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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 Jan 15. 2020

이기호 <탄원의 문장>

입증 불가능한 세계가 지니는 단면성

이기호의 소설에서 화자로 자처하는 인물은 대부분 어느 정도 식견 있는 지식인층이다. 최근작 <한정희와 나>와 <권순찬과 착한 사람들>에서도 그렇듯 화자는 불의와 도덕 앞에서 소시민적인 태도를 보이는 세상에 순종적인 인물이다. 


<탄원의 문장>은 이기호의 꽤 예전 작품이긴 하지만 ‘지식인 중산층’의 소시민적인 태도에 대한 냉소를 그대로 가지고 있다. 제자가 죽었다는 소식에 자연스럽게 ‘자살’을 떠올리는 대학교수인 ‘나’는 제자의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 보다 자신이 보여야 할 윤리적인 태도와 책임을 더 버거워한다.


‘나’는 일면식이 없는 박수희라는 죽은 제자보다 과실치사 혐의로 수감되어 있는 P에게 더 마음이 간다. P는 ‘나’의 글쓰기에도 자극을 주는 꽤 특별한 제자였고 무엇보다 ‘나’를 믿고 잘 따라주는 제자였기 때문이다. 사건에 연루되고 싶지 않았던 ‘나’가 P를 위한 탄원서를 쓰겠다고 결심한건 P에 대한 애정도 있겠지만, ‘법’에 있어서 ‘짱돌’을 한번 들어보고 싶은 ‘나’의 내재된 욕망도 크다고 생각한다. 입증 가능한 단순한 사실만으로 P를 단죄하려는 법 앞에서 ‘나’는 P가 어떤 사람인지 말하고자 한다.


하지만 들어 올린 그 짱돌은 법 근처로는 가지도 못하고 애꿎은 P의 전 여자친구 ‘최’를 맞추고 자신의 발등에 떨어지고 만다. 그리고 P가 자신에게는 문학적 재능이 충만한 제자였지만 여자친구에게는 손찌검을 하는 몹쓸 남자친구였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리고 ‘최’는 한 번도 자신이 입증해 보려고 하지 않았던 ‘박수희’에 대해 이야기 한다.


‘최’의 탄원서를 통해 우리는 비로소 ‘박수희’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 선배가 왜 이렇게 자꾸 술만 따라 주실까?’라는 말에 대해 처음으로 의문을 가진다. ‘이’라는 지시관형사가 가지는 의미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보았지만 분명한 답을 내릴 수는 없었다. 하지만 몇 가지 힌트를 따라 자의적으로 해석해 보면 ‘이’는 박수희와 P의 어떤 관계를 암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라는 지시 관형사는 소설에서 몇 차례 나온다. ‘나’가 술 취한 아내에게 ‘이 여자가 정말…’이라고 말하는 장면, 박수희 어머니가 남편에게 ‘아이고, 이 양반아, 흘리지 좀 마요.’라는 장면, 아내가 ‘나’에게 ‘이 인간이 진짜.’라고 말하는 장면 모두 긴밀한 관계에서 사용되는 말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 <혼자 있을 땐 쓸쓸하기 그지없는 ‘이’>라는 문장은 그러한 암시를 더욱 분명하게 만든다.


‘최’가 말한 ‘지나치게 감상적인 자기 동일시’는 P의 그 폭력적인 성향에 대한 피해자가 박수희가 아닌 자기 자신일 수도 있었다는 무섬증이 아닐까 생각된다. 죽은 박수희에 대한 진실된 애도가 그녀를 해남까지 이끈 게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결국 ‘나’가 쓰는 탄원의 문장은 P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단면적인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이 소설은 죽은 피해자만이 이름을 가진다. P는 앞으로도 살아가면서 무한히 입증 불가능한 세계를 만들어 가겠지만 박수희는 박수희이고, 앞으로도 변할 것 없는 박수희의 전부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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