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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 Dec 22. 2019

김영하 <신의 장난>

주입된 긍정의 힘에 대해

그녀는 무슨 말이든 해야 한다는 강한 압박을 느낀다. 
"그, 긍정의 힘, 이 아닐까 싶어요."

 

김영하의 소설집 『오직 두 사람』 마지막에 실린 단편 「신의 장난」은 이전 단편과는 또 다른 독특한 소재와 예측하기 어려운 전개로 새로운 재미를 주는 작품이다. 취직을 하기 위해 입사시험의 하나로 치러지는 방탈출 게임에서 4명의 남녀가 갇히게 되면서 시작되는 이 소설은 같은 상황에서 각자 다르게 행동하는 남녀의 모습에 주목한다.


이 소설을 이해하기 가장 쉬운 접근은 방탈출이라는 소재를 현재 20대가 놓인 현 상황에 대한 상징으로 보는 것이다. 단서가 없는 방안에 갇혀 긍정의 심리학 따위에 위로를 구하고, 유일한 탈출 수단이라고 믿었던 인터폰은 먹통인 상황. 문을 열고 다른 곳으로 나아가도 여기보다 더 나을게 없다. 만약 여기서 나간다고 해도 그들이 돌아갈 곳은 ‘집’이 아니라 ‘방’이다. 죽어있을 지도 모르는 고양이가 살고 있는 원룸이거나, 두 평짜리 고시원. 거기에 힌트나 치트키 같은 건 없다.


이 소설에서 가장 그로테스크한 장면은 방에 갇힌 남자 두 명이 거세를 당하는 장면이다. 구체적인 묘사는 건너뛰어 버리지만 그 사건을 이후로 소설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나는 그 장면이 아이를 낳아 기를 경제력이 없는 오늘날의 사회 초년생이 생식의 기회마저 빼앗기는 걸 상징하는 게 아닐까 의견을 내놓았지만 그건 너무 1차원적인 해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 두 명이 거세를 당하고 난 뒤에야 문이 열린 의미는 무엇일까. 그리고 그들은 왜 다른 방으로 건너가서야 비로소 처음으로 (실패하고 말았지만) 함께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행동을 하게 되었는가.

단순하게 접근하면 정은이 남자를 두려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은은 ‘두 겹의 적’이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을 가둔 정체 모를 누군가와, 언제든 자신을 공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남자 두 명. 정은은 남자가 거세되고 난 다음에야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문을 열고, 자살극을 주도한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탈출하지 못한다. 정은이 남자로부터 신체적인 위협에서 벗어 났다고 해서 그것이 곧 ‘안전’과 ‘자유’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평등은 시작일 뿐이다. ‘공격과 유린’의 위협에서 벗어나고서야 그들은 연대한다. (‘거세’는 어디까지나 상징일 뿐, 어떠한 권리를 박탈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남자들의 눈치를 보며 관망하는 게 최선인 부조리한 상황에 대해 말한다)


경찰은 거대한 환상 속에서만 작동한다. 그들을 ‘방’에서 꺼내주고 그들에게 박수를 쳐준다. 강호동이 묻는다. 성공의 비결이나 좌우명 따위를, 도저히 무슨 말을 하지 않고는 배겨낼 수 없는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가까스로 이렇게 말한다. 긍정의 힘, 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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