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연 Mar 17. 2020

실패하지 않는 책 추천 법

책 선물하기 좋은 시국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름대로 책에 대한 취향이 생기면서 내가 좋아하는 책을 남들에게 선물하길 좋아했다. 이제 막 가지를 뻗기 시작한 취향에 도취되어 밀도 있는 책을 골랐으며 나의 인생 책이라는 부담스러운 말도 덧붙였다. 선물한 책의 감상은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다. 좋은 책과 선물하기 좋은 책은 다르다. 어피치와 라이언은 너무나도 사랑스럽지만 커버가 전부인 책은 좋은 책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나의 취향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취향과 취미를 반영해야 선물에 의미가 있다. 그리고 그런 책을 고르는 건 그 사람에게 어울리는 향수를 고르는 것만큼이나 까다롭고 신중해야 한다. 아니면 제 기능을 하지도 못하고 애매하게 자리만 차지하는 애물단지가 되어버린다.


어쩌다 보니 집에 세 권이나 생겨버린 보노보노


일단 선물하는 책은 가벼울수록 좋다. 다루는 주제도 가벼울수록 좋고, 책의 무게도 가벼울수록 좋다. 장식용 책을 선물할게 아니라면 상대방이 부담스럽지 않을 소재를 골라야 한다. 평소 고전이나 어려운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미 탐독할 독서 리스트가 쭉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도 오히려 가벼운 책이 낫다. 글이 적고 사진이나 삽화가 많이 들어간 책도 빠르게 넘어가는 페이지 만큼 마음을 평안하게 해 준다. 적절하게 배치된 감각적인 삽화는 빼곡한 문장보다 좀 더 많은 것을 은유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가벼운 책은 어떤 책일까. 아무 페이지부터 읽어도 부담 없는 책이다. 아무 데나 펼쳐도 나를 사로잡을 수 있다면 더 좋다. 그래서 나는 에세이를 추천한다. 에세이만 내는 작가들보다는 여러 가지 글을 다루는 작가의 책을 추천한다. 시인이나 소설가가 쓴 에세이는 말할 것도 없고, 같은 말도 어렵게 푸는 재주가 있는 평론가가 쓴 에세이도 생각보다 재밌다. 본업에서 벗어나 언어에 좀 더 숨 쉴 틈이 생겨서 그런지 시나 소설보다 에세이가 더 기대되는 작가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전문가의 글쓰기는 또 취향을 타는 법이다. 너무 잘 다듬어진 문장은 또 좀 매력이 없다.


직업에 따라 취미에 따라 제목만 봐도 궁금해지는 에세이도 참 많다. 직업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책보다는 그 가까이의 삶을 다룬 책도 좋다. 서비스업으로 고생하는 친구에게는 그 직종과 다른 서비스업을 다룬 에세이를 선물한다던가 글을 많이 보는 직업이라면 글보다 그림이 많은 책을 선물하는 것도 추천한다.


상황에 따라 취미에 따라 책을 고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퇴사를 한 친구에게는 여행에 관한 에세이를, 요가를 1년 정도한 친구에게 요가 강사가 쓴 책을 선물했다. 이제 막 이사를 간 친구에게는 1인 가구에 어울리는 가성비와 가심비를 잡는 물건을 추천해 주는 책을 선물했다. 다들 재밌게 읽었는지는 몰라도 가벼운 마음으로 책장을 넘겨봤을 거라 믿는다.


소설이나 자기 계발서도 물론 좋다. 하지만 소설을 추천하기에는 그 사람에 대한 데이터가 필요하고 데이터가 있다고 해도 성공하기 어렵다. 서사로 몰입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심신의 안정과 시간이 필요하다. 군데군데 점핑하며 읽기 좋은 에세이와는 조금 다르다. 자기 계발서는 위로보단 조언을 해주는 책이다. 상황에 맞지 않게 잘못 선물을 한다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


제주 독립 서점 <나이롱>


시간을 좀 더 내서 독립서점을 둘러보는 것도 추천한다. 일반 서점에서 보기 힘든 독립 출판물을 물론이고, 서점에선 미처 발견하지 못한 신박한 책들이 즐비하다. 큐레이팅이 잘된 책은 아마 내가 더 읽고 싶어서 견디지 못할 것이다. 마음에 드는 책을 발견했다면 될 수 있으면 인터넷 서점보다는 거기서 구매하길 권한다. 독립서점이 유지되기 위해선 많은 품이 든다. 그 공간이 생각보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몰라도 나를 사로잡은 책이라면 그 자리에서 사야 정말 내 것이 된다.


마지막으로 추천하고 싶은 출판사와 시리즈물이 있다. 하나는 <유유> 출판사이다. 이름이 유유라니. 일단 이름부터 범상치 않다. 나오는 표지는 더 범상치 않다. 어딘가 세련되지 않아서 더 눈이 가는 책이다. 하지만 속은 꽤 단단하다.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가 히트하며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린 <유유>는 자꾸만 신경 쓰이는 책들을 출간한다. 무슨 말이야 싶으신 분들은 한번 검색해 보시는 것도 추천한다. 아마 선물한 상대방 역시 안 읽고는 못 배길 것이다.


그리고 요즘 즐겨보는 「아무튼, …」 시리즈도 선물용으로 추천한다. 「아무튼, …」 시리즈 <위고>, <제철소>, <코난북스> 세 출판사가 함께 펴내는 ‘나에게 기쁨이자 즐거움이 되는, 생각만 해도 좋은 한 가지를 담은 에세이 시리즈’라고 한다. 피트니스를 시작으로 서재, 비건, 술, 예능 등 다양한 취미생활이 담긴 에세이 시리즈를 계속해서 발간 중이다. 문장이 다소 투박하기도 하지만 취미에 대한 애정이 듬뿍 묻어나는 글이 많다. 입맛에 맞는 주제로 가볍게 읽고 선물하기 좋은 책이다.


그래도 책 선물은 실패할 수 있다. 모든 선물이 그렇듯 책이라고 100% 성공할 순 없다. 하지만 이만큼 당신을 헤아려 선물한 책이라면 완독 하진 못하더라도 충분히 의미 있는 선물이 될 거라고 장담한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필요한 만큼 책의 효용가치가 높을 시기이다. 좋은 책을 찾아 선물하는 재미를 느껴보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2019, 올해 내가 읽은 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