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진정한 자유를 찾았다
도대체 어찌 된 일이야?
어디 갔고,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정공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요즘 들어 여사는 전혀 모습을 보이질 않는다.
도서관에도 나오질 않고, 절에도 마찬가지이다.
궁금해서 소식을 알아보려고 전화를 해도 받질 않는다.
잘 가는 텃밭이나 학교운동장과 카페 등으로 전전하며 아는 사람들과 수소문하고 다녔다.
내게는 부처님 되라고 해놓고 자신은 아무 말도 않고 사라져 비린 것이다.
한 때는 서로가 지극히 생각하는 사이였다.
나이가 또래여서 친하고 싶었고, 취미도 비슷해서 같이 다니며 말동무도 했었다.
늘 나에게도 귓속말로 소곤소곤 말하며 찰떡궁합이 되었다.
언제부터였는지 몰라도 내게 적극적으로 다가와, 불도에 관련된 이야기를 수시로 늘어놓았다.
어느 때는 화려하게, 어느 때는 은은하게, 불가의 사람처럼 수수한 타입으로 말해왔었다.
불도를 이야기할 때는 마치 들꽃 같고, 야생화 같고 사시사철 생기가 있어 보였다.
내가 불도에 관해 이야기를 할 때면, 언제나 나를 항상 앞서 나갔고, 일사천리로 말끝을 잡아버린다.
침묵으로 일관하자, 머쓱했는지 내 표정을 보고 조금은 미안해하며 차나 한 잔 하자고 분위기를 돌린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녀는 달라지고 있었다.
쌍꺼풀 수술도 했고, 입술에 빨간색 립스틱 짙게 바르고, 스타일이 많이 변했다.
왜 그러는지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좀 더 젊게 보이려고 노력하는 것 같이 보였다.
여사는 그전에 없던 행동의 변화였다. 항상 수수한 타입에서 색다른 외모로, 몸단장에 신경을 써는 것이다.
좋게 해석하자면, 영원히 시들지 않는 꽃으로 남으려는 것 같다.
정공이 말하는 것은 외모가 아니라 그녀의 정신, 오랫동안 시들지 않는 신심(信心)의 꽃을 말하는 것이다.
어쨌든 그녀는 자신을 처음 만났을 때 반색을 하며 1번 친구로 하자고 그랬었다.
정공 역시, 그러자고 했고 그녀가 하자는 대로 해왔다.
처음에는 불도의 길을 가자고 했고, 또 문학을 같이 하자고 하며 많은 것에 동참을 요구했다.
그런데, 요즈음은 세속적인 욕망과 허세에 더 관심이 쏠리는 것 같다.
과연, 그녀는 원하는 게 진정 무엇이란 말인가?
정공은 무엇보다 그녀가 왜 자신을 멀리 하려는 이유를 알고 싶었다.
그리고 불도와의 인연으로 서로가 편하고 가까운 사이로 발전되었기에, 지금 상황으로 마음이 뒤숭숭해진 것이다. 이러한 마음은 어떠한 것에서 비롯되었을까? 자꾸만 번뇌가 쌓여가는 느낌이다.
내가 그녀를 정말로 사랑하는 것일까?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욕망에 허덕이는 게 아닐까?
정공은 허무하고 가슴에 뻥하고 구멍이 난 것 같았다.
그런 일이 있고 난 후, 오랜만에 절에 갔다.
"오랜만에 오셨군요."
"네~에! 스님, 죄송합니다."
정공은 그동안에 있었던 일을 스님께 소상히 말했다.
"스님! 원효성사를 사모한 여인이 있었고, 의상대사도 있었다고 하던데, 실제로 있었습니까?"
정공은 원효성사와 요석공주, 의상대사와 선묘 낭자, 연모의 이야기를 들은 바가 있기에 물었다.
"옛날이야기가 왜, 새삼스럽게 궁금한 거죠?"
"불자들에게도 사랑이나, 애정 같은 것이 존재하고 그게 가능한가, 궁금해서요."
"거사께서 그런 일이 있습니까?"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뭔가 묘한 기분은 어떤 마음인지 알고 싶습니다."
"옛날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성 간에 문제는 항상 존재했고 관련 이야기도 많았습니다.
선사들께서도 있었고 불자 간에도 있었습니다. 그건 인간이기에 일어나는 현상일 뿐입니다."
"그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선사들께서는 무덤덤하게 생각하고 자기만의 수행에만 몰두하는 분들이 대부분이었지요.
다만, 경계나 주의를 게을리하지 않았죠."
"그럼, 일반 불자들은 어떻게 했는지요?"
"옛적에는 슬픈 설화나 전설로 끝난 이야기로 전래되어 왔지만, 지금은 좀 다르죠."
"어떻게요?"
"애정 행각은 짧을수록 좋고 순수한 사랑은 괜찮은 것 같아요. 인간관계에서 고려해야 할 사항이고, 늙어서 외로울까 너무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모든 인간은 혼자 왔다 혼자 간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해요."
"이론적으로는 타당한 말씀이지만, 실제로 느끼는 감정 조절이 힘든 것 같아요."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늘 이성 간에 경계할 것을 강조했죠. 소승 같은 경우는 여인을 바라볼 때 얼굴을 보지 않습니다. 누구인가를 확인하고는, 주시하지 않는다는 말이죠."
"그건, 아예 무시하는 것 같은데........"
"불도의 궁극적인 힘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그건, 깨달음이죠."
"그래요, 깨달음은 곧 마음에 진리의 등불을 밝힌 거잖아요. 등불이 꺼지지 않게, 수행 실천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것이야 말로 자신과 자신에게 관련된 사람 등 모두 행복하게 하는 것이죠."
"일상생활에서 깨달음을 알고 싶습니다."
"일상생활에서 힘들고 참아야 하는 것이 많은 세상이지만, 그것을 바로 알고 나면 행복해지는 것이지요."
"어떻게요?"
"지금 마음상태가 한 시간 뒤, 일주일 뒤, 그리고 한 달 뒤의 자신을 결정합니다. 작은 것에도 만족하고
감사하는 그 마음에 극락이 있고, 아미타부처님이 있고, 관세음보살, 지장보살이 함께합니다."
스님은 깨달음에 관해서 이어서 설하셨다.
"깨달은 이의 마음은 구름 위의 하늘과 같습니다. 구름 밑은 마치 중생의 세계처럼 갖가지 욕망과 욕심,
시비 질투로 얼룩져 항상 고통과 괴로움을 받습니다. 그런데 깨달은 이의 마음은 구름 위의 하늘처럼
파랗고, 바깥 경계에 마음을 빼앗기거나 끄달리지 않아 어떠한 상황에서도 맑고 여여합니다."
한동안 스님과 화두를 두고 법회 시간이 다되어 나왔는데 스님이 살짝 물으셨다.
그 여인이 누구냐고 하길래, 지금 절에서 공양하는 일을 돌보는 보살이라고 했다.
스님은 잠시 놀란 표정을 짓고는, 이내 법당으로 갔다.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그녀는 더 이상 절에 나오질 않았다.
스님의 말로는 몸이 안 좋아, 친정집 근처 농장에서 휴양과 소일한다고 했다.
정공은 의아해하며, 최근 본모습과는 전혀 다른 생활방식에 궁금증이 더욱 증폭되었다.
그리고 다시 그녀에 대한 생각이 깊어졌다.
평소 그녀는 사교적이며 활동적인 성격으로 모든 것을 가지려는 욕망의 소유자처럼 행동을 해왔었다.
그래서 최근 자신의 변신을 보고 서서히 이해가 갔다.
그런데 갑자기 두문불출하고 시골에 갔다고 하니, 도무지 영문을 모를 일이었다.
법회가 끝난 뒤, 공양을 마치고 스님과 차 한 잔 나누며 이야기가 오갔다.
"보살님께서 거사님을 좋아하셨나 봅니다."
"스님께 말하기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저 또한 보살님을 좋아했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고 좋은 현상이에요."
"서로 가정이 있는 사람으로서, 이성 감정을 느끼며 사귀는 것이 타당한가요?"
"그런 죄의식을 느낀다면,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불륜이니 그만둬야죠."
"그렇다면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괜찮은 가요?"
"부처님 자비는 우리들에게 필요한 사랑으로 다가오지만, 사랑의 감정은 올바르게 전달되어야 합니다."
"저는 사랑을 고백하지 않았고, 보살님 역시 저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한 적은 없습니다."
"그러니 죄의식을 느끼는 불륜은 아니지요."
"단지, 부처님 공부를 하며 수행하는 자의 도리는 아닌 것 같아서..."
"그건 보살님도 그렇게 생각하고 시골에 내려갔을 거예요."
"이제야, 스님께서 전에 말씀하신 것을 이해하겠군요."
"많은 스님들이 환속을 한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건 스님들 이야기지요. 불자들은 아직, 계를 정식으로 받지 않았기에 괜찮습니다."
"그럼, 보살님은 돌아올 수도 있겠네요?"
"그렇지요, 일시적 감정이라면 세월이 지난 후에 다시 절을 찾을 수도 있겠죠."
스님 말씀을 듣고 정공은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사랑이든 욕망이든 번뇌이든 모두가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진실이 통하고 진심이 전달되었다면, 그것으로 더 이상 여한이 없다.
세속에서는 ‘부모 팔아서 친구 산다’는 속담이 있다.
이와 비슷한 말로, 선사들께서도 언급이 있었다.
‘스승 팔아 도반 산다’는 말이 예부터 내려온다. 스승님은 어려우니까 맘속의 말을 다할 수 없지만,
도반은 스스럼없는 사이이니 못할 말이 없는 것이다.
工夫人은 언제나 도반과 함께 행각도 하면서 맘속을 서로 툭 터서 보이기 마련이다.
이런 연유로 그녀를 도반이나 벗으로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그리고 은사 스님은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본래 이기적이기에 부처님 공부를 열심히 해서 자비를 베풀도록 하라.
내가 이기적이라는 것을 먼저 인정하고 남의 이기심을 인정하라.
말로는 친구고 부부라고 하지만 기본 바탕엔 이기심이 깔려 있다.
그리고 착한 사람이 더 경계해야 되고 무섭다.
착하다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 진실하다고 믿고 다른 사람 말을 듣지 않는다.
착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본의 아니게 세상을 어지럽힌다.
특히 여성들은 감수성이 예민해서 사랑이라는 말에 약하고, 외로움을 많이 탄다.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랑이 두려워 마음의 문을 닫지 말라.
마음은 항상 열어두어야 자비심을 베풀 수 있다.
부처님처럼 덕이 있고 복이 있는 말을 하면서 한량없는 자비를 베풀도록 하라."
그리고 스님은 사랑하는 마음에 대하여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여성은 대체적으로 꽃에 마음을 빼앗기죠, 반면에 남성은 의리를 소중히 생각하지요.
그러나 아름다운 꽃은 곧 시들지요. 의리 또한 언제든지 변하기도 하죠.
마음이 가는 대로 정해지는 거예요. 헛된 생각으로 가지 않고 올바른 방향으로 가게 마음을 잡아야 해요.
스님들도 매일같이 수행자로서 이렇게 마음공부를 하는 거지요.
깨달음은 결론이 아니고 과정이에요.
끊임없이 공부를 하고 깨달음에 늘 다가가지요."
정공은 은사 스님 말씀에 탄복을 했다.
어쩌면 이렇게 내 마음과 보살님의 관계를 정확하게 파악해서 지혜를 주셨는지, 감사할 따름이다.
그리고 석가모니는 "각자 자신을 등불로 삼으라."라고 했다.
최근에 그녀의 돌발적인 행동과 자유분방함을,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내 마음속에 미움이나 원망, 탐욕이 없는, 아무 걸림이 없고 자유로울 때, 비로소 사랑과 자비가 보인다.
이제는 사랑하는 마음도 알았고, 자비심도 분명하게 알았다.
사랑과 번뇌, 그 개념도 해석의 차이가 아니고 일어나는 감정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정공은 은사 스님께 명확한 답변을 드릴 자신감이 생겼다.
비록 진정한 사랑을 몸소 체험은 못했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았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모두 다 사랑할 수 있다고, 말을 하고 싶었다.
사랑도 미움도 번뇌도 모두가 마음에서 비롯되기에, 무엇보다 마음을 바로 잡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정공은 절에서 나오면서 스님이 말한 자신에게 돌아갔다는 말을 상기시켰다.
스님은 그녀가 어디론가 떠난 것이 아니고 자기 자신에게 돌아갔다는 애매모호한 말을 했기 때문이다.
평소 그녀를 만나면 마음이 설렌다. 항상 생기발랄하고 정겹게 대하며 즐겁고 기분이 좋았다.
그녀의 변화, 역시 나이가 많다든지 늙어가고 있다든지 등 나이에 대한 의식을 극복하는 것 같다.
늘 꿈을 꾸고, 꿈꾸는 것을 바로 실천에 옮기는 것도 인생의 굴곡을 파도타기처럼 곡예를 한다.
마치 서핑을 보는 것 같다. 그녀는 또 하나의 새로운 경험으로 인생에 있어서 성숙한 발전을 한다.
그녀는 확실히 해탈과 열반에 들 수 있는 지혜를 감득한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그녀는 가장 진정한 불자로 거듭나는 것이다.
스님이 선물로 준 책에서 분명한 자유란 말을 보았다.
그 자유란 한국불교의 선각자 원효, 경허선사가 춤을 덩실덩실 추며 말한 자유이다.
그렇다면 축하할 일이다. 최상의 깨달음 뒤에 오는 환희의 자유이니깐.....
<금강경>의 대지(大旨)와 이치를 감득하면 굳이 빛나는 태양과 푸른 하늘을 이야기하지 않아도 대자유의 삶이 펼쳐지고 날마다 좋고 행복한 삶이 펼쳐진다고 한다.
이와 같이 그녀는 대자유를 얻은 것이다.
홀로 앉고 홀로 눕고 싫증 내지 않고 홀로 다니며 자신을 길들이기에, 어디에서 던 즐겁게 지낼 것이다.
축하해 주고~ 나와 헤어진다고 해도, 아름다운 친구로 오래오래 기억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하기에 아름다운 이별이거니와, 미련이나 아쉬워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스님의 비유한 말씀이 연상되었다.
"해가 떠서 세간에 두루 비치되, 모든 깨끗한 물이 있는 그릇에는 그림자가 나타나서
여러 곳에 두루 하지만 오거나 가는 일이 없으며, 한 그릇이 깨지면 그림자가 나타나지 않느니라."
해는 <화엄경>에서 광명을 뜻하고 물은 선정이요, 그림자는 지혜이고 깨진 그릇은 탐진치의 중생이라고 했다.
깨진 그릇, 엎어져 물이 다 쏟아진 것을 외도라 말할 수 있고 불도 공부를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열심히 배우고 또 배워서 지혜를 얻어라는 말씀이다.
공부하지 않는 스님은 '수행을 제대로 하지 않고 놀기를 좋아하는 중'이라고 하고,
열심히 정진하고 수행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불도를 세우는 길이라 했다.
이는 스님도 불자도 모두 똑 같이 적용되는 것이라 한다.
정공은 이와 같이 경전공부를 하면서 배움 중에 깨달음이 가장 큰 즐거움으로 다가왔고,
스님의 명쾌한 경전 해설에 존경심이 저절로 나왔다.
이처럼 높고 큰 배움의 진리를 터득함에 있어서, 항상 스님들을 공경하며 볼타에 지성껏 예경을 다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정공은 이번 일로 인하여 또 하나의 깨달음을 증득했다.
대자유를 얻은 보살님은 이러한 계기를 주었고, 스님도 이에 대한 처신을 잘할 수 있는 방편을 가르쳐주셨다.
욕망은 욕망을 낳고 사랑은 또 사랑을 낳고 번뇌는 계속 번뇌를 낳는 것이다.
그래서 번뇌를 끊어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인위적으로 무조건 끊고 싶다고 끊어지는 것이 아니다.
어떤 계기가 있고, 그 계기를 통한 자신이 몸소 체험하고 깨달아야 되는 것이다.
어쨌거나 부단한 마음공부, 즉 불도 공부를 열심히 해야만이 부처의 마음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아마도 내가 가야 할 길이 명확해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