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결혼식

기록하는 습관 021_2020.06.09

by 이연

고등학교 친구의 결혼 소식을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통해 알게 되었다. 시험을 치면 항상 전교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만큼 공부를 잘했던 친구였다. 나는 가끔 수학의 정석을 들고 모르는 문제를 묻기도 했다. 자기 공부한다고 귀찮을 법도 한데 매번 연습장에 수식을 그려가며 열심히 설명해 주었던 기억이 있다. 수포자의 길에서 헤매고 있을 때 한줄기 빛이 되어주었던 친구였다. (하지만 결국 ...)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 친구와는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겼다. 공부를 잘했으니 틀림없이 서울로 대학을 갔겠지 생각하며 십 년 동안 이름조차 떠올려 본 적 없었다. 그러다 작년에 남산에서 카톡 한 통이 왔다.


[〇〇아, 혹시 지금 남산타워야?]


핸드폰을 가방에 넣어 놓고 한참 지나서야 확인을 해서 이미 남산 타워에서 내려온 뒤였다. 반가운 마음에 바로 답을 하니 긴가민가 해서 가서 아는 척은 못했다고 답이 왔다. 그러고 안부 인사를 주고받다가 다음에 밥 한번 먹자라는 말로 연락이 끊겼다. 나는 십 년 동안 그 친구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떻게 사는지 너무나도 궁금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조금 무섭기도 했다. 나에게 일어난 일들과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은 시시하고 또 그런 시시한 이야기를 재밌게 풀어낼 재주도 없었다.


그렇게 차일피일 연락을 미루다가 1년 가까이 지나버렸다. 그리고 그 사이 친구 프사가 웨딩사진으로 바뀐 것이다. 그리고 그 날은 공교롭게도 회사 직원분의 결혼식이 겹쳤다. 나는 애꿎은 ‘선물하기’ 목록만 하염없이 훑어보다가 꺼버렸다. 지금 와서 연락하면 괜히 부담스러울까 걱정도 되었다. 편하게 생각했다면 나에게 결혼한다고 말이라도 했을 법한데 아무래도 그 공백이 친구에게도 부담스럽게 느껴졌나 보다.


고등학교 때 단짝이었던 친구 한 명도 졸업과 동시에 생활이 바빠지며 연락이 끊겼다. 그리고 2년이 지나서 갑자기 연락이 왔다. 갑자기 잘 지내는지 생각이 나서 문자를 해봤다고. 오랫동안 망설였을 그 마음이 너무나도 고마워서 친구와 바로 약속을 잡았다. 2년 동안 서로에게 생긴 변화와 취향에 놀라워하며 예쁘고 맛있는 것을 먹으러 다녔다.


서울에 올라오면서 자주 만나긴 어려워졌지만 오랜만에 만나도 어제 만난 것처럼 편하다. 작년 가을엔 둘이서 1박 2일로 통영도 다녀왔다. 같이 밥을 먹고 잠을 자고 10년 전을 곱씹으며 우리가 이만큼이나 나이 들었음을 한탄했다. 같이 힘들었던 시간을 버텼다는 사실만으로 웃을 이야기가 많았다. 지금은 우리가 꿈꿔왔던 것들과 먼 삶을 살고 있지만 서로 무얼 꿈꿨는지 알기 때문에 지금이 조금 덜 시시했다.


요즘 나에게 필요한 건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멀어져 가는 인연들을 보면 마음이 착잡하다. 상처 주고 상처 받지 않으려고 사람들에게 벽을 치게 된다. 그 벽 때문에 그 사람은 물론이고 나도 그 사람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괜히 마음이 무겁게 내려앉는다. 괜히 프로필 사진 속 행복한 친구의 얼굴을 한참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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