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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공 Dec 04. 2022

사랑과 자비

사랑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

"사랑이  아니고 자유라고요."

"자유? 그럼 여태까지 사랑에 구속되었나..."

일동은 한참 동안 여인을 지켜보고 있었다

내게는 부처님 되라고 해놓고 자신이 도대체 무슨 말을 했는지 잘 모르는 것 같았다

한 때 서로가 지극히 생각하는 사이였다.

나이가 또래여서 친하고 싶었고, 취미도 비슷해서 같이 다니며 말동무도 했었다.

늘 나에게도 귓속말로 소곤소곤 말하며 찰떡궁합이 되었다.

언제부터였는지 몰라도 내게 적극적으로 다가와, 불도에 관련된 이야기를 수시로 늘어놓았다.

어느 때는 화려하게, 어느 때는 은은하게, 불가의 사람처럼 수수한 타입으로 말해왔었다.

불도를 이야기할 때는 마치 들꽃 같고, 야생화 같고 사시사철 생기가 있어 보였다.

내가 불도에 관해 이야기를 할 때면, 언제나 나를 항상 앞서 나갔고, 일사천리로 말끝을 잡아버린다.

침묵으로 일관하자, 머쓱했는지 내 표정을 보고 조금은 미안해하며 차나 한 잔 하자고 분위기를 돌린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녀는 달라지고 있었다.

그전에 없었던 행동이자, 특별한 행동에 주목했다.

쌍꺼풀 수술도 했고, 입술에 빨간색 립스틱 짙게 바르, 스타일이 많이 변했다.

그러는지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좀 더 젊게 보이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다.

여인의 마지막 몸부림인지, 지난 세월이 허무했는지, 뭔가 모르게 변해갔다.

일동은 그녀가 쏘아붙이는 듯한 말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그녀는 일동을 처음 만났을 때 반색을 하며 1번 친구로 하자고 그랬었다.

일동 역시, 그러자고 했고 그녀가 하자는 대로 해왔다.

처음에는 불도의 길을 가자고 했고, 또 문학을 같이 하자고 하며 많은 것에 동참을 요구했다.

그런데, 요즈음은 세속적인 욕망과 허세에 더 관심이 쏠리는 것 같다.

과연, 그녀는 원하는 게 진정 무엇이란 말인가?


"스님! 원효대사를 사모한 여인이 있었고, 의상대사도 있었다고 하던데, 실제로 있었습니까?"

일동은 원효대사와 요석공주, 의상대사와 선묘 낭자, 연모의 이야기를 들은 바가 있기에 물었다.

"그건 왜 물어시죠?"

"불자들에게도 사랑이나, 불륜 같은 것이 존재하고 그게 가능한가, 궁금해서요."

"일동 거사께서 그런 일이 있습니까?"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뭔가 묘한 기분으로 마음을 정립하고 싶습니다."

"옛날부터 지금에 이르기 까지, 이성 간에 문제는 항상 존재했고 관련 이야기도 많았습니다.

선사들께서도 있었고 불자 간에도 있었습니다. 그건 인간이기에 일어나는 현상일 뿐입니다."

"그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선사들께서는 무덤덤하게 생각하고 자기만의 수행에만 몰두하는 분들이 대부분이었지요.

다만, 경계나 주의를 게을리하지 않았죠."

"그럼, 일반 불자들은 어떻게 했는지요?"

"옛적에는 슬픈 설화나 전설로 끝난 이야기로 전래되어 왔지만, 지금은 좀 다르죠."

"어떻게요?"

"불륜은 짧을수록 좋고 결혼은 길어야 좋다는 말이 있어요. 인간관계에서 고려해야 할 사항이고, 늙어서 외로울까 너무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모든 인간은 혼자 왔다 혼자 간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해요."

"이론적으로는 타당한 말씀이지만, 실제로 느끼는 감정 조절이 힘든 것 같아요."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늘 이성 간에 경계할 것을 강조했죠. 소승 같은 경우는 여인을 바라볼 때 얼굴을 보지 않습니다. 누구인가를 확인하고는, 주시하지 않는다는 말이죠."

"그럼, 아예 무시해야 하는 건가요."

"불도의 궁극적인 힘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그건, 깨달음이죠."

"그래요, 깨달음은 곧 마음에 진리의 등불을 밝힌 거잖아요. 등불이 꺼지지 않게, 수행 실천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것이야 말로 자신과 자신에게 관련된 사람 등 모두 행복하게 하는 것이죠."


한동안 스님과 화두를 두고 법회 시간이 다되어 나왔는데 스님이 살짝 물으셨다.

그 여인이 누구냐고 하길래, 지금 절에서 공양하는 일을 돌보는 보살이라고 했다.

스님은 잠시 놀란 표정을 짓고는, 이내 법당으로 갔다.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그녀는 더 이상 절에 나오질 않았다.

스님의 말로는 몸이 안 좋아, 친정집 근처 농장에서 휴양과 소일한다고 했다.

일동은 의아해하며, 최근 본모습과는 전혀 다른 생활방식에 궁금증이 더욱 증폭되었다.

그리고 다시 그녀에 대한 생각이 깊어졌다.

평소 그녀는 사교적이며 활동적인 성격으로 모든 것을 가지려는 욕망의 소유자처럼 행동을 해왔었다. 

그래서 최근 자신의 변신을 보고 서서히 이해가 갔다.

그런데 갑자기 두문불출하고 시골에 갔다고 하니, 도무지 영문을 모를 일이었다.

법회가 끝난 뒤, 공양을 마치고 스님과 차 한 잔 나누며 이야기가 오갔다.

"보살님께서 일동 거사님을 좋아하셨나 봅니다."

"스님께 말하기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저 또한 보살님을 좋아했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고 좋은 현상이에요."

"서로 가정이 있는 사람으로서, 이성 감정을 느끼며 사귀는 것이 타당한가요?"

"그런 죄의식을 느낀다면,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불륜이니 그만둬야죠."

"그렇다면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괜찮은 가요?"

"부처님 자비는 우리들에게 필요한 사랑으로 다가오지만, 사랑의 감정은 올바르게 전달되어야 합니다."

"저는 사랑을 고백하지 않았고, 보살님 역시 저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한 적은 없습니다."

"그러니 죄의식을 느끼는 불륜은 아니지요."

"단지, 부처님 공부를 하며 수행하는 자의 도리는 아닌 것 같아서..."

"그건 보살님도 그렇게 생각하고 시골에 내려갔을 거예요."

"이제야, 스님께서 전에 말씀하신 것을 이해하겠군요."

"많은 스님들이 환속을 한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건 스님들 이야기지요. 불자들은 아직, 계를 정식으로 받지 않았기에 괜찮습니다."

"그럼, 보살님은 돌아올 수도 있겠네요?"

"그렇지요, 일시적 감정이라면 세월이 지난 후에 다시 절을 찾을 수도 있겠죠."


은사 스님은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본래 이기적이기에 부처님 공부를 열심히 해서 자비를 베풀도록 하라.

내가 이기적이라는 것을 먼저 인정하고 남의 이기심을 인정하라.

말로는 친구고 부부라고 하지만 기본 바탕엔 이기심이 깔려 있다.

그리고 착한 사람이 더 경계해야 되고 무섭다.

착하다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 진실하다고 믿고 다른 사람 말을 듣지 않는다.

착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본의 아니게 세상을 어지럽힌다.

특히 여성들은 감수성이 예민해서 사랑이라는 말에 약하고, 외로움을 많이 탄다.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랑이 두려워 마음의 문을 닫지 말라.

마음은 항상 열어두어야 자비심을 베풀 수 있다.

부처님처럼 덕이 있고 복이 있는 말을 하면서 한량없는 자비를 베풀도록 하라."

일동은 은사 스님 말씀에 탄복을 했다.

어쩌면 이렇게 내 마음과 보살님의 관계를 정확하게 파악해서 지혜를 주셨는지, 감사할 따름이다.

그리고 석가모니는 "각자 자신을 등불로 삼으라."라고 했다.

선사들도 또한 말했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라."라고 했다. 철저한 주체와 자유를 말하는 것이다.

그녀가 말하는 자유를 이제야 이해를 했다.

내 마음속에 미움이나 원망, 탐욕이 없는, 아무 걸림이 없고 자유로울 때, 비로소 사랑과 자비가 보인다.

이제는 사랑하는 마음도 알았고, 자비심도 분명하게 알았다.

사랑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 그 개념도 해석의 차이가 아니고 일어나는 감정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일동은 은사 스님께  명확한 답변을 드릴 자신감이 생겼다.

비록 진정한 사랑을 몸소 체험은 못했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았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모두 다 사랑할 수 있다고, 말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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