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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공 May 28. 2023

생사의 언덕

나는 누구일까

"만나도 하필이면, 왜 이런 곳에서 만나자고 했어?"

"어때서~ 공기 좋고 탁 트여 정말 좋구먼...."

"공동묘지 가까운 곳이 좋아?"

"언젠가 나나 너나 꼭 와야 할 것이라면, 같이 오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 이곳을 찾은 이유가 뭐야?"

"아니야! 자세히 보라고, 언덕의 동쪽은 잠들어 있는 자의 평화이고, 서쪽은 산자의 고행 속 전쟁이로다."

정공은 절친과 함께 영락공원 입구에서 티격태격 말씨름을 하고 있었다.

"친구야! 인생은 어차피 시한부 인생이 아니겠어, 길고 짧은 차이만 있을 뿐이지."

"그 말하자고, 오늘 여기서 만나자고 한 거야?"

"하하하! 아니야, 네가 학교 근무 설 때 주변을 탐색한 결과 가장 가깝고 좋은 곳이라 생각한 곳이야."

".........."

"그야말로 공기 좋고 풍경 좋은 곳에 소풍 왔다고 생각해 봐."

"소풍? 소풍 온 곳이 공동묘지 근처라니....."

"그래, 오늘 모처럼 소풍 온 거야!"

"소풍 끝나면 하늘나라로 갈 생각도 해야 되겠네, 아니야?"

"이제야 내 생각을 헤아리네."

"그래! 친구의 뜻이 죽음이라면, 죽음이 다가오더라도 초조하거나 슬퍼하지 말라는 것 같은데....."

"죽음 앞에서도 웃을 수 있고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인생이 멋진 게 아니겠어?"

"그렇지! 늘 감사하고 사랑하면서, 기도해야겠지."

"부처님 오신 날에 적절한 말이군."

"내일 죽을 것처럼 주변을 정리하고, 오늘은 소풍 가며 열심히 사는 거야."

부처님 오신 날, 정공과 절친은 영락공원을 지나 큰 불상이 있는 절을 찾아가는 길이었다.

그 길은 영락공원과 스포츠 파크를 경유하여 북쪽 하늘을 향해 쭉 뻗은 도로로, 마치 하늘로 가는 길 같았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어디서 요기하고 가자!"

"거의 다 왔어, 절에서 법회 듣고 공양하면 돼."

"알았어! 빨리 가자고...."

정공은 친구를 만날 때부터 친구의 표정이 어둡고 수심이 가득하게 보여 조심스럽게 물었다.

"가화만사성이라고, 요즘 집안에 무탈하지? 딸 건강도 괜찮아졌어?"

"아니, 수술 후 오히려 기억 상실증으로 더 고생하고 있어....."

"큰일이네~ 좋아져야 할 텐데, 뇌수술이 잘되었다고 했는데 그렇게 되었구나."

친구는 절에 가면 부처님께 참회의 기도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요즘 부쩍 정공을 자주 만나는 이유가 부처를 알고 싶었고, 자비심도 배우고 싶었다고 했다.

친구는 회환이 깊은 기억을 되살렸다.

지나간 자신의 과거사가 늘 자신을 꼼짝 못 하게 밧줄로 꽁꽁 묶었다.

아내가 찢어지는 듯한 고성과 함께, 매섭게 노려보는 눈빛이 아직도 생생하다.

"허우대가 멀쩡하다고~ 그게 자랑스러워 여자들을 꼬셨어? 연애할 때 오로지 나만 사랑한다면서, 딴 여자들에게도 그렇게 농락했어? 성중독자야? 그렇지 않고선 아내와 자식을 둔 가장이 어떻게, 그렇게 태연히 바람을 피울 수 있지, 인간이 아니야! 짐승이야! 인간탈을 쓴 완전 잡종이야!"

그리고 아내는 분에 못 이겨 나의 와이셔츠를 찢고 울고불고 난리였다.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웠던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아내는 그 뒤로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리다 차츰차츰 병이 깊어갔고 끝내는 어린아이들을 놔두고 하늘나라로 가버렸다. 아이들은 제엄마를 잃고는 슬픔 속에 말없는 아이로 자라났다.

아버지에 대한 증오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아이들은 정서적 불안정속에 커갔다.

지금은 두 아이 결혼을 다 시켰지만, 장녀가 뇌수술을 받고 난 후에도 완쾌되지 않고 기억상실증을 앓고 있다.

무엇보다도 불행이 대물림하는 것 같아 가슴이 더욱 아프다.

시집간 장녀가 아이가 둘인데, 이제 초등 1학년 손녀와 한창 재롱부리는 세 살배기 손자를 두고 있었다.

기억상실증에 시달리는 엄마를 두고 성장해 나가야 하는 것을 보니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이 모두가 어릴 적 엄청난 정신적 충격 속에 얻은 후유증으로 얻은 병이라 생각이 되었다.

자신으로 인해 벌어진 결과에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이런 불행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라도 지금 나 자신이 정신을 차려야 했다.

그래서 지은 죄에 대한 참회를 부처님께 하고 사죄를 하며 죄를 씻을 수 있게 도움을 받고 싶었다.

오로지 어떻게 하면 상처와 지은 죄를 말끔히 씻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금 딸이 아프고 기억상실증이 심해서 딸의 건강회복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기적이라도 일어나길 기도하며 부처님에게 소원을 빌고 또 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친구야! 다 왔어."

"응, 큰 불상이 보이네."

"그래, 저 큰 불상이 있는 곳이야."

트인 도로 끝에 도달하니, 큰 불상이 한눈에 들어왔다. 절에 들어가려는 사람들로 많이 붐볐다.

정공은 친구와 같이 절 안으로 들어섰다. 법당에는 주지 스님이 법회를 주관하고 있었다.

한참 동안 설법을 듣고 나와, 식당에 가서 공양까지 마쳤다.

절에서 나오며 법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법문을 설하신 내용이 핵심이었다.

법문의 요지는 경문의 제목을 꿰뚫어 해석한 내용으로, 다음과 같이 설하였다

"부처님께서 실상의 미묘한 법을 기묘하게 연꽃에 비유하셨습니다. 안으로는 바로 일심을 가리키고 밖으로는 갖추어 꿰뚫으니 모든 경계입니다. 꽃이 피면서 열매가 맺고 오물에 있으면서도 항상 청정함에 비견하여 견준 것이니 연꽃이 실상이고~ ~ 바로 조잡한 것에서 미묘함을 현시하는 것은 연꽃이 오염된 물에 있지만 청정한 것이 삼승을 회합하여 일승에 귀의하는 것과 같으며, 연꽃은 피면서 열매가 맺어지는 것처럼 진리와 비유가 모두 드러나 이름과 결실이 함께 드러나는 까닭으로 묘법연화라고 이름하였습니다. 대개 이법을 증득하는 것은 반드시 본래 지혜를 본체로 하고 미묘한 행위를 효용으로 하고 지혜에 비유하는 것은 연이고 수행을 비유하는 것은 꽃이며, 지혜와 수행 모두가 온전하여야 그 미묘함을 다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경문에서 하나의 광명이 동쪽을 비추자 지혜와 경계가 온전히 밝아지며, 마침내 네 가지 법이 성취되고 수행 관문이 모두 갖추어진다고 했습니다."

"친구야! 주지 스님께서 말씀하신, 동쪽에서 지혜와 경계가 온전히 밝아진다는 뜻이 뭐야?"

"응~ 부처님 법문 중, 묘법연화경에 나오는 실상의 미묘한 법의 이치를 다시 강조한 내용이야."

정공은 오늘의 법문을 다시 되새기며, 나름대로 해석하여 친구에게 설명해 주었다.

"친구야~ 지금 우리가 지금 생사의 언덕에 서있지만, 살아도 산 것이 아니고 죽어도 죽는다는 것이 아니야! 다시 말하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분명히 오늘 설법이 전해주는 메시지였다고 나는 생각을 하고 있어, 동쪽에서 받은 금빛 찬란한 보물을 가지고 이 언덕을 넘어서 세상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한다는 말이지, 특히 세상 고통, 탐욕에 못 벗어나는 중생들에게 꼭 나누어 주고 싶어."

정공은 동쪽을 절로 표현하였고, 언덕 넘어서 세상사람들을 친구같이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으로 묘사했다.

그리고 산하대지와 명암공색에 미치도록 하며, 세상에 성행하는 것으로 이 경문을 외우고 깊이 연구함을 수행하여야 한다고 뜻이라고 전했다.

정공과 친구는 생사의 언덕을 넘어왔다.

이제는 각자 삶의 터전으로 돌아가야 했다.

친구는 뭔가 아쉬운 듯, 작별인사를 머뭇거리고 있었다.

"왜? 할 말이 있어?"

"커피 한 잔 하고 갈까?"

"그러자~ 뭐, 그리 바쁘진 않으니깐...."

평소 찾는 도서관과 가까운 커피점에 들어가 앉자, 피곤한 몸이 무겁게 느껴졌다.

"친구야! 참회하고 소원을 빌면 기적이 일어날까?"

"그래~ 꾸준히 빌고 또 빌면 기적이 일어나지, 비는데 무쇠도 녹는다고 했잖아."

"이제는 자주 절에 가자, 괜찮겠지?"

"절에 자주 가는 것도 좋지만, 집에서도 매일같이 기도하며 발원을 하도록 해."

"집에서 어떻게?"

"내가 하는 요령을 가르쳐 줄게, 이게 발원을 하는 기도문이야."

정공은 친구에게 발원 기도문을 직접 외우며 적어 주었다.

"영원한 생명이요 한량없는 광명이시며 자비하신 부처님, 저희는 더없이 맑고 선한 부처님의 아들과 딸이옵기에 희망에 가득 찬 가슴을 열고 지성으로 발원하 나옵나이다.

거룩하신 부처님, 어둠 속에 방황할 때 부처님의 눈빛을 보게 하시고 시련에 헤맬 때 따스한 손길을 잡게 하시며, 나태와 좌절에 허덕일 때 부처님의 고행을 보이시어 용기를 배우게 하소서.

자비하신 부처님, 신 구의 삼업으로 부질없이 지은 죄를 모두 참회하옵나니, 탐 진 치 삼독으로 다시 또 업을 짓게 하지 마옵시고, 부처님의 지혜와 용기를 충만케 하시어, 따뜻한 자비의 품 안에서 영겁토록 떠나지 않게 지켜 주옵소서.

거룩하신 부처님, 원하옵나니, 우리 가정의 평화와 행복을 지켜 주시고 가족의 건강을 보호하소서.

그리고 우리 딸의 병이 하루속히 나아 정상적인 일상으로 돌아가게 해 주옵소서, 감응하옵소서, 이러한 모든 일이 빠짐없이 성취하게 하여 주시고, 그 기쁨을 함께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저희가 진정 땀 흘리는 노고를 통하여 자신을 극복하고, 청정한 법륜을 몰아 형제들의 가슴마다 보리심을 가꾸어, 이 땅에 부처님의 나라 성취하는 참다운 불자가 되게 하소서."

정공은 아울러 친구를 위하여, 친구가 지은 업이 소멸되도록 부처님께 빌고 또 빌어주겠다고 말했다.

친구와 헤어지고 난 후, 집으로 오면서 친구에게 불타의 뜻을 전했지만 제대로 전달되었는지가 궁금했고

무엇보다도 사람들 가치관과 삶의 기준이 각자가 다르기에 자신이 너무 나서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특히, 친구는 지금 딸아이로 인하여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기에 불타의 뜻을 이해할지도 미지수다.

차라리 딸아이의 장래에 관한 희망적인 메시지가 더 필요할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든 친구의 삶과 딸아이 건강도 잘 되기를 기원하며 부처님께 빌고 싶었다.

그리고 진작 자신의 위치는 어디인가 새삼스럽게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이와 관련하여 고승의 말씀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부처가 이 세상에 온 이유를 알고 부처님 공부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도 이 세상에 온 이유를 알아야 한다.

성인군자의 말은 공허하다.

자신을 깨닫는 것이 실체고 진실이다.

나는 누구인가 거듭거듭 물어야 한다.

건성으로 묻지 말고 자신의 속 얼굴이 드러날 때까지

묻고 물어야 한다. 목소리 속의 목소리로

귓속에 귀에 대고 간절하게 물어라. 해답은 그 물음 속에 있다.

항상 자신의 삶이 어디로 가는가

물을 수 있어야 한다.

늙음도 죽음도 단지 변화일 뿐, 알고 나면 두려울 없다.

그러므로 집착을 하지 말고 머무르지 말라.

거죽은 언젠가 늙고 허물어진다.

중심은 무엇인가 영혼이다.

정신이다, 영혼에는 나이가 없다.

영혼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그런 빛이다.

그래서 중심에서 살아야 한다.

중심에서 사는 사람은 어떤 세월 속에서도

시들거나 허물어지지 않는다.

내 몸은 가뭄으로 잦아드는 논물

죽음은 과일 속에 들어 있는

씨앗처럼 삶과 함께 살아간다.

죽음은 늘 상황의 한계를 연계,

생에 대한 깊은 존경과 성실성이다.

오늘 하루 순간순간 나답게 살고 있는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자기 자신을 쉬지 않고 만들어가라.

산다는 것은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창조하는 일,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이 자신을 만들어 간다.

이 창조의 노력이 멎을 때

나무든 사람이든

늙음과 질병과 죽음이 온다."


정공은 고승의 말씀을 한 순간 떠올린 뒤, 깊은 숨을 내 쉬고는 5월의 푸른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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