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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공 Nov 07. 2023

여생(餘生)과 여정(旅程)

꽃길만 걸으세요


"뭐 하고 있어?"

"응, 자기소개서를 쓰고 있지."

"어디, 취직자리가 난 거야?"

"아니~ 그냥, 때를 기다리며 준비하고 있지."

정공은 최근 직장을 잃고 놀고 있는 친구를 만나 이야기를 건네고 있었다.

남들은 백수라고 할지는 모르겠지만, 이 친구는 직장사가 파란만장하다.

정년퇴직하고 곧장 취직되어 1년도 못되어 그만두고 또 취업하고, 그렇게 반복되기가 수년이 되었다.

한마디로 잘리기도 잦았고 곧 취직도 잘되었다. 그래서 주위에서 재주가 많은 친구라고 했다.

잘려도 통이 큰 친구라고, 별명을 '짤통이'라고 불리었다.

"친구야! 이제 쉬엄쉬엄 놀아가며 인생을 즐겨야 할 나이가 아니겠어."

"뭐라고? 아직 팔팔한데 쉬라고, 천만에....."

"이 시회가 과연 우리 같은 나이를 받아줄까?"

"별수 있어? 그냥 한번 들여대 보는 거지."

"젊은 사람들도 취업난에 엄청 힘들어하는 세상인데....."

"그래도 우리 시니어가 더 일 잘하고, 지네들이 부려먹기 수월하지 않겠어?"

"그럴까, 내가 보기에는 이 사회는 젊은 층을 원하거든.....

"젊음이 깡패지, 뭐가 특별하다고....."

"그런~과격한 말을 하면 안 돼! 특히, 나이 든 사람이....."

"맞잖아!"

"그런 부정적인 말보다, 살아있네~싱싱하네~ 이렇게 긍정적으로 말하면 듣기도 좋지."

"쳇! 젠장~ 그 젊음......"

"그 젊음이 문제가 아니라, 이 사회가  너무 빨리 가는 거지."

친구는 백수 때가 싫다고 했다, 불면증에 시달려 술도 먹고 약도 사 먹었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일자리가 생겨 출근하니, 불면증도 일거에 사라졌다고 했다.

정공은 자신도 그런 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퇴직 후 취업을 위해 노력했던 경험담도 말해 주었다.

동물보호센터에서 처음 일했던 것을 시작으로, 잠시 생각을 떠올렸다.

정공은 과거에 사람 좋아하고, 대화를 즐기는 성격과 부지런한 생활 습관으로 몸에 배여 왔다

그래서 아무도 없고  할 일이 없으면 불안, 초조, 우울까지 했다

그런데, 노년에 접어들면서 더욱 그런 것이 심화되었다.

그러하기에 퇴직을 앞둔 시점에 노후보장을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다.

반려 동물 관리사, 유통관리사, 노인관리사 등 자격증 취득을 했고 퇴직 후, 그와 관련된 직종도 알아봤다.

그러나 하나같이, 퇴직 전에 들었던 이야기하고는 전혀 딴 판이었다.

"아버님! 그냥 봉사한다고 다니시면, 차비와 점심값은 드릴게요."

정공은 기분이 씁쓰레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일단 봉사 쪽으로 가닥을 잡고 출근을 했다.

동물보호센터에는 주로 유기견과 유기묘가 대부분이었다.

출근해서 먼저 하는 일은 물 주기, 배설물 수거와 바닥 청소를 시작하는 거였다.

출근 이틀째 되던 날이었다.

진돗개 한 마리가 창살에서 난데없이 뛰쳐나와 삽살개 목을 물고 뒤흔들었다.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떼어놓으려고 빗자루로 사정없이 진돗개를 두들겼다.

그렇지만 막무가내였다. 계속 물고 놓아주질 않았다.

그래서 물동이를 가져와 한바탕 쏟아부었더니 그제야 놓아주었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더 이상 자신이 없어 그만뒀다고 했다.

"동물보호가 아니라, 동물학대였네....."

"그래, 반려동물이 아니라 맹수였어...."

"하하하! 이론과 실제가 그래서 차이가 나는 거야!"

정공은 동물보호센터 외에도 몇 군데 다녀 봤지만,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고 했다.

고용센터, 취업알선하는 곳에서는 그럴싸한 이야기만 했지, 막상 찾아보면 허탕 치기 일쑤였다.

60대는커녕, 50대에 밀려 명함도 못 내미는 형국이라고 보면 정확했다.

"그 말은 맞아, 이 사회는 60대를 확실한 노년이라고 정해 놓은 것 같아......"

"아무리 능력과 실력이 있다한들, 뭐 하겠어......."

정공과 친구는 서로 그렇게 의견일치를 보며, 쓸쓸한 사회상의 뒷맛을 느꼈다.

그리고 퇴직 때, 직장후배들이 "선배님! 부디 나가시면 꽃길만 걸으세요"라고 말했었다.

우리를 포함한 직장 동료들이 이 사회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것이다.

"이건~ 꽃길이 아니고 가시밭길이야, 그것도 보이지 않는 가시가 너무 많지........"

정공은 지나온 직장생활이 차라리 꽃길이었다고 생각했다.

"친구야~ 우리가 정말 얼마나 열심히 살아왔는지, 넌 잘 알잖아!"

"그렇지, 다들 그렇게 먹고살기 위해 열심히 살아올 수밖에 없었지."

"저 푸른 하늘을 봐~ 너무나 아름답잖아, 저 하늘도 제대로 보질 못하고......"

"그래서, 앞으로 하늘만 보고 살라는 이야기야?"

"그렇지! 그동안 못 본 하늘도 보고, 우리가 무심코 지나친 일상에서 너무 많은 것을 놓쳤어....."

"보는 건 어렵지 않지만, 늘 하늘만 보고 살 수는 없잖아."

"어차피 지금 사회는 우릴 환영하질 않잖아."

"그래서?"

"노년의 시대라 말할 만큼 우리 같은 사람들이 백수로 바글바글하잖아."

".........."

"노년도 어떻게 보면 치열한 경쟁이야, 그러니 돈벌이 생각보다 행복한 인생을 생각하자."

"행복한 인생?"

"난, 진정한 나 자신을 찾고 보게 될 거야!"

"어떤......."

"나의 과거, 나의 모습은 여태 딴 사람들 것이었어."

정공은 어제의 용사들이 다시 뭉쳤다고 생각이 들었다.

옛날에도 절친했던 친구와 함께 어떤 변화를 시도했고, 마침내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한 기억이 났다.

직장 내 마라톤 동호회에서 풀코스를 뛴 적이 있었다.

그 당시, 그 일로 인해 고정관념과 악습이 일거에 무너지고 바뀌었다.

"그동안 생활습관과 생각을 바꾸는 거야"

"어떤 식으로?"

"그냥, 조금씩 자기가 원하는 그런 생활과 생각을....."

"조금씩?"

"그래, 문제는 꾸준함이야~ 공든 탐이 무너지는 법이 없거든...."

"요즘 사회 일각을 보면, 빨리빨리 하다가 무너지는 부실시공 건물들을 교훈 삼아야겠네...."

"하다가 보면 어느 시점에 나 자신보다 남들이 먼저 변한 모습을 발견하게 될 거야."

돈벌이를 생각하면 노년은 그야말로 초라할 수밖에 없다고 말을 덧붙였다.

무엇인가 의미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공은 앞으로 생활에 대하여,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강물처럼 그냥 흘러가는 거야~ 이제 여행 간다고 생각해, 여태 경험해보지 않은 세계로......"

"............"

"얼마나 두근두근거리며 가슴이 설레겠어."

"난, 믿음이 안 가는데....."

"아니야, 자신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달렸어."

"그것도 말장난에 불과해! 그럴싸한 이론이지만......"

"그렇기에 연습과 훈련이 필요한 거야."

"그 방법이 어떤 건지 구체적으로 말해봐."

"예를 들면 반려동물을 돌본다든지, 화초를 키우거나 식물재배 등 많지~ 자연과 함께라면....."

"일종의 봉사활동이네."

"그렇지, 우리 나이에는 돈벌이가 아니고 사회 봉사 활동이 적격이야."

"그럼, 관심을 가져볼까."

"관심이 아니고 적극적인 활동이야,

푸른 하늘을 보면서 상쾌함을 느끼고 생동감을 살리는 것이 중요하지~

푸른 하늘에 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닌, 일상생활에서 즐기고 느끼는 거야."

친구는 일사천리로 말하는 정공을 묵묵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친구야 옛날에 가수가 꿈이었다고 했지?"

"그래, 허지만 이젠 그 꿈은 잊었어."

"아니~ 다시 꿈을 이루라는 말이 아니고, 꿈에서 깨어 현실을 즐기자는 거지~

전국노래자랑에 나가서 폼도 잡아보고, 같이 그 꿈을 즐기는 거야."

"그건 좋기는 한데, 만약에 일자리가 생기면 어떻게?"

"그건, 보너스지~ 정말 좋은 일이고....."

"이해가 안되네, 봉사활동이나 하라면서......"

"내 말은 일자리에 너무 집착을 하지 말라는 뜻이야!"

"..........."

"생각을 자유롭게 하라는 말이지."

"말은 그럴듯한데, 과연 일을 하지 않고 지낼 수 있을까......"

"그리고 시간이 남는다면, 여태 시간이 없다고 못했던 학문을 더 채워가는 거야."

"이 나이에 학문은 뭐 하게?"

"욕망과 욕심을 비우고 새로운 마음을 채워가는 게, 노년의 시대에 걸맞은 어른스러움이 아니겠어?"

"완전 스님처럼 수행하라는 말과 같네."

"불도에서 말하는 탐진치의 3가지 번뇌를 깨끗이 비우는 거지."

"그러면 채우는 것은 뭐야?"

"사랑과 자비심이지."

"어렵네....."

"어려울 건 없어, 그냥 어른스럽게 사는 거야."

"어른스럽게?"

"그래, 요즘 노인은 많아도 어른은 없다고 하잖아."

"그래서 학문을 채운다는 거야?"

"과거에 어떻게 보면, 우리가 허상만 보고 살아왔어....."

"허상?"

"그래, 좋아하는 건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이게 내가 꿈꾸온 것은 아니야."

"그럼?"

"진정한 내 참모습을 찾고 싶어."

"어떤 모습이 참모습이야?"

"요즘 내가 왜 세상에 나왔는지 조금은 알 것 같거든......."

".........."

"그리고 진정한 자유를 찾아야......"

"자유?"

"그래, 제 맘대로 하고 싶은 게 아닌~ 그 어느 것으로부터 구속이 없는 자유말이야......"

정공은 눈빛을 반짝이며 뭔가를 찾는 것처럼 말했다.

그리고 그 찾는 것에 대하여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우리가 예전에 무심코 지나갔던 길이었지만, 제대로 알지 못하고 지나 버렸지~

이젠 그 길을 자세히 느끼며 가는 거야~

그 길은 우리에게 앞으로 항상 새롭게 다가올 여정이지,

그 길을 가기 위해선 꼭 버려야 할 게 있지."

"뭔데?"

"번뇌와 집착에 끌리는 마음이지~

그것을 버려야만 정말 제대로 된 꽃길을 가는 거지,

원래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마음도 함께 태어났지,

그 마음은 그 사람의 본성처럼 하나같이 성장해 왔는 거야~

그런데 복잡하고 힘든 세상살이를 겪어면서 탐진치라는 욕망의 마음이 하나 더 생긴 거야."

"친구야! 그럼, 우리 같이 그 길을 가자."

"그래, 그 길을 가는 데는 동의하지만....... 각자 혼자서 가야 하는 거야."

"아니, 왜 혼자서?"

"여생이든 여정이든 혼자 가는 게, 맞을지도 몰라......"

정공은 문득 고승의 말씀이 떠올랐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무엇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미 이루어진 그 무엇인가를 드러내기 위해서다.

즉 깨달음을 드러내야 한다는 말이다.

명심하라. 지금 이 순간을 놓치지 말라.

순간순간 자각하라. 한눈팔지 말고, 딴생각하지 말고, 남의 말에 속지 말고,

스스로 살피라  그리고 너무 긴장하지 말라  탄력을 잃는다."

정공은 고승의 말씀을 생각하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잘 사는 건지 고심에 빠졌다.

내가 가야 할 길, 가치관, 사상, 철학 등을 정립하기 위해 선지식과 관련하여 살펴보았다.

신라시대 원효聖師가 태백산에서 국선도(國仙道)의 가르침을 따라 수행한 끝에 우주와 인생의 대진리를

철견(徹見)하고 그 기쁨을 이기지 못해 춤을 덩실덩실 추면서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오! 나는 이제야 비로소 대자유를 얻었노라."

조선시대 경허 대선사가 춤을 덩실덩실 추면서 알았다는 소리만 연거푸 외쳤다고 한다.

"무량겁을 내려오며 미망(迷妄)에 젖어 생사고해를 헤매던 내가 이제야 참나를 찾았도다. 참 나여!

참 나여! 삼라만상이요, 우주법계로다. 너와 내가 끊어진 자리에 참 나만이 우뚝 섰구나."

이와 같이, 환희용약하면서 최상의 깨달음을 얻어야 하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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