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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인철 Aug 20. 2024

첫 번째 암호를 풀다 - 2

 12월 12일 (수)


 오후에 약속한 손님이 왔다. 해진 옷을 입은 여자로 어딘지 피곤해 보였다. 언뜻 볼 때는 몰랐는데 동남아 사람이었다. 현우는 음료수를 그녀 앞에 내놓았다. 건네받은 등본에 적힌 이름은 김수잔이다.

 “저는 아무것도 없는데 저 같은 사람도 대출이 되나요?”

 역시나 어눌한 발음이었다.

 “어느 나라에서 오셨어요? 한국말 잘하시네요.”

 “베트남에서요. 아직도 한국말이 많이 서툴러요.”

 그녀는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띠었지만 왠지 슬퍼 보였다. 현우는 동정심에 몇 가지를 물었다.

 “얼마나 대출을 받으려고요?”

 “1차 수술에 3천만 원이 들어간대요.”

 “네? 어디 아프세요?”

 낯빛이 어두운 것이 중병에 걸린 것 같았다. 여자는 머뭇거리다 고통스럽게 입을 열었다.

 “지금 저는 뇌종양을 앓고 있어요.”

 “그러면 빨리 병원에 가야 하지 않아요?”

 그녀는 수술이 시급함을 알지만 돈이 없어 병원에 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고 했다. 현우가 관심을 보이자 그녀는 고향사람이라도 만난 듯 자신의 안타까운 사연을 풀어놓았다.

“저는 베트남에서 남편을 만나 핑크빛 미래를 꿈꾸며 한국에 와서 결혼했지요. 하지만 다문화 가정으로서 한국 사회의 혹독한 현실을 맛보아야 했어요. 하나뿐인 아들은 혼혈이라는 이유로 배정받은 학교에서 입학을 거부당하기도 했죠.”

 시댁은 갈 곳 없는 그들을 내쫓았고, 지금 지하 월세방에서 가족이 힘겨운 살림을 꾸려 간다고 했다.

 “뇌 속 깊이 자리 잡은 암세포가 급속도로 악화돼 후각을 잃었어요. 시력도 몇 미터 앞을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 나빠졌지요.”

 믿었던 남편은 사기를 당하고 보잘것없는 직장을 전전하다가 최근에 그 일자리마저 잃었다고.

 여자는 흐느끼더니 울음을 터트렸다. 그동안 참아 왔던 설움을 한꺼번에 토해 내는 듯했다. 

 “아이는요?”

 “아이가 초등학생인데 한국 생활에 적응을 잘 못하고 있어요. 아들에게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제 자신이 너무 원망스러워요.”

 그리고 아이의 급식비와 월세 20만 원 내기도 버거운 형편이라고 했다.

 그녀는 죽음이 두렵고 살아갈 길이 막막해서 하나님을 찾는다고 한다. 고향의 가족을 위해서 또 한때 단란했던 가정의 행복을 다시 달라며 성당에서 간절히 기도한다고.

 “그래도 설마 주님이 저희를 완전히 버리시기야 하겠어요. 바쁘신데 끝까지 제 얘기를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현우는 무심코 내뱉은 물음을 후회했다. 그리고 지독한 가난과 시댁과의 갈등, 언어 문제, 문화 차이로 인한 불행이 머릿속 암세포의 원인이라 단정했다. 

 여자는 쓸쓸히 문을 나섰다. 현우는 이 삭막한 겨울 거리를 외로운 이방인으로 은행을 향하는 그녀를 떠올리곤 마음이 아팠다.

 동수는 모니터에 머리를 박고 마우스를 클릭하기에 바빴다. 언제부턴지 그는 인터넷 포커 게임에 열중했다. 동인이 없는 동안에는 온 정신이 거기에 쏠렸다. 어떤 날은 몇천 억을 땄다며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다가 또 몇 조를 잃었다고 시무룩했다. 

 며칠 전, 현우는 그와 다툰 적이 있었다. 게임할 때 울리는 스피커 소리 때문이다. 전화 상담을 하거나 손님과 대화 중에도 동수는 고음으로 켜 놓았다.

 “동수야, 손님이 있을 때 게임하면 사무실 이미지가 좀 그렇잖아. 정 하려면 스피커를 끄든지 볼륨을 줄이는 게 좋겠어.”

 “야, 소리가 커야 생생한 라이브를 즐길 수 있어. 글구 손님들은 대출에 관심 있지, 이 소리에는 신경 안 써. 네가 너무 예민한 거야.”

 그는 이런 식으로 둘러대며 현우의 요청을 무시하곤 했다.

 결국 두 사람은 이 문제로 얼굴을 붉혔다. 동인과 상의할까도 고민했으나 고자질을 하는 것 같아 그냥 넘어갔다. 

 웬일로 다음 날 동수는 그의 말대로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래서 이 사건은 조용히 마무리되었다. 

 “옥상에서 담배 한 대 피우고 올게.”

 현우는 계단을 올라가 처음으로 옥상 문을 열었다. 겨울 찬바람이 얼굴에 와닿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담배 한 모금을 깊게 빨아 허공에다 뱉었다. 흩어지는 연기 속에 거리를 방황할 베트남 여인의 모습과 아이디 C423045-H143262 비밀이 뒤섞여 혼란스러웠다.

 "첫눈이 내리려나…."

 그는 회색빛 하늘을 바라보며 터벅터벅 내려왔다.

 “현수야, 오늘 방문하기로 한 손님이 내일 오후 2시에 온다고 연락 왔어.”

 현우는 연기한 손님의 미팅 시간을 일일 캘린더 메모지에 적었다. 이어 한 장 한 장 넘기며 살펴봤다. 거기에는 여러 내용이 휘갈겨 쓰였지만 손님의 이름, 주민번호, 전화번호 이 세 가지는 공통적으로 있었다.

 “손님의 예상 대출금을 알려면 은행에 조회해야 하거든요.”

 이 말을 핑계로 이름과 주민번호를, 또 그 결과를 연락 주겠다며 전화번호를 물어보아서다.

 아이디를 만들 때 필요한 것은 알파벳과 숫자이다. 이것을 특정 지으려면 본인의 인적사항만 한 것이 없다. 그래야 혹시 잊어버려도 쉽게 찾을 수 있다. 비번을 날짜로 만들듯이.  

 의뢰인 서류에서 고유성으로는 이름과 주민번호와 전화번호이다. 그중 알파벳은 이름의 성에서 차용했을 가능성이 많다. 흔히 그렇게 하지 않는가! 김을 K, 이를 L, 박을 P로 표시하듯이. 이제 숫자로 된 것은 주민번호와 전화번호이다. 이 셋을 조합으로 만들어야 간편하다. 

 여기까지 정리한 현우는 11일과 12일에 고려금융에 접수한 카센터 사장과 트럭 아저씨의 서류를 보관철에서 뺐다. 이것은 잔고업체에 원본을 보내기 전 복사해 둔 것이다. 물론 연락처는 사무실에 있는 선불폰 번호이다. 다행히 잔고업체에서 집과 직장 전화번호까지는 요구하지 않았다. 비직장인도 잔고증명 의뢰인이 될 수 있고 요즘 집 전화는 큰 의미가 없다.

 카센터 사장의 이름은 최영성이고 트럭 아저씨는 현정복이다. 순간 그의 가슴이 쿵쿵 뛰었다. C423045의 C는 최의 알파벳 CHOI 앞 글자를 딴 것이다. H143262의 H도 마찬가지다.

 이제야 윤곽이 잡혔다. 다음은 주민번호와 전화번호에서 여섯 자리 숫자의 비밀을 찾으면 된다. 최영성의 주민번호는 540324-1002431이다. 그런데 423045는 주민번호 앞자리 540324를 뒤에서부터 나열한 것에 불과했다. 너무 간단하여 헛웃음이 나왔다. 

 현정복의 주민번호는 521210-1432620이다. 당연히 카센터 사장처럼 012106이어야 하는데 일치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도 문제는 없었다. 143262는 뒷자리를 앞에서부터 6번째까지 숫자이다. 두 아이디가 다른 것은 아마도 서류 접수일 차이라고 짐작했다. 

 그는 마치 자신이 정보요원으로 암호를 해독한 것 같아 뿌듯했다. 역시나 동인의 주장대로 규칙성에 근거하여 만들었다는 것이 판명되었다. 그러면 내일은 ‘H705028’이나 ‘H217321’ 아이디와 1213 비번이 내려올 것이다. 유학비자 용도로 보낸 한시영의 주민번호가 820507-2173214이기 때문이다. 

 이 쾌거를 게임에 빠져 있는 동수에게 말하려다 멈추었다. 아직은 100% 단정 짓기에 이르다. 현우는 이 정도만 파악한 것에 만족하며 어깨에 힘을 주었다.

 “현수야, 그만 퇴근하자. 오늘 한잔 어때?”

 동수의 제의에 대신 주문해서 먹자고 했다. 야식집 스티커를 보고 술과 안주를 시켰다. 이야기 장소로는 식당이나 술집보다 사무실이 훨씬 편했다.

 1년 전, 선배 사채 사무실에서 일할 때는 그들과의 대화가 일상적인 것으로 장소에 구애받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대부분 작업에 관한 내용이므로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둑이 제 발 저리듯 스스로 경계하는지도 모른다. 동수는 취기가 돌자 동인과 다투었던 일을 다시 꺼냈다.

 “나도 나름대로 열심히 하는데, 자식이 이런 마음을 몰라줘. 현수야, 나 많이 섭섭하다.”

 “모르긴, 다 알아. 마지막 작업이라 신경이 곤두서서 그럴 거야.”

 “옛날에 안 그랬는데 내가 경마로 돈을 다 날린 후로는 노골적으로 무시한다니까.”

 “경마라니 무슨 말이야?”

 “아, 그 말 안 했나?”

 동수는 혀가 반쯤 고부라졌다.

 “얼마 전에 작업했었잖아.”

 “잔고증명?”

 “그래.”

 “둘이서 한 거야?”

 “아니. 한 명 더 있었는데 넌 모르는 친구야. 근데 그놈은 작업이 끝나자마자 잠수 타서 연락이 안 돼. 사실 그래서 네가 필요했던 거고.”

 “몇 번 했는데?”

 “두 번.”

 “작업 금액은 얼마야?”

 “3억과 5억.”

 “어떤 식으로 했어?”

 “3억은 서류로, 5억은 바지 세워서 했지.”

 “바지라니?”

 “동인이가 명의대여자 광고 냈잖아. 그 광고로 바지 할 남자를 구해서 잔고업체에 보낸 거야.”

 “설마 그런 위험한 일을 하는 사람이 있어?”

 “그 사람과 거래를 하는 거지. 알면서 하는 인간도 많아. 오히려 우리가 고분고분한 사람으로 선택할 정도야. 그건 동인이에게 맡겨.”

 순간 현우는 열흘 전쯤 K은행 앞에서 만났던 사내가 떠올랐다. 그는 동인이가 건네준 돈봉투를 가슴에 품고 또 일이 있으면 연락을 달라며 커피숍을 나갔었다.

 “저번에 K은행에서 돈을 인출한 남자가 바지야?”

 “아니, 그 사람은 돈만 찾은 명의대여자지.”

 “그럼 그 남자를 바지로 내세우면 되잖아?”

 “안 돼.”

 “왜?”

 “그 남자는 10억 정도의 잔고증명을 의뢰하기에는 외모와 능력에서 의심받을 확률이 높아.”

 “경마해서 얼마 잃었는데?”

 “작업 끝나고 바지 수당과 경비 제하고 셋이서 나눴는데 그중 내 몫을 경마에다 모두 날렸거든. 그래서 이번 작업 비용을 동인이가 다 대고 난 질질 끌려가는 처지가 된 거지.”

 그는 자신의 행동을 자책이라도 하듯 주먹으로 가슴을 쳤다. 순간 현우는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렸다.

 ‘슈킹 금액이 40억이니까 투자금을 빼더라도 얼추 내 배당은 10억 이상이 아닌가!’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변변한 기술 하나 없는 자기 꼴로는 평생, 아니 환생해서 벌어도 못 만질 노다지이다.

 동수는 마지막 잔을 입에 털고는 입맛을 쩍쩍 다셨다. 술이 부족한지 빈 병 입구를 연신 빨아 댔다. 현우는 그 모습이 안쓰러워 소주를 더 사 왔다.

 “동인이와 난 형제지만 너무나 다른 것 같아...”

 현우는 그 독백의 의미를 이해한다. 외모도 기질도 친형제라기에는 차이점이 한둘이 아니다. 단 공통점이 있다면 도박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인은 오락 수준으로 즐기지만 그는 거의 중독이다. 길가에 오락실을 먼저 들어가는 건 동인이지만, 나올 때는 그를 구슬리느라 진땀을 뺀다. 같은 시간에도 돈을 서너 배 잃는 쪽은 늘 동수였다.

 

 한 번은 ‘바다 이야기’라는 성인 오락실에 간 적이 있었다. 그들은 자리에 앉아 버튼 누르기에 정신이 없었다. 담배 연기가 자욱한 공간에 수십 대의 기계와 손님들로 꽉 찼다. 뽀글뽀글 물방울이 올라오는 화려한 바닷속모니터에는 이름 모를 물고기들이 떠다니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버튼을 누르기도 귀찮은지 아예 자동 누름으로 고정한 채 졸았다. 현우는 무슨 재미로 하는지 따분했다. 두 사람의 돈은 줄어들었으나 감소의 속도는 동수가 빨랐다. 

 갑자기 동인이 여종업원을 부르더니 커피를 주문하였다. 그리고 얼른 주위 사람들 몰래 만 원짜리 대여섯 장을 그녀의 손에 쥐여 주며 눈을 깜빡거렸다. 

 조금 후 그의 모니터에 고래가 나타나면서 요란한 팡파르가 울렸다. 또 당첨을 축하한다는 시끌벅적한 멘트가 나왔다. 곧이어 사람들의 부러움과 시샘 속에 기계에서 상품권이 쏟아졌다. 상품권을 돈으로 교환한 결과 원금보다 수익이 더 났다. 하지만 동수가 엄청 잃었기에 합산으로 손해였다. 동인이 딴 돈을 그에게 전부 주고 달래서야 겨우 오락실을 나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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