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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공 Nov 27. 2022

사후세계

극락과 천국

"이제 꿈에도 나타나지 않으니, 극락에 갔나 보다."

일동은 어머님 말씀을 듣고, 다시 물었다.

"어머니! 아재가 실제로 나타났어요?"

"그럼, 그래서 스님께 여쭈었고, 염불을 하셨는데, 그 뒤로 나타나지 않았지."

어머님 이야기를 듣고 외가 친척인 오촌 아재가 생각났다.

수년 전 오촌 아재가 해운대 호텔에서 극약을 먹고 자살을 했었다.

아재는 원래 착실한 성격으로 진주에서 건축업을 하며 아주머니와 둘이 잘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건축업 차 부산에 출장을 와서 장기간 일을 하면서 애인이 생겼다.

그렇다 보니 삼각관계에 놓인 당사자로 애정 행각에 고민을 많이 했고, 천성이 워낙 착하다 보니 양심에 가책을 느껴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말았다.

그 당시에 아버지가 시신을 수습했고 화장까지 하였다.

그 일이 지난 후, 비가 부슬부슬 오는 점심때였다.

어머니가 잠깐 낮잠을 자고 있었는데, 고모님 하며 부르는 소리가 들려 일어나 문을 열어 밖을 내다보았다.

아재가 죽은 당시 모습으로 비를 맞고 대문에 서서 있었다고 했다.

어머니가 당장 소리를 쳤다.

"네가 어디서 여기 나타나서 이러느냐? 당장 물러가라, 고모부 오시면 혼쭐이 난다."

꿈인지 생시인지 몰라도 뒤숭숭한 게, 그 뒤로부터 늘 꿈자리에도 계속 나타난다고 했다.

그래서 어머니께서 다니시는 절에 스님께 말씀을 드렸고, 스님이 직접 집에 와서 영가를 위한 염불을 했었다.

그 뒤로는 아재가 꿈에도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 당시에는 어머니가 그렇게 말씀하셨기에 그러려니 생각했지만, 지금은 극락에 대해 생각이 전혀 달랐다,

극락이란 종교적 관점에서 상당히 주관적인 해석으로, 불자들이 믿음의 성향에서 원하는 이상형의 세계다.

그리고 어머님은 그때 상황이 생지옥 같아서, 그 상황이 사라지니 극락에 갔다고 말을 했는 것 같다.

일동의 생각은 설사, 극락세계가 있다고 하더라도 오촌 아재는 극락에 가지 않았다고 생각이 들었다.

왜냐면 친지들에게 아픔과 슬픔을 주고, 자신만 괴로움을 벗어나려고 그런 극단적인 일을 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고 나면, 일단 염라대왕이 재판을 하고 극락이던, 지옥이던 보낸다고 한다.

어쨌든 일동은 오촌 아재의 일을 생각하며 나름대로 극락에 대한 견해를 정리했다.

사후는 모르겠고, 생전의 오촌 아재 극락은 아주머니와 알콩달콩 살면서, 미래의 장밋빛 꿈을 펼치며 행복하게 살아온 그 당시가 극락이었던 것 같다.


어머니 생전에, 누이 시집에서 비슷한 일이 있었다.

누이가 시집가기 싫어했는데, 아버지가 과년한 딸이 집에 있어 밥을 축낸다며 난리가 났다.

그리고 막무가내로 맞선을 보게 하여 먼 곳으로 시집을 갔었다.

누이는 시집간 지, 한 해도 못되어 다시 친정으로 내려왔다.

이유인즉, 남편이 맨날 술만 먹고,  때리고, 그래서 못살겠다고 했었다.

그래서 어머님이 간신히 달래, 다시 시집으로 보냈다.

그것도 잠깐, 이번에는 남편과 같이 친정으로 돌아왔다.

"박서방! 왜 술을 그리 먹고 처를 때리고 그러나?"

"죄송합니다. 다시는 그러지 않을 테니, 집사람 좀 보내주십시오."

"좋아, 그런데 이야기 한번 들어보자, 우리 아이가 무서워 못살겠다고 하니 그게 무슨 까닭인가?"

매형은 자초지종 설명하는데, 놀라운 것은 그 집안에 귀신이 우글우글 산다고 했다.

오래전에 남동생이 오토바이 음주운전 사고로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여동생마저 자살했다고 한다.

그리고 결혼하고 나서 술 귀신이 씌었는지, 자신도 모르게 술을 먹고 아내가 귀신으로 보여 때렸다고 한다.

그렇게 집안에서 나타나는 귀신은 자살한 자신의 여동생이었다고 했다.

지금은 교회에 다니고 있으며 술도 먹지 않고, 귀신도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그럼, 왜 우리 애가 자꾸 친정으로 오는가?"

"집사람은 교회를 다니지 않기에 귀신을 보는 것 같습니다."

"허~어, 이 사람아! 혼자서 다니면 어떡하나? 같이 가야지."

"집사람은 절대 가지 않는다고 하니 어떡합니까?"

결국 어머님은 누이 시집까지 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 집에서 누이를 안심시키고, 귀신이 보이면 쫓는 처방을 가르쳐 주고 내려오셨다.

그 후로는 귀신 이야기는 듣지 못했고, 누이와 매형이 그런대로 잘 살고 있었다.

누이는 딸까지 낳아, 어머님께서 누이 산후조리를 위해 시집에 다시 가셨다.


어머님 돌아가시고 3년이 넘은 지, 2010년 겨울이었다.

매형이 돌아가셨다고 연락이 왔다.

간암으로 그동안 투병 끝에, 발병한 지 1년도 못되어 돌아가신 것이다.

일동은 충남 금산으로 급히 올라갔다.

조용한 충청도에는 하얀 눈이 쌓여 온통 설원 평야로, 옛날 추억이 떠올랐다.

눈이 오면  누이는 매형, 딸아이와 함께 눈사람을 만들고 신나게 놀았다.

부산에는 좀처럼 눈 보기가 힘들었기에, 신기하고 즐거웠던 것이다.

일동은 그곳에서 살고 싶을 정도로 아늑하고 포근한 아름다운 곳이었다.

일단 누이를 위로하고 장례절차에 들어갔다.

장례식은 기독교식으로 진행되었는데, 목사가 하나님이 영혼을 천국으로 데려갔다고 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천국은 어떤 천국인지 잘 모르겠지만, 생전의 천국과는 전혀 다른 것일 게다.

아무것도 없는, 그런 천국을 말하는 것 같다.

일동이 볼 때는 천국으로 간 것이 아니고, 천국에서 떠나간 것으로 생각되었다.

일동이 생각하는 천국은 사후가 아닌, 매형의 생전이 천국이었던 것이다.

아내와 딸과 셋이서 오붓하게 살 때가 천국이었지, 사후의 천국은 아닌 것 같다.

충남 금산은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었다.

누이도 금산이 맘에 들었는데, 사람이 문제를 일으키고, 그러한 문제로 인하여 살기 싫어 친정으로 왔었다.

그리고 지옥 같은 나날이 지나가고 극락 같은 나날이 왔기에, 매형과 딸과 오순도순 잘 살아왔던 것이다.


일동은 은사 스님께 들은 이야기가 생각났다.

극락과 천국을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죽음과 삶의 의미에 대해서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죽음과 삶은 스스로 체험할 때에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는 대상이라는 점에서 신비의 영역이다.

죽음 이후의 세계도 마찬가지로 알 수 없고, 도달할 수 없는 세계라 말할 수 있겠다.

죽음은 인간에게 주어진 공통 조건이지만 죽음을 맞이하는 태도는 종교에 따라 다르다.

동양에서 죽음은 삶과 단절된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삶으로 받아들였다.

우리 선조들은 죽음을 회피의 대상이 아니라 준비하고 맞이하는 대상으로 여겼다.

그래서 죽음을 앞둔 사람이나 가족들은 미리 묏자리를 봐 두고 윤달이면 수의를 준비한다.

서양에서는 깜짝 놀랄 일이지만 우리는 자손으로 마땅히 해야 할 도리라고 여긴다.

그리고 가족들의 돌봄을 받지 못하는 영혼들도 있다. 제사를 못 받아 배고픈 조상이 있다거나 묏자리가 잘못되었을 때, 또는 젊은 나이에 죽거나 객사했거나 억을 하게 죽었거나 전쟁에서 이름 없이 죽어간 영혼들은 자신을 기억할 산 사람이 없기 때문에 돌아갈 곳을 알지 못해 구천을 떠돌게 된다.

이처럼 이승을 떠나고도 선뜻 생을 내려놓지 못하고 생과 사의 중간 어디에선가 떠도는 이름 없는 영혼을 위하여 불교에서는 예로부터 아귀들에게 감로를 베푸는 의식, 다시 말해 물과 뭍에서 외롭게 죽어간 영혼들을 천도하는 수륙재를 열어 그들을 다음 생으로 안전하고 편안하게 인도했다.

여기까지 은사스님께서 불교에서 말하는 사후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다.


스님의 말씀을 현실의 세계에서 비추어보면, 종교적인 관점에서 이해가 가능한 것이 극락이고 천국이다.

극락은 있고, 극락을 실제로 볼 수도 있다고 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에서나, 세상에 늘 있지만 우리가 못 보고, 못 찾고, 깨닫지 못할 뿐이다.

불교에서는 극락이고, 기독교에서는 천국이라고 한다.

다만, 자신이 믿는 종교에 따라서 해석의 차이가 있고 다를 뿐이다.

인류사를 통틀어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따라서 은사 스님 말씀은 극락과 천국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삶의 빛나는 순간과 죽음에 대비되었을 때를 강조하는 것이다.

또한, 삶과 죽음은 서로 짝을 이루고 있는 것이 현실의 실상이라고 한다.

더 깊이 들여다보면, 산다는 것은 매 순간 죽어가는 것이라 생각해야 된다고 했다.

어느 날 불현듯 죽음이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늘 죽음과 함께 있는 것이 삶의 진실이다.

사후세계가 어떠한지 아무것도 모르는 인간의 상상력이 종교로 발전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어쨌든 종교에서 말하는 극락과 천국은 우리가 만들어 가는 것이지, 사실여부를 따지는 것은 어리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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