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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 May 17. 2020

김초엽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미래에도 어김없이 이어지는 통속적인 고민


김초엽의 첫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하 우.빛.속)』은 표지부터 눈이 간다. 파스텔톤 양장 커버에 타이틀은 홀로그램박을 씌워 빛에 따라 작게 반짝인다. 소설 「관내분실」에서는 더 이상 사람들이 종이책을 찾지 않는 미래를 그리면서 책이란 물성에 이렇게 공을 들인 걸 보면 디지털이 아닌 아날로그가 지니는 감성이 아직도 중요하다는 역설을 드러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오랜만에 눈에 띄는 SF작가가 등장했다. 상상력을 실제처럼 구현하기 위해 소설은 영화보다 좀 더 힘이 필요하다. 특히 지면상 길게 설명하기 어려운 단편에서는 쉽지 않은 선택이다. 그럼에도 『우.빛.속』은 첫 소설집이라고 믿기 어렵게 각각의 단편이 저마다의 밀도를 가지고 질문을 던진다.


소설들은 제각기 어떤 일생일대의 선택의 순간을 주인공에게 부여한다. 미래에는 우주로도 가고, 외계인도 만나고, 죽은 사람도 만날 수 있는 세계이지만 선택의 순간은 한번뿐이다. 『우.빛.속』은 ‘선택’에 대한 이야기이며 소설의 결말은 대부분 ‘사랑’으로 끝맺는다. 그래서 이 소설집은 조각난 「인터스텔라」 같다. 주인공은 어쩔 수 없이 차악을 선택하고 그 차악 속에서 가장 후회되는 건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이다.


왜 이리도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어김없이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걸까. 그리고 그 통속적인 고민에 우리는 왜 매료되는 것일까. 소설은 미래에 대해 가정하고, 가정은 가정이기에 우리를 크게 뒤흔들지 않는다. 그저 슬쩍 건드린다. 그래서 소설은 아프기보다 아련하고, 파격적이기보단 신선하게 다가온다.


순례를 떠나 답을 찾은 이들은 바다로 뛰어든다. 길게 유영해도 좋을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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