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사의한 일은 아무나 일어나지 않는다
"엄마가 스님께 부탁해서 해몽을 잘해달라고 그러세요."
"꿈이 어땠는데?"
"아버지가 새끼 돼지 3마리를 데리고 집에 들어왔어요."
"돌아가신 조상이 보이면 좋은 꿈인데, 돼지까지~ 좋은 일이 생기려나?"
"대~박~터져라!"
"대박이 뭐~냐?"
"기적 같은 거야"
"그럼, 신령님이 기적을 내려 주시도록 빌어야지."
"그러니, 스님께 부탁해요."
"알았어, 대박인가 기적인가 물어볼게."
"그것도 그렇지만, 내 사주팔자도 알아봐 주세요."
"사주팔자는 왜?"
"내가 부자로 살 건지, 어떤 지 알고 싶어."
"스님은 그런 것 본다면 뭐라고 할 건데,.."
"관상이나 손금 보면 내가 잘 산다고 했는데, 스님이 더욱 믿음이 가고 확실해요."
"알았어, 안 그래도 내일 초하루라 절에 간다."
어머니는 작은 누이가 늘 돈문제로 쩔쩔매고 궁핍하게 사는 게 안쓰러웠다.
누이는 30대 중반이 훨씬 넘어섰는데 불구하고 아직까지 결혼을 못했다.
연애는 잘해서 사귀는 남자들은 많은데, 결혼할 남자는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 돈 많은 남자를 원하지만, 부자는 가난한 처녀를 원하지 않는 것 같다.
아마도 로또나, 대박 나면 결혼할 생각인가 보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잘 나가고 싶은 데, 돈이 받쳐주질 않으니, 그 또한 스트레스다.
한 번은 남자 친구를 소개했는데 누이보다 2살 아래로, 키도 크고 외모도 잘생겨 여성들에게 호감형이었다.
그런데 더 이상 진전은 없었고 만나지를 않아서 연유를 물어봤더니, 그 남자는 돈을 더 사랑한다고 했다.
지금은 그 남자와 완전히 결별하고 또 남자 친구를 사귀는 중인데, 새 남자 친구 역시 빈털터리라 과연 누이가 지속적으로 사귀게 될지 의문이다. 언제까지 연애만 계속될는지도 모를 일이다.
집안이 가난해 자기 뜻대로 못하지만, 감수성이 예민하고 욕심도 많아 남들에 뒤지면 참지 못하는 성격이다.
학교 동창들이나 친구들 사이에도 늘 리더로 자처하며 나서기도 좋아했다.
그렇기에 남들보다 잘 살고 싶은 욕망이 강하고, 부자를 늘 동경하는 것이다.
어쨌든 집안 사정이 넉넉지 못한 형편이 누이에게는 콤플렉스다.
누이는 어머니가 말씀한 것에 대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건, 아니잖아! 믿으면 이루리라~ 기적이 일어난다고......"
누이는 불만이 가득 찬 표정으로 어머님을 노려보았다.
"내가 만만히 보인다고 나를 갖고 놀았어?"
"누가 너를 갖고 놀았다고........"
"엄마! 동생과 스님, 전부 한 통속이야~ 사기꾼들 같으니......."
누이는 당첨에 떨어진 로또를 찢어 버리며 어머니도, 스님도 원망했다.
이제는 믿음이 불신으로 변했다.
기다릴 줄 모르는 급한 성격도 한몫을 했다.
어머님은 누이의 원성에 아랑곳없이 조용히 웃기만 하셨다.
그러면서 하는 말씀이 있었다.
"욕심이 지나치면 식물을 거두는 것이여."
"식물이 뭐지?"
"숨을 거둔다 말이다."
"식물인간이 된다는 말이데, 죽는다는 말이에요?"
"그래, 자기 분수를 알아야지...."
아무리 수영을 잘하는 사람이라도 바닷속을 모르고 덤벼 들다가 참변을 당하는 이치와 같다.
옛 속담에 '염불보다 잿밥에 더 신경을 쓴다'는 말이 있듯이, 부처님께 빌고 발원은 하지 않고 돈 욕심만
내 보이는 격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불교나 스님을 비방하니 정말 어처구니없었다.
정공 나름대로 생각하기에는 꿈도 꿈을 누가 꾸는 것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다고 믿고 있다.
고전이나 설화에서 전하는 것으로, 진실이든 역사적이든 간에 해몽과 해석에서 많이 달라진다.
중요한 것은 사실여부를 떠나서 믿고, 안 믿고는 자신의 몫이다.
<법화경> 제십 법사품에 나오는 말씀이다.
"<법화경>을 수지하고 독송하고 해설하고 서사하는 사람은 위대한 보살로 인간세계에 중생을 제도하려고
온 사람이기에 존중하고 부처님처럼 공경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면 이보다 더 큰 죄악이 없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렇게 불교를 비방하고 스님을 모욕하니, 정말 죄를 지어도 크게 짓는 것 같다.
또한, 정공은 <금강경>에 나온 '여시아문(如是我聞)' 구절을 해석하면서, '불법(佛法)의 큰 바다에는 믿음이
있어야 들어갈 수 있으며 지혜로써 건널 수 있다'는 믿음을 강조한 것을 감득하였다.
"언니, 여유돈 있으면 좀 빌려줘!"
"여유돈이 어디 있니, 나도 너희 형부께 빌려 쓰고 있어."
누이가 큰 누이에게 돈을 수시로 빌렸는데, 수천만이 넘는다.
큰 누이는 부잣집에 시집가서 돈은 융통되지만, 친정식구 때문에 눈치가 많이 보이고 자존심이 상한다.
"너는 시골 사는 셋째에게도 돈을 빌렸다며?"
"조금 빌렸는데, 장사가 잘되면 금방 갚을 거야."
"엄마가 돌아가셔서 망정이지, 생전 같으면 가만 안 두셨을 거야."
"내가 영원히 이대로 살 것 같아? 대박 나면 전부 2배로, 아니 수십 배로 돌려줄게."
"제발 막내에게는 돈 빌릴 생각 마! 이제 겨우 새 살람 차려 살려고 하는데....."
"나도 살려고 몸부림치고 있어, 그리고 왜 막내는 안 된다는 거야?"
"........"
"차~암! 이상하다, 남자라서 그러는 거야? 뭐야?"
"남자도 남자지만, 우리 집에서 유일한 희망이야!"
"희망? 좋아하네~ 우린, 도대체 뭐야?"
지난 시절에 정공은 어렵게 공무원 시험 합격해서 집안일을 우선적으로 도왔다.
9급 공무원으로 임용되자 말자, 대출을 받아 집안 살림에 보탰다.
할 수 있는 대출은 무조건 대출을 해왔기에, 직장에서는 대출왕이라고 했다.
그런 것을 잘 알고 있는 큰 누이는 미안해서, 더 이상 남동생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누이는 끊임없이 돈을 요구하자, 정공은 아내 몰래 보험회사에서 대출해서 주었다.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어 부부간의 갈등을 유발하고, 가정의 행복까지 위협받았다.
그래도 아직까지 돈타령이니, 도저히 고쳐지지 않는 고질병이라 할 수 있겠다.
누이의 고질병은 불교적 관점에서 고치고 위로가 되는 방편이 요구된다.
불교는 아주 상식적으로 상식적인 사람에게 현실을 적절하게 가르쳐 준다.
인간관계 속에서 상처를 낳는 욕망의 작동원리를 짚고, 상처받지 않는 마음을 이해하기 위한 불교적 사유를
전하며, 욕망을 줄이고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구체적 방법을 제시한다
"누나! 이제라도 그만두고 성실한 삶을 사는 게 좋겠어."
"아니야! 난 대박 꿈을 포기할 수 없어."
"누나! 확률이 얼마나 되는 줄 알아? 3백만 분의 1이야!"
"그게 어쩄다구?"
"그만큼 힘들다고."
"정공아! 넌, 스님들 많이 알잖아?"
"..........."
"용하다는 스님, 한 번 소개해줘라, 누나 대박 나게 도와달라고 해봐! 응? 은혜 잊지 않을게."
"애당초부터 대박은 없어! 그건, 사기꾼들이나 하는 짓이야!"
"믿으면 기적 같은 게 일어난다며?"
"내가 누나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대박 나는 게 아니고, 대박 없이 행복하게 잘 살 수 있게끔 빌어줄게!"
"필요 없어! 지금 장난치는 거야? 스님도 사기꾼이 많다고 하더라!"
누이는 그렇게 말을 내뱉고는 사라져 버렸다.
누이에게는 오로지 돈이 유일한 신이기에, 신이 많은 인도로 가는 게 좋을 것 같다.
인도의 힌두교는 신이 3억 3000만 개나 넘는다고 하니, 누이에게 맞춤식으로 돈이 되는 신을 찾아서 말이다.
그곳에 가면 혹시 누이의 신, 돈에 맞는 신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누이가 돈이 자신의 신이라면, 로또는 복음과 같은 경전이요, 신의 은총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며 자본이 제일이라고 외치는 누이의 시대관은 완전 서구적 물질주의이다.
개인적으로 이득을 챙기는데, 자본주의 폐해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개인주의가 문제는 아니다.
다만, 이기주의로 치닫고 있는 사회적 현실이 누이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그래서 자신만의 이득을 챙기기 위해 형제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이 문제다.
어쨌든 정공은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했다.
이제는 누이와의 관계를 정립하고, 자신의 길을 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불교를 배우는 진정한 불자가 되기 위해서는 현실에 잡다한 문제에 매달려서는 곤란하다.
세속적인 문제와 잡념에 허덕이면, 무슨 수행이며 정진이 되겠는가.
수행자는 물건들에게 지배당하고 살 수는 없다. 절제와 자제의 정신적 의지가 강하게 요구된다.
어쨌든 나와 누이는 사는 삶의 방식이 따로 있고, 어머니 뱃속에서 피를 나눈 형제로서 조언을 할 뿐이다.
"스님! 환속하는 스님이 아니더라도 출가 후, 부모형제를 찾는 경우가 있습니까?"
"스님도 사람인데, 왜 찾지 않겠어요? 당연한 것이지요."
"그럼, 스님께서는 부모형제를 찾은 일이 있습니까?"
"슬프지만~ 이 세상에는 한 분도 없지요, 다 돌아가셨지요."
"죄송합니다, 스님....."
"아닙니다, 그런데 거사께서는 어떤 연유로....."
"아! 예~ 작은 누이가 있는데, 집안에서 말썽을 피워 형제들이 난처해하죠."
정공은 스님께, 집안에 일어났던 누이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스님은 한참 동안 말없이 듣고 있다가 말문을 열었다.
"숲 속에는 대나무, 소나무, 독풀, 잡초 등이 조화롭게 숲을 무성하게 이루고 있어요.
숲은 생생하고 온갖 생명이 넘쳐나죠.
득이 있는 것이 있는 가 하면, 실이 있는 것도 있지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대나무 같이 꼿꼿한 사람, 잡초 같이 아무렇게나 사는 사람도 있지요.
겨울이 오면 대나무와 소나무만 살아 남고, 숲 속은 그야말로 황량하고 쓸쓸하죠.
말썽 피우는 사람도 세월이 가면 언젠가 사라지고, 그 사람이 있던 자리가 겨울 숲 속 같이 허전하죠.
그래요, 모든 것이 한 때이고, 세월과 함께 묻어가는 것이죠."
스님은 초기 경전 <아함경>에 나온, 붓다가 바라문의 질문에 대한 대답한 말씀을 인용했다.
"바라문이여, 나도 밭을 간다. 나도 밭 갈고 씨 뿌려서 먹을 것을 얻고 있느니라."
여기서 붓다는 내가 뿌리는 씨는 믿음이요, 내 모습은 지혜가 그것이라고 했다.
또 나날이 악업을 제어하는 것은 곧 김매는 작업이며, 내 소는 무엇이냐 하면 정진이 그것인바,
이 소는 한 걸음 한 걸음 착실히 나아가 물러섬이 없고, 그 행한 결과에 대해 뉘우쳐야 할 일도 없다고 했다.
이것이야말로, 불교의 핵심사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스님은 결론지었다.
다시 말하면, "가고 돌아섬이 없고, 행하여 뉘우침이 없는 정신의 지속이 요구되는 것이다."라고 했다.
즉 신심과 발심을 관련하여, 경전 그대로 덧붙여 설했다.
"낡은 것은 이미 지나가고, 보라! 새롭게 되었도다."
정공은 절을 나오며 절 앞에 소나무를 쳐다보았다. 어머님 생전 다녔던 절에도 소나무가 많았다.
순간, 어머니 절과 스님이 염불 하는 모습이 연상되었다.
그리고 은사스님이 염불에 관련하여 설했던 법문이 생생히 전해왔다.
"염불 하는 사람은 DNA가 다르지, 환희심이 일어나지~
소리가 중요해! 염불 소리에 모든 산 짐승들이 행동을 멈추고 조용히 듣지~
염불 하면 청정해지고 내 몸이 그렇게 받아들여지는 거야~
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큰 소리로 명호해야.......
100번 외우는 것과 함께 예불과 정례도 지성껏 하면 불가사의한 일이 일어나는 거야!
시방세계 모든 부처님께서 보호하시고 칭찬하시는 이 염불법을 믿지 못하고
심지어 비방하고 폄하하는 사람들이 이 땅에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안타까워!
<대방광불화엄경> 입법게품에서 법을 구해 떠난 선재동자가 처음 만난 덕운 비구가
설해 준법이 바로 염불법인게야, 그리고 보현보살이 열 가지 대원을 통해
육방의 부처님들이 호념하고 칭찬하듯이 자신도 부처님 모시기를 서원했어~
이런 원력 수행이 염불행인데 어찌 믿고 따르지 않겠는가."
그리고 수승한 방편을 설하셨다.
"믿음을 성취하고 발심하여 정정취에 들어가야 부처의 종자를 이루고 나아가 부처의
지위를 이어갈 수 있어, 중생이 믿음을 성취하고 발심하는 것은 진실로 어려워~
여기 정정취에 들어가는 수승한 방편을 보이니 진실한 믿음을 일으켜서 안심하고
정진해야 할 것이야! 중생이 처음 이법을 배워서 바른 믿음을 구하려고 하지만
그 마음이 겁이 많고 약하여, 이 사바세계에 머무르며 스스로 항상 모든 부처님을
만나 친히 받들어 공양하지 못할까 두려워한다. 그래서 신심을 성취하기가 어렵다.
신심을 섭수하여 보호함을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다.
오로지 뜻을 모아 염불 한 인연으로 원함에 따라 타방불토에 태어나게 되어
항상 부처님을 뵙고 영원히 악도를 멀리하는 것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