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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공 Apr 22. 2023

도 닦는 길 고양이

동물도 생각이 있다.

"안돼! 우리 딸도 검은 고양이를 키우고 있는데, 새끼까지 받아주면 말 그대로 전쟁상황이야."

"그럼, 어쩌지....."

일동은 학교에 경비근무하는 친구에게서 새끼 고양이 입양 권유를 받았다.

학교 건물밖에서 길고양이가 새끼를 낳은 것을 입양할 사람을 찾다가 일동에게 말한 것이다.

이 엄동설한에 출산한 것부터 신기한 일이었고 추위 속에 살아남은 것도 기특했다.

어쨌든 학교 남향 따뜻한 구석에 터를 잡고 새끼 3마리가 잘 크고 있었다.

문제는 입양인데 길고양이 새끼들이라, 모두들 꺼리는 것이었다.

입양공고문을 붙여 놨다고 친구가 말하며, 일동에게도 도와달라고 당부를 하는 것이다.

일동도 알았다고 말하며 입양할 곳을 수소문을 내었다.

새끼 고양이 입양공고 이야기를 듣고, 일동은 옛날 어릴 때 반려동물을 키웠던 생각이 났다.


국민(초등) 학교 다닐 때, 방과 후 예쁜 병아리 5마리를 사서 키웠었다.

쥐가 물어가고, 병들어 죽고, 5마리 중 한 마리만 살아남아 수탉으로 성장했다.

온 동네를 군림하고 가축에서 가장 겁나는 위협적인 수탉으로 커왔었다.

꼬꼬는 일동이 명실상부한 골목대장 노릇에 한몫을 단단히 했다.

일동은 거친 싸움닭으로 변해가는 것을 흐뭇하게 지켜보며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5남매 막내로 항상 부모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라나 소심해서 그런지, 친구들은 별로 없었다.

그러다 보니 오로지 학교에서 돌아오면 꼬꼬와 노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밖에 나가면 어깨를 으스대며 천하장군 나가신다고 기고만장까지 했다.

그만큼 꼬꼬는 일동에게 유일한 친구이자, 절대자였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학교 다녀와서 예전처럼 꼬꼬를 부르며 찾았다.

꼬꼬가 반색을 하며 달려들기를 기다렸지만, 왠지 꼬꼬는 보이질 않고 마루위에 손님이 앉아 있었다.

그 손님들은 큰 매제였고, 고종사촌 형님이었다.

마루에 앉아 술자리를 즐기며 웃고 있었지만, 뭔가 직감적으로 이상하고 나쁜 일이 일어난 것 같았다.

곧이어 어머니가 안주상을 차려 오는데, 닭 볶음탕 같은 것을 가져오는 것이다.

그 순간 우리 꼬꼬가 저 안주상에 있는 닭이 아닐까,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어머님이 아무리 집안에 안주거리가 없다 하더라도 설마 막내아들의 친구를.....

특히 아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꼬꼬를 무참히 죽였을 것이라는 게 상상이 가질 않았다.

그러나 우려는 곧 현실이 되었다. 어머님이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위로를 했었다.

그날 그 순간은 영원히 잊을 수가 없었다.

어머니를 원망하지는 않았지만, 큰 매제와 사촌형님은 그 순간 이후부터 미워하게 되었다.

지나온 얘기지만 어린 마음에도 동물에 대한 애정이 엄청났고, 가슴속 상처로 남을 줄 몰랐다.

지금 새끼 고양이 입양을 대하면서 느낀 점이 그때와 별로 다를 바 없었다.


입양 공고를 보고 입양을 하겠다고 온 사람들이 3파전이다.

이 학교 학생인 6학년 4반 박모 어린이, 학교 주위 건물  3층집 욕쟁이 할머니, 이웃 옥련 보살 등이었다.

그런데 길고양이가 새끼를 낳았다는 말을 듣고 모두들 생각이 달라졌다.

학교에서 키우는 고양이가 새끼를 낳았다면 몰라도 길고양이 새끼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서도 옥련 보살이 가엾게 생각해서인지, 새끼 한 마리를 선택하여 데리고 갔다. 

친구는 남은 2마리 새끼를 어미와 함께 보살피며 입양을 기약 없이 기다려야만 했다.

그러는 동안  새끼 2마리는 제법 어미만큼 쑥쑥 커갔다.

일동도 친구가 근무하는 학교에 고양이 사료를 수시로 사 왔다.

그리고 입양이 안 되는 이유도 설명해 주었다.

"뉴스를 듣고 잘 알겠지만,  요즘 반려동물로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어."

"그렇지만, 새끼가 너무 귀여워서...."

"특히, 길고양이는 경계심이 많고 독립심이 강한 동물이라 입양이 쉽지 않지." 

"어쨌든 키우는 대로 키워볼 거야,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그때 알아서 하고....."

"일단, 냉정하게 먹이를 주지 말고 계속 주시해 보라고~"

"알았어! 내가 알아서 할게."

"그런데 새끼들도 어미만큼 크서, 이제 제 영역으로 갈 거야."

"그렇다면 다행이고....."

"새끼들 이름이 뭐야?"

"응~ 솔이와 장미야, 어미는 알록이고."

"왜, 솔이야?"

"솔방울인데, 줄여서 솔이야!"

"하하하! 솔방울, 웬 솔방울?"

"이 학교에 소나무가 많아, 소나무처럼 씩씩하고 푸르게 자라나라는......"

"그래, 잘 키워봐~ 심심하지는 않겠네." 


드디어 우려했던 민원이 들어왔다.

학교 운동장에 고양이 배설물로 인하여 악취가 난다며, 새벽에 운동하는 사람들이 난리다.

그래서 친구는 길 고양이들에게  일체 사료를 꺼내 주지 않았다.

일동에게 들었던 말처럼 먹이 중단을 하면 사라질 것으로 생각하고 결심했다.

주위에서 민원이 끊이질 않을 뿐 아니라, 교장선생님에게 심려를 끼칠 수 없기에 냉정하게 먹이를 중단했다.

다른 고양이들은 배가 고픈 것을 참을 수 없어, 어디론가 흩어져 가버렸다.

솔이만 현관 앞에서 3일째 단식 고행을 하고 있었다. 솔이는 친구와 장기전에 돌입했다.

친구는 그런 솔 이를 보고 마음이 아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친구는 친구대로 사료는 있지만, 절대 내어주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친구는 수시로 경비일 때문에 현관문을 열고 닫으며 들락거렸는데, 솔이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친구의 생각은 설마 배가 고프면 어디론가 가겠지 하고 무시해 버렸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솔이가 친구가 하는 기도를 따라 하는 것이었다.

친구는 새벽에 일어나면 현관에 나와, 남쪽하늘을 향해 두 손 모아 기도하며 고개를 숙이며 절을 했다.

오늘도 살아있는 이 기적과 건강하고 행복함에 감사의 기도를 천지신명께 빌고 발원을 하는 것이다.

일동과 함께 절에 다녀오면서 기도하는 법을 배워 매일같이 해오던 터였다.

친구는 감탄과 경이로움 속에 자연히 마음이 녹아내렸다. 그리고 사료를 꺼내 주며 말했다.

"미안하다, 솔아! 너의 불심이 나를 감동시켰구나! 이제는 누가 뭐래도 굶기는 죄를 짓지 않겠다."

그렇게 말을 하고 돌아서 오는데, 보시공양을 다시 한다는 말을 알았는지 다시 친구에게 절을 하는 것이다.

친구는 이 이야기를 급히, 일동에게 전했다. 일동도 놀랍다고 말했다.

"친구야! 네가 도를 닦고 있다 보니, 고양이도 도 닦는 것을 배웠구나."

"그래? 하하하! 솔이가 도가 텄네."

"친구야! 솔이가 도 닦으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 것 같아?"

"글쎄, 아마도 사람들이 좋아하기를 바라며 기도하겠지...."

"천만에! 나는 그게 아니라고 생각해."

"그럼, 무슨 생각을 할 것 같아?"

"어리석은 개처럼 되지 않게 해달라고 빌고 있는 것 같아."

"개는 갑자기 왜?"

"무조건 사람 좋아하다, 복날에 개 패듯이 두드려 맞고 주인에게 잡혀먹는 신세가 되지 않도록......"

"맞네! 사람들이 문제야, 유기견이든 유기묘든 그렇게 만드는 사람이......"


"스님! 동물에게도 불심이 있습니까?"

"그래요, 모든 동물에게 불심이 다 있습니다."

일동은 친구가 근무하는 학교에서 있었든 길고양이의 이야기를 스님에게 말했다.

동물도 불심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모든 동물에게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거사님! '일체의 중생은 모두 불성을 지닌다.'라고, 불(佛)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일체의 중생이라면, 살아있는 모든 생물을 말하는 것이죠?"

"그렇습니다,  '살생을 하지 말라.'는 계율이 그래서 첫 번째로 나오죠."

"불타의 가르침이 일체의 중생을 위한 것이라, 더욱 그러하군요."

"그렇죠, 모든 동물을 사랑하고 보호해야 하는 것이 불심이죠."

"결과적으로 동물을 해하거나 괴롭히는 것은 큰 죄를 짓는 것이군요."

스님은 이윽고 부처님 말씀을 시낭송하듯이, 게송하였다.

"사람이건 동물이건 모두 생물이고, 땅에서 태어나 땅으로 돌아간다.

우주의 모든 것은 완벽하게 재활용된다. 물질만이 아니라 정신도 그렇다.

우리 모두는 윤화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가 죽고 나면, 우리 몸속에 있던

원자들은 모두 흩어져서 실질적으로 영원히 존재한다.

그리고 모든 중생들은 갖가지 탐욕이 있어서 깊이 집착한다는 것을 알고 

그 본성에 따라 갖가지 인연과 비유한 언사와 방편의 능력으로 설하노라.

개가 짖고 소가 우는 소리와 다를 바 없는 것이 번뇌와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중생이다.

보시행으로 큰 복을 받아 이고 득락을 하라. 보시는 왜 하는가를 알아야 한다.

당연히 복을 받기 위해서다, 그러면 이 복은 무엇을 하는가, 행복하기 위함인 것이다.

그러므로 복이란 보시에 인연으로 받게 되는 것으로 보시야 말로 최고의 복덕이다."


일동은 스님과 이야기를 마치고 나오면서, 스님의 게송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중생이라고 하는 것이 탐욕이 쉬지 않음을 뜻하는 것이기에 늘 고통이 따른다.

고뇌, 어리석음 이 모두가 잠시도 쉬지 못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느꼈다.

그러므로 보시를 행함으로써 위안과 만족감을 얻는다고 본다.

그리고 최근에 반려동물의 애환에 대해서도 깊이 고심했다.

개도 키우다 버리면 유기견이 되고 들개가 되듯이, 고양이도 마찬가지다.

좋을 때는 사람보다 더 잘해주면서 버릴 때는 헌신짝처럼 버리는 몰지각한 일부 사람들이 있다.

그게 사회문제가 되고 결국 반려동물의 반려가 제대로 되지 않는 물건인 양 취급되고 있다.

반려동물의 이해가 부족하고 오로지 자신을 위해서 반려라면, 반려동물의 삶을 침해하는 것이다.

인간들은 삶의 터전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야생동물 삶의 터전을 빼앗고 동물은 갈 곳을 잃어버렸다. 

그러다 보니 야생동물을 대신하여 반려동물이 인간세상 속으로 들어왔다.

반려동물도 사람과 함께 생활하며, 사람 하는 것을 유심히 보며 따라 하는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해서 사람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구분한다는 것이다.

특히 개들은 거의 사람을 맹종한다. 그런데 제일 많이 버리는 반려동물이 개다.

이유는 많겠지만, 어떤 경우라도 유기해서는 안된다. 악행이고 불행이다.

우리가 동물의 마음을 알고 어떻게 대하여야 될지 잘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이 세상은 사람의 탐욕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이와 관련하여 고승의 말씀이 생각난다.

"현대인의 불행은 모자람이 아니라 오히려 넘침에 있다.

모자람이 채워지면 고마움과 만족함을 알지만 넘침에는 고마움과 만족이 따르지 않는다.

우리가 불행한 것은 가진 것이 적어서가 아니라 따뜻한 가슴을 잃어 가기 때문이다.

따뜻한 가슴을 잃지 않으려면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동물이나 식물 등 살아 있는 생물과도 교감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사실에 고마워할 줄 알아야 한다.

이 세상에 영원한 존재는 그 누구에게도, 그 어디에도 없다.

모두가 한때일 뿐이다.

살아 있을 때 다른 존재들과 따뜻한 가슴을 나누어야 한다.

살아 있는 생명을 괴롭히거나 살해하는 것은 악덕 중에서도 가장 큰 악덕이다.

언제 어디서나 이 우주에 가득 차 있는 진리의 혼을 보려면 가장 하잘것없는 미물일지라도

내 몸처럼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세상 우주천지, 삼라만상 모두가 자연 속이다. 사람도 동물도 자연의 일부다.

사람과 동물이 공생공존하는 세상이야말로 가장 자연스럽고 바람직한 세상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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