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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위공
Oct 07. 2023
향기 나는 사람
그대는 어떤 향기를 가졌나요
"진짜로 기분 나쁘네......."
"왜요? 누가 당신을 기분 나쁘게 했죠?"
"세탁소 있잖아, 옷 맡기러 갔는데...... 불러도 나오지도 않고, 나와서도 물끄러미 쳐다보고......"
"그 세탁소 주인이 원래 그래요."
"아니, 손님이 왔으면 손님 접대를 해야 되는 게 아니야?"
"아예 대답도 안 해?"
"그래, 그러니 기분이 더 나쁘지........ 이제, 딴 세탁소와 거래하자!"
"그렇다고 해서 당장 거래처를 바꿔버리면 어떻게 해요."
"여하튼 당신이 가든지 말든지, 나는 안 갈 거야!"
"그래도 수십 년을 거래해 온 단골집인데.........."
정공은 세탁소에 다녀온 뒤, 아내에게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아내가 말했듯이, 부부가 함께 운영하는 그 세탁소는 우리 집과 인연이 20여 년 넘었다.
주인아저씨는 거의 말이 없고 부인 역시, 말없이 조용히 미소만 짓는 그런 사람들이다.
아예, 침묵을 금으로 생각하는지 몰라도 침묵을 지켜가고 있는 듯해 보였다.
부부가 세탁소에 같이 있고, 부인이 가끔 세탁완료된 옷을 가지고 가져다준다.
어떤 때는 급해서 옷을 찾아 달라고 전화를 하면 아예 불통이다. 전화를 안 받는 건지, 사람이 없는지 왕 짜증이다. 개인 휴대폰도 마찬가지다. 그러니깐, 아예 거래처를 바꾸자는 것이다.
"그런데, 그 세탁소를 이용하는 동네 사람들도 우리와 같은 기분일까?"
"다 똑같을 수는 없지요."
"그럼, 우리가 잘못되었는 걸까?"
"사람들마다 제각기 다른 일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잖아요. 당신이 직장일에 평생을 바쳐온 거와 같이, 옷이나 신발, 도자기, 술 만드는 일까지 천차만별이니까......."
"............"
"그래도 그 세탁소는 온갖 일을 다해요. 운동화, 옷수선 등 심지어 계절이 지난 옷들도 보관해 주지요."
"............"
"내가 알아서 세탁소에 말하겠어요. 옷을 맡기든지, 찾든지........"
"아이구야~
이렇게 많은 옷을 혼자서......"
"어머! 집이 넓고 좋네요."
"그래요? 고마워요! 저는 땅을 밟고 사는 집이 더 좋은데요."
"저지대가 뭐가 좋아요. 비 많이 오면 침수걱정, 사방팔방 막혀 경치도 못 보고....."
"고층아파트도 불편한 게 많아요. 엘리베이터 고장 나면 꼼짝 못 하죠."
"그래도 저는 고층이 좋아요. 전망 좋고, 경치가 훤하니......"
"하하하! 그럼, 우리 서로 바꿔서 살아볼까요."
"말씀하신 옷은 다 가져왔어요."
"예~ 고맙습니다! 일단, 들어오시죠."
"아니에요, 옷만 놔두고 갈게요."
"주인 양반은 뭐 하세요? 아주머니께서 힘들게 가져오시게....."
"그 사람은 그 사람대로 할 일이 많아요."
말을 붙여보니, 아주머니가 말을 잘한다.
세탁소 아주머니가 다녀간 뒤
정공은
아내에게
말했다
"아주머니가 말을 잘하던데........."
"왜요? 그 아주머니는 천사의 향기가 나는 사람인데....."
"천사의 향기?"
"그래요, 참사람의 향기이지요."
"여자들은 향수를 뿌려 냄새가 난다고 하지만, 천사의 향기는 어떤 냄새가 날까."
"냄새가 아니고 향기라니까!"
"알았어! 사람의 향기......."
"천사의 향기라...... 천사의 향기?"
천사라면 일단 선하고 착한 이미지가 떠오른다.
일반적으로 꽃이나 여자들에게 향기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용어라고 생각이 들지만, 천사의 향기는 구체적으로 설명이 어려운 추상적인 용어이다.
집을 다녀간 세탁소 안주인 그녀의 모습을 잠시 떠올렸다.
잔잔한 미소와 함께 상냥하고 친절한 얼굴이 은은하게 다가온다.
우리에게 깨끗하고 가벼운 깃털 같은 옷을 만들어 주니, 고마움에 대한 적절한 표현이다.
그런 정성으로 멋진 날개를 달아주고 아름다운 마음씨까지 갖추었으므로 천사라고 하는 것 같다.
정공은 향기가 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다.
책에서 얼핏 본 기억이 난다.
주로
스님이나
신부님 같이 성직자 말씀 중에 사람의 향기가 난다고 말했다.
절에 가면 스님들에게서 자연의 오묘한 향기를 온몸으로 느끼듯이, 성당에 가도 고즈넉한 건물과 함께 신부나 수녀에게서 청아한 향기를 느낄 수 있다고 했다.
정공은 실제로 향기를 느낀 적이 있다.
스님들을 만나, 차를 마시면 스님들 특유의 향기가 차와 함께 묻어 나오는 것 같았다.
그런 향기를 딱 꼬집어 표현할 수는 없지만, 은은한 차와 같은 사람의 향기를 느낄 수 있었다.
사람의 향기는 꼭 성직자에게서만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주위의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해 보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독특한 향기를 지니고 살아간다. 꽃향기처럼 한 철에만 아닌, 수십 년 동안 살아오면서 배인 향기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세탁소 안주인 그녀에게서 천사의 향기가 난다고 하겠다.
"계신가요?"
"예~에! 어서 오세요."
정공은 순간 당황스러웠다.
주인장이 말도 잘하고 반갑게 맞이한다.
침묵으로 일관하던 세탁소 주인의 입장이 완전히 바뀌었다.
"어라? 도대체 어찌 된 거야........"
정공은 혼자 중얼거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기분이 나쁠 정도로 말을 않던 사람이 갑자기 왜 저렇게 변했을까......"
그리고 옷을 맡기고 집으로 오는 동안 계속 궁금증이 증폭되었다.
"어디 다녀오세요?"
"응, 세탁소에 옷을 맡기고 왔지."
"절대로 거래를 안 한다면서......."
"생각이 바뀌었지, 그보다 세탁소 주인 있잖아!"
"왜요? 그 사람이.........."
정공은 세탁소 주인의 또 다른 면을 이야기했다.
"변한 게 아니고 당신이 그 사람을 잘 몰랐지요."
"그럼, 그 사람이 이중적이라는 거야?"
"그냥 있는 그대로 일뿐이에요."
세탁소 주인은 가급적 말을 잘하지 않는 편이고, 일에 집중하면 더욱 그렇다고 아내는 부연했다.
"그래도 그렇지, 손님이 말을 걸면 즉시 답을 해야 하는 게 아냐?"
"오늘은 말 잘 들어주고 인사도 잘한다면서요."
"그때는 말없고, 오늘은 말 잘하니 좀 그렇잖아!"
"그때는 그럴 사정이 있었겠지요."
"당신은 그 사람을 마치 잘 아는 것처럼 말하네."
"그 사람 부인이 말하는 것을 그대로 전달하는 거예요. 말없는 남편이 믿음직해서 좋고 그런 믿음이 하늘같이 높
기에, 남편을 하늘같이 생각한대요."
"허~ 참! 하늘이라..... 대단하네~ 부인의 발상이........"
"어쨌든 당신과 정반대라 생각하면 돼요."
"아니~ 왜?"
"
당신은
말이 많잖아요."
"....................."
정공은 살짝, 기분이 나빴지만 침묵으로 일관했다.
왜냐면 아내의 말이 맞기는 맞는 말이다.
나와 살아온 지가 40년이 다되어 가기에, 세상에서 나를 잘 아는 사람은 아내밖에 없을 것이다.
그동안 얄팍한 지식으로 떠들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리고 진작 침묵이 필요한 사람은 정공 자신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처음에 세탁소 주인을 만났을 때, 정공은 침묵에 관해 선입관이 있었다.
사람은 겉으로는 강한 체하지만 속으로는 약하고 상처받기 쉬운 그런 존재다.
우리 자신이 그러한 존재이기 때문에 또한 다른 사람의 상처를 건드려 고통을 주는 일이 적지 않다.
차라리 그럴 바엔 아무 말도 않고 침묵으로 일관하는 게 현명하다.
자기 방어적인 관점에서 침묵이라는 말이다.
정공은 지금까지는, 침묵이라는 일반적인 개념으로만 이해가 되었다.
어쩌면 침묵은 곧 자기 자신을 위한 수행의 길이라 생각이 들었다.
선사들께서는 삶의 향기를 일찍이 말씀하셨다.
삶의 향기는 조용히 바라보며 느껴라고 했다.
향기로운 한 잔의 차로 향기를 느낄 수 있고, 난롯가에서 읽는 책에서도 행복한 향기를 느끼고,
눈 속에 피어나는 매화나 동백꽃에도 스며든 향기가 있다.
그리고 개울물 소리처럼 지극히 단순하고 소박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도
우리는 맑고 향기로운 삶을 어디서나 느낄 수 있다.
향기는 겉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안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라 생각이 든다.
고승은 이를 두고 침묵의 향기라고 했다
그리고
향기 나는
사람은
천사의
향기든 침묵의 향기든, 조용한 성품과 오랜
세월을
거쳐야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았다.
정공은 앞으로, 자신의 내공을 많이 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부지런히 정진하고 수행하면서 깨우치며 일상적인 생활에서 진리와 지혜를 찾아서, 몸소 실천하는 곳에서
그러한 향기가 어느새 자신에게도 나오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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