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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인철 Sep 09. 2024

바지의 위기 - 2

< 정의의 슈킹 1 > 에서 이어집니다. 

12월 28일 (금요일)     


정 형사는 거짓말 탐지기가 있는 서울경찰청으로 갈 준비에 바빴다. 상일의 혐의를 밝혀낼 수 있다는 기대에 마음이 들떠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시간이 흐르면서 소환된 사람들은 하나둘 수사과를 빠져나갔다. 이제 홀로 남은 상일은 상황이 숨 가쁘게 돌아가고 있음을 느꼈다. 

형사들 중 누구도 사건 절차에 대해 그에게 설명해주지 않았다. 상일은 긴장감에 입이 바짝 마르고 식은땀을 흘렸다. 그 순간, 그는 가족을 떠올렸다. 딸의 등록금과 아들의 대학 입학금을 마련했다는 안도감이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구상일 씨, 본청으로 가시죠.”     

상일과 정 형사, 조 형사가 탑승한 경찰차는 서울경찰청으로 향했다. 상일은 눈앞이 캄캄해졌다. 현우에게 여러 대처 요령을 배웠지만, 거짓말 탐지기는 두 사람 모두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탐지기 의자에 앉은 상일의 가슴, 팔, 손가락에는 심전도 검사를 하듯 센서가 부착된 밴드가 붙여졌다. 정 형사는 질문 내용을 담은 용지를 검사관에게 건넸다.     

거짓말 탐지기는 신체의 자율신경계 원리를 이용한 장치이다. 감정을 가진 사람은 거짓말을 할 때 심리적으로 흥분, 갈등, 초조, 불안 등의 상태를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혈압, 호흡, 맥박, 땀의 분비 등에 영향을 미쳐 그래프의 변동으로 나타난다. 그 차트 분석 결과에 따라 진실, 거짓, 판단 불능으로 결론이 내려진다.     

사건과 관련된 질문을 한 후 반응 그래프가 갑자기 급등하거나 이상한 형태를 보이면 거짓말로 간주된다. 그러면 신문을 통해 자백을 유도하게 된다.     

거짓말 탐지기의 정확도는 70~90%로, 100% 완벽한 수사 기기는 아니다. 인간의 생리적 변화를 감지하여 간접적으로 판단하기에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머리가 좋은 범죄자는 혀를 깨물어 통증을 유발해 고의로 교감신경을 자극할 수 있다. 이런 경우 사실을 거짓으로 말해도 둘 다 거짓으로 탐지되어 정확한 결과를 얻기 어려워진다. 

또한, 무고한 사람도 과도하게 흥분하거나 긴장하여 반응할 수 있으므로 이를 구분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한계가 존재한다. 이 때문에 거짓말 탐지기 검사는 억울한 피해자가 생길 수 있어 법원에서는 참고자료로만 사용되며, 증거로서의 효력을 인정받지 못한다.     

검사관이 첫 번째 질문을 던졌다. 상일은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하며 저음으로 대답했다. 그래프의 파동은 기준을 초과하여 위아래로 요동쳤다. 다음 질문에 대해서는 자연스럽게 대답했지만, 이번에는 이전보다 더 높은 파동이 치솟았다. 사건과 관련된 질문, 심리를 파악하기 위한 질문, 일반적인 질문이 중간중간 섞여 던져졌다. 비슷한 질문을 조금씩 바꾸는 이유는 긴장을 유도하기 위해서다. 사실이라면 즉시 대답할 수 있지만, 거짓이라면 상황이 다르다.     

‘아까 뭐라고 했더라?’, ‘이게 조금 전 질문과 같은 건가?’라는 혼란이 계속되면서 대답이 달라지면 그의 진술은 거짓으로 판명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이 두어 시간 동안 이어졌다.     

상일은 점점 지쳐갔다. 숨이 가빠오고 쓰러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결국 그는 기계 앞에서 무너졌다. 인간 대 인간의 싸움에서는 정신력으로 버틸 수 있었지만, 첨단 과학 앞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무의식적으로 반응하는 생체 리듬을 어떻게 의지로 조정할 수 있겠는가! 

거짓말 탐지기의 결과는 대부분 거짓으로 판명된 양성 반응으로 나타났다.     

“봐! 내가 뭐랬어? 저놈도 공범이라고 했잖아.”     

정 형사는 승기를 잡은 듯 주먹을 불끈 쥐었다.     


경찰서로 돌아온 상일은 다시 조사를 받게 되었다. 정 형사는 거짓말 탐지기에서 양성 반응이 나온 덕분에 기세가 등등하여 강도 높은 신문을 퍼붓고 수사에 박차를 가했다. 그러나 전세가 역전된 가운데서도 상일의 진술은 변함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피의자 진술 조서에 서명하는 절차만 남았다.     

“저의 진술이 조서에 그대로 기재되지 않으면 서명과 날인을 거부하겠습니다.”     

그는 강력하게 주장했다. 정 형사는 딜레마에 빠졌다.     

‘그래,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다.’     

대신 수사 보고서에 그 내용을 기록하고, 거짓말 탐지기 결과를 첨부했다. 이로써 상일의 유죄를 입증할 만한 증거는 사실상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유일한 증거인 거짓말 탐지기의 양성 반응은 증거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현우는 낮 12시에 눈을 떴다. 그제 밤 내내 뜬눈으로 지샌 후, 어제 하루 종일 정신없이 달렸더니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쳐버렸다. 그래서 돈 가방을 방으로 옮기자마자 긴장이 풀리면서 곯아떨어졌다.   그는 신문 가판대에서 모든 일간지를 사 왔다. 사회면을 살펴보았지만, 현우의 사건에 대한 보도는 단 한 줄도 없었다. 

그는 담배 연기로 도넛을 만들어 허공에 날렸다. 그 동그란 원 안에는 상일의 결연한 모습과 울먹이는 목소리가 담겨 있었다.      

“능력이 부족하고 초라한 부모가 자식을 위해 무엇을 못 하겠습니까? 비록 제가 감옥에 가더라도 우리 아이들이 하고 싶은 공부를 마칠 수만 있다면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12월 29일 (토)     


이제 상일을 구금할 수 있는 시간은 4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이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석방해야 한다. 정 형사는 구속영장 청구서를 들고 검찰청으로 달려갔다. 허겁지겁 사건과에 영장을 접수했을 때가 오후 1시로, 3시간 후인 오후 4시에 그를 풀어줘야 한다. 시계의 초침이 왜 이렇게 빠르게 가는지 부숴버리고 싶었다. 이틀 밤을 꼬박 새우고 밥도 굶다시피 했다.     

저 멀리서 조 형사가 햄버거를 사들고 차로 오고 있었다. 

“지금 이 땀방울이 젖은 빵이 분명 특진의 보상이 될 거야.” 

두 사람은 햄버거를 부딪히며 해맑게 웃었다.


점심을 마치고 검사실로 돌아온 최 검사는 남대문 경찰서에서 제출한 구속영장 청구서를 확인했다. 피의자 진술 조서 겉장에 ‘피의자 구상일’, ‘죄명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 등에 관한 법률위반(사기)’이 기재된 서류를 넘기기 시작했다. 이 범죄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해당하는 중범죄이다. 최 검사는 대충 훑어본 후 습관적으로 구속란에 도장을 찍으며 혀를 찼다.     

“이 자식들, 머리가 비상하구먼. 마치 한 편의 영화 같네. 근데 나머지 공범들의 신원은 미상이라니, 정말 귀신 같은 놈들이네.”     

사건과에서 초조하게 처분 결과를 기다리던 조 형사는 서류를 받아 쥐고 차로 뛰어 갔다. 차문을 열며 소리쳤다.     

“선배님, 드디어 해냈어요! 우리가 이겼어요!”     

이때 시계는 오후 3시 40분을 가리켰고, 상일은 20분을 넘기지 못하고 결국 구속되었다.     

상일은 피의자 대기실에서 유치장으로 옮겨졌다. 그는 철장 속의 딱딱한 마룻바닥에 앉아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구속이 되더라도 포기하지 마세요. 아직 영장실질심사가 남아 있으니 가족을 생각하며 굳건히 버티세요.”    

현우의 격려는 눈물 나게 고마웠다. 하지만 만약 기각된다면, 그는 구치소로 가야 한다. 그리고 재판을 받고 교도소에서 징역을 살아야 한다. 상일은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 애써 눈에 힘을 주었다.     

“구상일 씨, 월요일 오후 3시에 영장실질심사가 법원에서 열릴 겁니다. 물론 결과는 뻔하지만요.”     

정 형사는 승자의 미소를 지으며 비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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