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 가리지 못한 것
『바깥은 여름』에 수록된 단편 <가리는 손>은 꽤 많은 사회적 문제를 조금씩 건드리고 있다. 소설에서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은 사회적 약자이다. 재이는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친구들에게 은근한 멸시를 견디고, 엄마인 ‘나’는 이혼한 여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마주한다. 폐지를 모으던 노인은 학생들과 시비가 붙어 무연고 장례로 쓸쓸하게 생을 마감한다.
이 소설은 자신이 피해자가 되어 상처받기도 하고, 다른 피해자에게 가해지는 폭력에 대해 침묵함으로써 가담하기도 한다. ‘나’는 성가대 대표를 뽑는 선거에서 상처 입은 재이를 위로하기 위해 아빠는 ‘공부하러 온 사람’이고, ‘고향집에 하인’도 부렸던 사람이라고 말해준다. 그 말은 재이를 좀 더 슬프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나’가 전한 말은 유색인종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편견에서 결코 자유로워 질 수 없음을 스스로 보여준다.
한국으로 ‘노동’이 아니라 ‘공부’를 하러 온 동남아 사람은 일반적인 동남아 사람과는 다르다는 인식, 그러니까 대부분의 동남아사람들은 ‘노동자’의 신분으로 한국으로 온다는 편견을 그대로 보여준다. ‘나’가 엄마를 낯설게 느껴졌던 순간(우리 집안 죄받았다 할까봐 부끄러워 어디가서 말도 못 꺼낸다)을 재이도 똑같이 느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재이는 엄마가 가진 편견을 받아들인다. 누구도 무시하지 못할 사람이 되기 위해 엄마의 뜻에 따라 학원도 열심히 다닌다. 그리고 재이의 내면에서 무언가가 변했다는 걸 두 사람은 느낀다.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인 ‘할아버지의 죽음’이 다뤄지는 방식도 흥미롭다. 재이는 할아버지가 쓰러진 장소에 다시 돌아와 자신이 뽑은 인형을 아무렇지 않게 가져가고, ‘나’는 재이가 이 일로 인해 충격을 받지 않았을까, 누군가 재이를 나쁘게 보진 않을까 끊임없이 걱정한다. 인터넷 댓글은 누군가를 비난하기 바쁘고, 이웃여자들은 흔하지 않은 큰 ‘일’ 정도로만 생각한다.
누구도 할아버지의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하지 않는다. 연이 끊긴 자식들에게 조차도.
‘나’는 재이가 그 일을 목격했음에도 신고하지 않은 것에 대해 질책하지 않는다. 아이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학원 수업을 빼먹었다는 재이의 거짓말에 ‘나’는 가슴에 묘한 얼룩이 생겼음을 느낀다. 항상 약자의 입장에서 피해자이기만 했던 재이가, ‘아직 맛 경험이 적은, 죽은 동물을 덜 먹어봤던 혀’로 노래 부르던 재이가 자라서 거짓말을 하고 언제든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감지하게 된다.
‘틀딱’이라는 말에 터져나오는 웃음을 가리는 장면은 성가대 선거에서 아이들 사이에서 터져나온 웃음과 오버랩된다. 누군가에게 분명히 모욕적인 말에 대해 웃을 수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다. 뼈마디가 굵어진 손으로 가리려고 했던 것, 그렇지만 차마 가리지 못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나이가 들고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물들 수밖에 없는 ‘나쁜 것’에 대해 우리는 제대로 훈계할 수 있는가.
비가 오면 십자가도 물에 젖는다. 소설의 첫 문단, 네 번째 문장이다. 비가 오면 십자가도 물에 젖을 수밖에 없다. 세월이 흐르면서 젖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