에게 주어진 자유로운 하루를 시작해야 한다.


2019.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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