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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공 Apr 01. 2023

스승을 찾아서

사람이 좋다

"네~이~놈! 바른대로 말해라!"

"제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이곳으로 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직도 네놈이 죄를 모르고 있단 말이냐?"

"죄라면 사람을 좋아한 죄밖에 없습니다."

"으하하! 사람을 좋아한 죄? 저놈이 뜨거운 맛을 봐야 할 것이다, 여봐라! 저놈을 불구덩이에 처넣어라!"

"아이고~ 대왕님!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그래, 너 죄를 이제는 알고 있느냐?"

"네~에! 살려만 주십시오, 살려만 주신다면....."

순간, 사천왕 입속에서 큰 구렁이가 나와 정공을 콱 물었다.

"으악! 으~으~윽....."

"여보! 왜 그래요? 어디 한 번 일어나 봐요."

비명을 지르며 허공을 향해 헛손질하는 정공을, 아내가 깨웠다.

"무슨 꿈을 꾸었길래 헛소리하고 그래, 어머! 땀에 러닝이 흠뻑 젖었네."

"후~우! 정말 무서운 꿈이었어...."

"자~아, 물 한 컵 마셔요."

정공은 아내가 건네는 물 한 컵을 단숨에 꿀꺽꿀꺽 마셨다.

"요즘 당신 너무 무리하는 게 아냐?"

"백수가 무리는 무슨 무리한다고...."

"백수니깐, 취직자리 알아본다고 힘들지."

"아냐, 그냥 무서운 꿈을 꾼 것뿐이야."

정공은 일어나 서재로 향했다.

"금방 무리하지 말라고 했잖아~ 그냥, 자라고!"

"잠이 다 깨어 버렸어, 당신이나 다시 자도록 해."

"알았어요, 서재에서 너무 오래 일하지 말고 잠 오면 그냥 자요. "



정공은 최근에 선배를 만나 취업자리를 제의받았었다.

같은 직장에 다녔던 선배는 정공보다 3년 먼저 정년퇴직을 했는데, 또 새로운 직장을 다니고 있었다.

그 선배가 다니는 직장에 일자리가 났다는 것이었다.

"선배가 일자리 추천해 주었는데, 내가 고맙지만 사양한다고 했어."

"당~신! 미쳤어? 이 어려운 시국에 굴러 들어온 복덩어리를 발로 차?"

"아니, 지금 안 벌어도 먹고 살만 하잖아?"

"먹고사는 소리 하고 있네! 먹는 것만 가지고 살 수는 없어!"

"그럼 잘못됐다는 거야?"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지, 내가 당신하고 산지가 40년 가까이 되었지만, 순간순간 이혼하려고 몇 번이나 마음을 먹었는지 알아? 그래도 참고 이제까지 온 거야."

"..........."

"쥐꼬리 봉급으로 어떻게 다섯 식구를 먹여 살았겠어?"

"..........."

"그래도 가계수표, 카드 등이 있어 미리 선불해 쓰고 차차 갚고 나니, 여태까지 간신히 살아온 거야!"

"..........."

"도대체 마누라를 그렇게 고생시키고도 모자라, 돈문제에 대해 저리 먹통이니 내가 답답해 죽지!"

"..........."

"울화통이 터져 죽겠어! 어찌 화병이 안 나겠어?"

"..........."

"다시 선배한테 전화해! 순간적으로 착오였다고 말하고, 다시 한다고 해!"

"알았어!"

정공은 선배에게 다시 취직자리를 부탁했다.

"그 선배가 말하는데, 실제로 신앙의 힘을 믿고 경험을 했대."

"어떻게?"

"지극한 정성과 기도를 통하여 원을 했으니, 그 원을 들어줬다는 거야."

"누가?"

"누구는~ 누구겠어, 부처님이지."

"실제로 영험이라든가, 기적이라는 게 있다는 걸 알았다는 거야?"

"그럼! 그 선배는 내게도 불교 입문을 권했고, 그 선배 때문에 같이 불도를 닦고 있잖아."

"지금은 뭘 하고 계시는데?"

"지킴이 봉사활동을 하며 불교 포교사 일도 하고 도서관과 사찰해설가 일도 병행하지."

"그건 그렇고, 취직자리는 알아봤어?"

"응, 조만간에 해주겠대."

"다행이네, 다시는 필요 없다는 그따위 말을 하면 안 돼!"

"알았어."

"무슨 일을 맡겼는데?"

"지역사회 봉사 활동인데 보수는 거의 없고 차비나 점심값 정도 나오지, 아마......"

"돈도 안 되는 일은 뭐라고 한다고 했어!"

"당신이 하라고 했잖아."

"그래도 그렇지, 돈을 얼마나 주는가 물어봤어야지!"

"아니, 안 한다고 해도 문제고, 한다고 해도 문제고......"

"어이구! 그저 사람만 좋아가지고, 자기 몫도 못 챙기고 할 말도 못 해?"

정공은 도무지 아내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40여 년 가까이 공직생활을 하면서 봉급은 적었지만 꼬박꼬박 성실히 다녀왔기에, 오늘날 이만큼이라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아내가 돈이 적다고 저렇게 난리를 쳐니 다녀야 할지, 말아야 할지 난감했다.

그리고 아내가 말하는 '사람만 좋아 가지고~ 사람을 좋아한다'는 그 말에 동감했다.

아내의 말은 전혀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아내의 말에 의하면, 사람 착하고 참는 것이 미덕이란 시절은 지났다는 것이다.

이제는 안돼! 아니란 거절을 명확히 해야, 요즘 시대를 잘 사는 방편이라고 한다.

그저 사람만 좋아 가지고, 상대가 이용하려는 것도 모르고 거절을 못하니, 스트레스를 자주 받는다고 했다.

선배든, 친구든 다 자기네들이 이용하려 했던 그때만 사이가 좋았을 뿐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인간관계를 무 자르듯 자르지 말고 적당히 걸쳐놓으라고 한다.

인간관계는 불을 대하듯 적당하게, 가까이하면 데고 멀면 추워진다고 했다.

사람은 자산이고 사람관리도 잘하여야겠지만, 그보다 우선 자기 관리가 더 중요하다고 했다.

제발 자신을 잘 관리하라고 하는 아내의 당부가 있었다.

요즘은 아내말처럼 실리와 명분을 따지다 보니, 평소 사귀었던 사람들과 소원해졌다.

어쩌면 피는 못 속인다고 생각이 들었다.

어머님과 함께 한 시간과 기억이 떠올랐다.


어머님도 생전에 사람을 좋아해서 집안에 사람들이 구름 떼처럼 몰려들었다.

어떻게 보면  어머님 인생은 모든 사람을 위한 인생이었다고 할 수가 있다.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해 가며 가족은 물론 친인척, 주변 사람들까지 헌신적으로 도움을 주었다.

그렇게 보며 자란 정공으로서도 자연히 어머님의 인생관을 그대로 답습하게 되었다.

어머님은 어려울 때마다 불타의 힘을 굳건히 믿었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열심히 불도의 길을 50년 가까이 다니어 셨다.

정공이 지금 불도의 길을 가는 것은 어떻게 보면 어머님의 영향이 크다고 볼 수 있겠다.

어머님에게 도움도 많이 받은 사람도 많고, 이용한 사람도 많았다.

정공 역시 사람 좋아, 사람들에게 다가갔고 또한, 그 사람들에게도 사기도 많이 당했다.

이러한 여파로 스트레스도 엄청 받았지만, 여전히 사람을 좋아하는 버릇은 좀처럼 고쳐지질 않았다.

다만 요즘은 아내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반 강제적인 결별을 하는 것이다.

어쨌거나 이별을 한다고 해서 서운하거나 섭섭해하는 마음은 전혀 없다.

오히려 속이 시원했다.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도가 명확히 섰다.

사람들이 나에게 원망이나 원성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비난을 하던, 뭐라고 하더라도 나의 길을 거침없이 갈 것이다.

정공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은근히 불타의 지혜를 받고 싶었다.

그래서 정공은 은사 스님을 찾았다.

오늘은 어떻게 대해 주실까? 의문을 품고 조심스레 "스님!" 하고 불렀다.

이내 문이 열리더니, 희색이 만면한 큰 스님께서 자리에서 일어나 반갑게 맞아주었다.

참으로 감사했다. 세상사 이야기, 시속 이야기 한참하다가, 그간에 앓았던 심정을 토로했다.

"정공 거사님은 절에는 무엇 때문에 오시는 게요? 중보고 오는 게요? 공양받으러 오는 게요?

부처님께 절하러 오시는 게요?"

느닷없이 큰 스님이 그렇게 묻자, 정공은 할 말을 잃었다.

"불법에 의지 해야지 사람에 의지하지 말고, 의리에 의지 해야지 말에 의지하지 말고, 지혜에 의지 해야지

아는 것에 의지하지 말고...."

"스님! 스님 말씀을 듣고 보니 정말 깨달은 바가 큽니다. 교묘한 말이나 재주에 현혹되지 말라는 말씀 같은데......"

"하하하! 역시 정공 거사는 이제 내 말과 내 맘을 훤하게 알고 있는 것 같소!"

"부끄럽습니다."

스님은 이어서 최근에 있었던 법회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법당에 가득하게 신도들이 모였던 어느 날이었다.

신도들이라야 거의 여성이 대부분이다.

법좌에 오르신 스님이 아무 말이 없다. 10분, 20분이 지났을까, 법장을 내리치시며 벽력 같은 고함으로 "여기 모두 뭘 하러 왔소?" 한다.

모두가 법장 내려치는 소리와 스님의 사자후에 펄쩍 뛰며 놀랐다.

"여기 뭘 하러 온 거요. 집에 산 부처도 못 섬기는 주제에 무슨 복을 받겠다고 여기 모였어!"

한참 동안 말이 없다 침묵이 흐르고, 고요하고 엄숙한 분위기가 흘러간다.

"산 부처가 누구냐? 부모가 산 부처요, 남편이 산 부처요, 자식이 산 부처요, 내 가족 모두가 산 부처다. 그 산 부처 하나 옳은 공양 못하면서 흙으로 만든 이 불상에게 무슨 복을 빌겠다는 거요. 알아들었거든 빨리 집으로 돌아가시오. 그리고 산 부처를 만나보시오. 돈 못 벌고 일 잘못하고 노름이나 즐기고 술이나 퍼마시던 그 주태백이가 오늘 이 시간부터는 부처로 보일게요. 살아있는 부처라고 공대해 보시오. 틀림없이 부처로 보일 거요.

그러면 잔소리 많던 시부모도 부처가 되고, 말썽꾸러기 아들놈도 어느새 부처로 변할 것이오. 내 집 식구가 부처가 되면, 담 넘어 이웃에도 될게 아니요. 산부처 섬기고 남는 힘이 있거든 절에 복을 빌러 오시오. 내 신장을 부려서 무한한 복을 보시하겠소. 오늘은 복을 줄 시기가 아직 못되었으니 돌아들 가시오."

정공은 법회 이야기를 스님으로부터 듣고 말없이 절을 나왔다.

그리고 깨달은 바가 있어 아내를 찾았다.


아내에게 큰 절을 올렸다.

"아니? 당신, 지금 무슨 짓이야!"

"스님이 가르쳐준 대로 하는 짓이지, 무슨 짓이기는....."

"그래도 사연을 들어봐야 하지 않겠어?"

정공은 법회에 있었던 이야기를 아내에게 모두 들려줬다.

아내는 잠자코 듣고 있었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여보! 당신이 사람을 좋아하는 것도 부처님 뜻이요, 부처님 또한 사람을 좋아하는 것이라 생각해요."

"..........."

"자신의 생각이 부처님을 만들고, 모두가 자신에게서 비롯되는 것 같아요."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해."

"사람들이 당신을 좋아하는 것은 이미 당신의 본성에 불성과 함께 선이라는 게 깔려 있는 거야,

그러하기에 당신이 사람들을 잘 인도해 주어야겠지?"

정공은 아내가 문득, 문수보살이나 큰 스님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정말 은사 큰 스님이 말씀한 것처럼 아내가 부처고, 가족이 부처라는 것을 지금 내 눈앞에서 증명되었다.

그보다도 더욱 놀란 것은 오로지 돈문제와 현실적인 것만 따지던 아내가 언제 이렇게 불도에 대해서 자신 있고 당당히 말을 할 수 있다는 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어쨌든 아내가 말하는 것처럼 사람을 좋아하는 본성도 부처님 마음이요, 사람으로 인하여 스트레스받는 것도 부처의 마음으로 말끔히 씻어야 하니, 이 모두가 볼타에 한 걸음 다가가는 것이라 생각하고 제대로 지계(持戒)하고 정진(精進)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벽지불 같은 현재의 불자 자세에서 벗어나, 대승으로 가는 스님들께 심층적으로 배워보기로 했다.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은 애당초부터 자비심이 있었다는 말이다.

자비심 관련하여 아주 명료하게 가슴속으로 파고든 은사스님의 법문을 돌이켜본다.

<대방광불화엄경> 용수보살약찬게-구족우바명지사 게송을 읊고 해설하였다.



선재동자는 열네 번째 대흥성에 이르러서 명지거사를 찾아뵈었다.

높은 칠보대의 보배자리 위에 앉아서 여러 곳에서 모인 대중에게~

명지거사는 귀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에 맞추어 재물과 법을 보시하였다.



삼라만상 깨끗하여 번뇌티끌 끊어진 곳


대흥성에 명지거사 칠보대에 앉아있네


배고프고 못난이들 떼를 지어 찾아오고


진리 찾는 잘 난이도 구름처럼 몰려드니


소원 따라 근기 맞춰 큰 자비를 베푸는데


생각하는 마음대로 보배창고 열리면서


온갖 모양 보배들이 허공에서 쏟아지니


모든 사람 배부르고 따뜻하게 돌아가네.


자비로움이 지혜로움이다.

삼매가 없으면 보리심이 없다.

명품의 거문고가 있다고 하더라도

명인 연주자의 손가락을 빌려야 하고,

명품의 마음이 있다고 하더라고

명인 선지식의 가르침을 의지해야 한다.

악인이 한 사람 태어나면 동네가 시끄럽고,

성인이 한 사람 태어나면 나라가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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