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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공 Dec 01. 2023

밤을 쓰는 친구

심심풀이에서 영원으로

"어머! 왼손으로도 글을 잘 쓰시네......"

"그래요, 고맙소!"

"어디, 오른손은 왜 안 쓰죠?"

"고장이 났어요, 어쩔 수 없이 왼손으로 하고 있어요."

"왜죠? 어떤 탈이 났길래......"

"오른손을 60년 넘게 썼잖아요, 그러니 한계가 왔죠."

"허긴 기계도 그 정도면 폐품이 되겠지요."

 친구는 같은 학교 이선생과 대화를 하고 있었다.

이선생은  친구의 처지를 이해가 된다고 했다.

"먼저 퇴직한 선배님도 비슷한 일로 고생을 한 적이 있었죠."

"어디가 아파요?"

"선배님은 정년 퇴직하고 몸이 급속도로 악화되었어요."

"그래서요?"

이선생은 선배 경험담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30여 년 교직에 몸담고 있을 때는 늘 생기 넘치고 활발한 동적인 사람이었다고 한다

딸들 결혼도 시키고, 남편과 함께 나름대로 노후생활을 잘 보내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고, 몸이 여기저기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무리를 할 일도 없었는데, 수시로 코피가 터지며 건강에 적신호가 왔다.

병원에 가도 뚜렷한 병명이 없고 그냥 우울증 같은 정신적 병이 더욱 문제였다고 했다.

그래서 산책과 함께, 운동을 서서히 시작했고 소소한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정년퇴직 후, 1년이 지난 지금은 다시 사회봉사 일로 출근한다고 했다.

"어쨌든 건강을 찾았다고 하니 다행이네요."

"일이 만병통치약 인 셈이죠."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건강을 위해 움직여야만 해요."

"그렇죠? 그런데, 경비는 힘들지 않아요? 특히 밤에 근무를 서니......."

"꼭 나쁜 건만 아니죠, 조금은 힘들지만......"

"좋은 점은 없나요?"

"좋다기보다는, 응원하는 힘이 있어 용기가 솟아오르지요."

"누가 응원하죠?"

"아기들과 길고양이들이죠."

친구는 그간에 있었던 아기들과 길고양이 이야기를 들려줬다.

"난, 아저씨를 잘 알아요."

"그래? 고맙구나! 나를 알아봐 줘서....."

"경비 아저씨! 밤에 혼자서 안 무서워서요?"

"아니~ 난, 밤이 좋아~하늘에 별들이 총총히 빛나고 달과 이야기도 하지....."

"별들과 달과 이야기한다고요?"

"그래, 이야기를 하다 보면 밤이 너무 아름다운 거야"

"밤에 혼자 있으면, 귀신이 나오면 어떻게요?"

"하하하! 귀신? 너희들은 쿨쿨 잠들어 있을 때, 귀여운 아기들이 찾아오지."

아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똘똘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네~에? 캄캄한 밤중에 웬 아기들이......"

"귀여운 아기들은 길고양이들이야."

"아! 고양이들이군요."

"그렇지, 귀여운 아기들이고 나의 친구야."

"아기들이라고 했는데, 새끼들이에요?

"새끼도 있고, 엄마 아빠 고양이도 있어."

"귀여워~ 새끼가....."

"내가 먹이를 주고, 새끼 낳는 것도 도와주고 보호해 주었지."

"아저씨가 참~ 착하네요."

"하하하! 네가 더 착하다."

친구는 할머니 고양이, 엄마 아빠 고양이, 새끼까지 이름을 다 지어 주었다고 했다.

남산이, 북돌이, 이쁜이, 알로기, 딸록이, 탱이, 총이, 이 등......

그렇게 말하면서 아이의 또록또록한 눈망울을 쳐다보니, 1~2학년쯤 되는 애가 말하는 게 얼마나 당돌한지, 말도 적절하고 호기심도 엄청 많아 보였다.

아이는 눈을 반짝거리며 친구를 바라볼 때, 친구는 무한 행복을 느꼈다고 한다.

그리고 밤은 무서운 게 아니라, 아름다움 그 자체라고 말해 주었다.

"밤이 왜 아름다워요?"

순간, 살짝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친구는 참으로 고 녀석 당돌한 질문이라 생각했다.

"가만있자...... 왜 밤이 아름다운지........"

아이는 반짝이는 눈망울을 또록또록 굴리며 친구의 입만 바라보았다.

친구는 아이의 순수한 마음에 맞추려는 자신의 머릿속이 어려워졌다.

저 해맑은 아이의 생각에 같은 눈높이를 맞추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문학소년시절이 있었기에, 어느 정도 감성이 남아 있었다.

"맞아~밤이 왜 아름다운지, 지금 말을 해줄게."

친구는 옛날 소년시절로 돌아가 생각을 하며 유추할 이야기를 고르는 중이었다.

"아저씨~ 별이 초롱초롱 아름답게 빛나고, 달빛이 곱다고 말하시려고 했지요?"

친구는 한마디로 할 말을 잃었다.

평범한 이야기로는 이 아이의 수준에 도저히 미치지를 못한다고 생각이 들었다.

이 아이에게 어떻게 말을 해주어야, 진정 밤이 아름답게 느껴질 인가.......

순간, 머릿속에 반짝 떠오르는 게 있었다.

옳지! 그렇지, 그것이구나......

밤에 찾아오는 길냥이들 생각이 난 것이다.

아니 다를까, 길냥이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아이의 눈은 더욱 커졌다.

고양이 이야기를 하기 전에 당돌한 아이의 질문에 또 한 번 놀랐다고 한다.

친구는 밤하늘 보며  많은 이야기를 한다고 했다.

주로 별이 된 할머니, 아빠 엄마들 이야기들과 옛날 그 옛날 전설까지도.....

그렇게 이야기를 하다 보면 너희들 이야기도 한다고 하니, 아이는 무슨 이야기냐고 물었다.

"너희들이 좀 더 자라나서, 너희들도 별과 달에 갈 거라고~ 그 이야기를 미리 쓰고 있지."

"응, 그러면 공상과학이야기를 쓴다는 거예요."

"그렇지, 옛날 고전과 지금 소설과 미래 공상과학 이야기도 쓰고 있지.

"와~아저씨는 소설가네요, 작가도 되겠어요."

"하하하! 그래? 그렇게 불러주니 고맙구나."

"아니에요, 정말 우리 학교 작가 탄생이에요."

"그럼, 내가 책도 내볼까나...."

"그런데, 아저씨!"

"왜~앵?"

"혹시 입양할 고양이 새끼 있어요?"

"있기야 있지, 그런데 부모님 허락을 받아와야 돼."

"엄마 허락받고 오면 줄 수 있죠?"

"그럼~ 꼭 부모님 허락을 받아야 된다."

아이는 부모님 허락을 받아온다고 말하고 난 후, 이내 친구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래, 그 아이에게 고양이 새끼를 줬어?"

정공이 친구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아니, 그 이후로 새끼를 달라고 하지 않고 새끼 구경만 늘 하고 갔지."

"아이가 실망이 크겠구나....."

"어쩔 수 없지, 아이에게는 안 됐지만......"

"아이들과 늘 좋은 날만 있었으면 좋겠지?"

정공이 즐거운 표정을 지어며 물었다.

"사람 사는 세상에 갈등이 없을 수야 없겠지만, 갈등은 좀 있지."

"어떤 것이 친구를 힘들게 하지?"

"민원, 민원인들이 늘 문제를 제기하지."

"민원인?"

"그래, 천차만별이야"

친구는 주차장 사용, 학생들 소음, 방범등, 학교 운동장 개방 등  제기 민원이 많다고 했다.

그중에서도 황당한 것은 방범등 민원이었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켜지 말라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켜달라고 하니 어느 장단에 맞추어야 하는지...."

"왜, 둘로 나뉘었지?"

"켜달라는 사람은 밤에 무섭다고 하고, 꺼달라는 사람은 눈이 부셔 잠을 못 잔다나........"

"그래서?"

"켜달라는 시간과 꺼달라는 시간에 맞추어 타이머를 결국 설치해서 둘 다 들어줬지."

정공은 어이가 없다는 듯, 실소를 지었다.

"학교는 선생님과 학생들이 주인이 아니겠어?"

"당연하지."

정공은 친구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했다.

"그런데 웃기는 것은 지네들이 주인처럼 이래라저래라 하는 거야."

"그~참, 진짜 갑질이네....."

"학교가 뭐 하는 곳이야, 배우는 곳이 아냐?"

"그들이 이 학교에 와서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겠네....."

정공은 친구의 말에 맞장구를 쳤지만, 씁쓸한 기분이었다.

한참 동안 지켜보고 있던 이 선생이 말했다.

"좋은 일만 생각하세요."

"네~에! 그렇죠, 좋은 일만 생각해도 짧은 인생이지요......"

"특히, 밤을 아름답게 수놓는 작가잖아요?"

"아이들이 그렇게 불렀어요."

"아니에요~ 아이들뿐만 아니라, 우리들이 봐도 멋진 작가네요."

"고맙습니다."

"친구야! 밤의 대통령이든 작가든, 정말 멋쟁이야."

정공은 엄지 척을 보이며 친구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거렸다.


"친구야! 원래 글쓰기가 취미였어?"

"아니야, 우연히 자연의 신비로움에 반해 글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했지."

"자연?"

"마치 화가가 자연 속에서 그림을 그리는 이치와 같다고나 할까......"

"자연도 워낙 원대하고 무한하니, 감이 안 오네~ 시초가 뭐였어?"

"겨울!"

"겨울?"

"겨울에 눈, 눈이 너무 신비로웠어."

"난, 밤하늘에 별이 시초였는지 알았어."

"그것도 포함되지, 다만 순서가 있었어."

친구는 마치 동화 속 나라를 탐구하는 듯한, 호기심 어린 얼굴로 정공에게 미소를 지었다.

"겨울과 밤은 어쩌면 잘 어울리는 단어들이야."

".........."

"눈 덮인 숲 속은 온통 하얀 세상이고, 밤은 온통 세상을 캄캄하게 해 놓고 은밀히 다가오지."

"시인이네~ 어쩌면, 아름다운 시인 같네......"

"그리고 아이의 눈빛을 봤지~ 호기심이 가득한 눈빛, 밤이 두렵다는 막연한 공포심....."

"친구가 아이같이 순수하네."

"그런 순수한 마음이 있어야, 아름다움이 보이는 거야."

"나도 좀 베워야겠네....."


정공은 친구가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것을 보면서, 선사들을 잠시 떠올렸다.

옛날 선사들 중에서 자연을 보고 그림을 그리거나 글쓰기를 하는 분들이 많았었다.

그분들은 한결같이 자연의 있는 그대로를 담고 표현을 했다.

그리고 한결같이 자연을 사소하게 보지 않고, 깊은 심호흡으로 자연의 기운을 받아들였다.

또한 그들은 그런 의취(意趣)를 평소에 늘 간직하고 있었다.

역사의 기록을 보면, 신라시대와 고려시대에 이르기까지 고승들이 원통의 지혜를 구하는 사찰에서

수행하면서, 자연의 기운을 가슴에 가득 담고 관음의 가피를 받았다고 기술하고 있다.

어쨌든 고승이든 친구든 모두가 자연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았고, 그 아름다움을 그림과 글로 표현한 것이다.

이처럼 자연은 우리에게 단순하고 평범함속에 기적 같은, 아름답고 황홀한 모습을 보여준다.

한 가지 특별한 것이 있다면, 나름대로의 독특한 생활패턴이다.

스님은 기본적으로 일삼은 수행이다.

스님들의 이러한 수행은 자연의 섭리를 파악하며 생태문화에 근접하여 생명문화를 이해하고 자연에 대한

통찰력을 높이는 데 최선을 다한다.

여기에서 모든 생명체를 존엄하게 생각하며 모든 생명체가 상호 조화롭게 살아가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종교적 사유이며, 이는 곧 우리 모두에게 요익(饒益)한 것으로 판단된다.

반면에 친구는 글쓰기 자체가 행복했다.

심심하면 글 쓰고, 답답하고 우울하면 글 쓰고, 화가 나고 억울하면 글 쓰고, 글쓰기가 있기에 사는 재미가

솔솔 하여 인생이 즐겁다고 한다.

친구는 글쓰기로 심심풀이에서 영원으로 가는 길을 찾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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