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그림자

성공이 실패이고, 실패가 성공이다.

by 위공

"당신! 나하고 애기 좀 하자! " 지숙이 황급히 나가는 성우를 붙잡고 말했다.

"나~ 바빠! 시공 나가야 돼!"

"바쁘긴 뭐가 바빠! 잠깐 여기 앉아서 얘기 좀 해! " 지숙은 성우를 잡아당겨 앉혔다.

" 왜 그래? 바쁜 사람 잡고선~" 마지못해 성우는 앉아, 멀뚱멀뚱 허공만 응시했다.

"요즘 뭐하고 다녀? 시공 나간다고 하고선, 수입은 없고 지출만 늘어나잖아?"

지숙은 성우를 무섭게 노려보며 따졌다.

"왜 말이 없어? 뭐하고 다니냐고!" 다그치듯 물었다.

성우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어디다 재산을 빼돌리고 있어! 내가 본격적으로 뒷조사할까?"

"뒷조사는 무슨 뒷조사야! 내가 다시 수입을 늘려 볼게~"

"수입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지출내역을 밝히라고!"

"은행에 5천만 원 넘게 있었는데, 절반밖에 없는 이유가 뭐냐고?"

지숙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계속 성우를 흔들며 추궁했다.

"바람났어? 어떤 년 하고 붙었어! 빨리 말 못 해?" 거세게 몰아쳤다.

지숙은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순간적으로 제풀에 쓰러졌다.

성우는 재빨리 지숙을 업고, 택시를 불러 병원으로 갔다.


성우는 살금살금 지숙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피해 집을 나서는데, 아들이 불렀다.

"아빠, 아빠다!"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다보았다. 이번엔 딸아이가 어느 틈엔가 성우에게 쪼르륵 달려왔다.

"아빠! 어디가?"

성우는 여지없이 파파라치에게 들킨 연예인처럼 눈살을 찌푸렸다. 아이들에게는 자상한 아빠였지만, 최근 들어 지숙에게 죄를 지어, 어찌할 바를 모르고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순진한 건지, 바보인지, 쯧쯧쯧..." 지숙은 보지도 않고 혀를 끌끌 찼다.

"이제는 시공도 안 하면서, 뭐하러 나가?" 성우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

" 응~ 당신이 돈 찾아오라고 해서, 뭐라도 해서라도 돈을 벌여 와야..." 성우는 말끝을 흐렸다.

" 다 까먹고는 무슨 돈을 벌겠다는 거야! 여하튼 이혼하기 전까지, 돈 다 찾아와!"


성우는 묵묵히 아이들을 떼어 놓고, 집을 나섰다.

막상 집을 나왔지만, 갈 데도 없고 일거리도 없었다. 무작정 걷다 보니, 누이의 가게 앞에 왔다.

변두리 실비 주점을 하는데, 최근 들어 장사가 좀 되었다.

때마침, 성자가 일찍 가게문을 열어 청소를 하고 있었다.

"성우야! 성우가 웬일이니?" 반색을 하며, "장가간 뒤, 잘살고 바빠 통 오질 않더니~"

"응~ 그런데 배가 고파서, 밥 좀 줘~"

"그래, 알았어~ 애가 밥도 안 먹고 다녀! 비빔밥 금방 해줄게~ "

성자가 비빔밥을 만들어 주자, 성우는 게 글스럽게 정신없이 밥을 먹기 시작했다.

"애! 천천히 먹어! 체하겠다."

누이의 따뜻한 말에 갑자기 성우는 설움에 북받쳐 눈물이 났다. 눈물, 콧물은 밥과 같이 뒤범벅되어 닦을 새도 없이 계속 쏟아져 흘러내렸다.

"성우야! 왜 무슨 일이 있었니?"

성우는 제 자신이 잘못했고, 지금은 뉘우치고 있다고 말했다.

"이혼한다고? 사람이 실수를 할 수도 있지! " 성자는 동생이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돈을 벌어 갚을 거야!"

"무슨 돈?"

"내가 실수로 지인에게 2천만 원을 빌려줬는데, 사기당했어."

"어쨌든 2천만 원을 갚아야 돼!"

"아니~ 지숙이 혼자서 번개 아니잖아? 성우 너도 많이 벌어 줬잖아!"

"처가에서 모두 다 해줘서 부자가 되었다고 생각하나 봐~ 사실 그것도 맞지!"

"성우야! 돈이란 게 엄청 벌 수도 있고, 순식간에 없어져 깡통 찰 수도 있어!" 성자는 성우를 위로하면서 말했다.

"박종대 씨가 그렇게 부자였는데, 순식간에 풍비박산이 돼버렸잖아!"

성자는 바로 이웃에서 지켜본 상황을 그대로 성우에게 말하면서, 성우를 위로했다.

"성우야! 영길이 죽었는 거 알아? 영재는 소식이 두절되었고, 순덕이만 이 눈치, 저 눈치 보며 그 집안에서 살고 있대."

성우는 잠자코 듣기만 했다. 영길이가 박종대 씨가 죽고 난 후, 3년 전에 교통사고로 죽은 사실을 알고 있었다.

"성우야! 너무 조급하게 생각지 말고, 나와 함께 차근차근 앞으로 할 일을 의논해보자."

성우는 성자의 말에 어느 정도 힘이 되었는지, 소생의 희망과 실낱같은 용기가 살아나는 기분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누나 말이 맞아! 누나와 함께 있었던 그때로 돌아가 보면,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어. 생활이 좀 불편하고 힘들었지만, 가족이라는 훈훈하고 끈끈한 정은 더 깊었잖아.'라고 되새겨 보았다.

'내가 이러면 안 되지! 누나가 이렇게 나를 생각해 주는데, 난 누나에게 무엇을 해주었지? 맨날 걱정이나 끼쳐주고, 누나에게 죄만 지었잖아!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똑바로 살자! 돈이 뭣이라고! 원래 없었어! 어차피 우리는 성공도 없었고, 실패도 없었지~ 그냥 아무 걱정 없이 사는 게 오히려 더 낫지!' 이렇게 혼자서 중얼거리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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