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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공 Jun 15. 2024

입양

그녀는 선녀인가 천사인가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

며칠 전에 봤을 때, 배가 불러서 곧 새끼를 낳을 것 같았다. 무척이나 걱정스러웠다.

아파트 앞  올레길 공원에서 처음 만났을 때, 아기 고양이였기에 사람들에게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그런데 불과 서너 달 사이에 순식간에 임신을 했는 것을 알았다.

정공은 꽁냥 이를 만날 때부터 애정이 남달랐다.

매일같이 먹이를 챙겨 먹이는데, 캔은 냥이가 유달리 좋아하는 이라 마트에 직접 사와 먹인다.

정공의 일과는 냥이 먹이 주고 나서 시작된

동네에서도 냥이들에게 가장 친절한  할아버지로 소문이 자자했다.

올레길 벤치에 앉아 있는 할머니들까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냥이 아빠가 온다!"라고 하니, 냥이가 쳐다본다.

"저것 좀 봐~냥이가  아빠 왔다고 쫄쫄 따라가네...." 하며 깔깔깔 웃는다.

한때는 학교에서도 친구도와 길냥이 집도 마련하고 사료를 조달해 주었다.

그런데 집에서 까지  와서 길냥이와의 연이 이렇게 깊을 줄 몰랐다.

딸 집에도 냥이를 입양해 키우는데 딸들도 꽁냥 이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사실, 꽁냥이 이름을 지어준 것도 딸들이다. 꽁냥꽁냥 거리며 귀엽다고 꽁냥이다.

 또 꽁냥이가 특별한 것은 강아지들과 노는 광경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신기해한다.

강아지를 만나면 친구 하자고 적극적으로 달라붙는다.

강아지는 싫다고 달아나고 꽁냥이는 쫓아가고~ 여하튼 뭔가 바뀌었는 것 같은데......

어쨌든 귀여움은 자신의 심벌마크이자 애교만점 냥이다.

동네 사람들이 늘 쓰다듬고 하면 사랑을 듬뿍 받으려 가만히 있는다.

어떤 사람은 유튜브에 출연시키자고 할 정도였다.

반면에 싫어하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물론,  냥이 사료 준다고 한마디 한다.

그래서 이해를 시키는데도 진땀이 났다. 사람마다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그것뿐만 아니다. 길냥이들도 사납고 공격적인 냥이가 있기에 더 걱정이다.

큰 녀석들이 쪼그만 꽁냥 이를 못살게 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우려가 든다.

딸들도 무척 꽁냥 이를 좋아하고 관심이 많았는데, 어느 날 없어진 걸 알고 걱정을 많이 했다.

어쨌든 꽁냥이가 어디서 무사히 잘 있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다.


정공은 곰곰이 생각해 보니, 냥이들과 연이 깊다고 생각이 든다.
어린 시절부터 동물들을 좋아해 웬만한 동물들은 다 키워보았다.

그중에서도 제일 이쁘고 생각나는 동물이 있다면 깜둥이다.

눈만 빼고는 전부가 까만색으로 깜둥이라고 부르는 고양이인데, 사연이 길다.

어머님 생전, 절에 다녀올 때쯤이면 언제나 마중을 나가는 녀석이다.

그 정도로 어머님을 밀착해 다녔다.

집에서는 검정, 노랑, 흰고양이 등 여러 가지 냥이들을 많이 키웠다.

특히 깜둥이는 쥐를 잘 잡아먹어, 털이 윤기로 반질반질하며 다른 냥이와 비교가 안될 정도로 건강했다.

지금은 가공식품인  사료를 먹이지만, 그 당시에는 냥이 식성이 고기류나 생선으로 먹이가 늘 부족했었다.

깜둥이는 스스로 먹이를 잘 해결했지만, 쥐를 잡아먹고는 사체를 장롱 밑에다 숨겨두곤 했다.

그렇다 보니, 집안에 퀴퀴한 냄새가 진동해서 대청소를 실시하고, 누이들은 그런 깜둥이를 싫어했다.

누이들의 행동은 당연했지만, 구박하고 천대하는 정도가 심했다.

깜둥이는 눈치가 9단이다. 제 싫어하는지, 좋아하는지 금방 안다.

그래서 어느 날 집을 나가버렸다.

정공은 어린 시절에 동물을 많이 키웠는데, 집을 나간 동물은 처음이라 마음에 상처가 컸다.

한동안 누이들은 물론 가족들과 대화조차 하질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깜둥이가 나타난 것이다.

그것도 새끼 3마리를 데리고 원래 아지터였던 장롱 밑으로 들어갔다.

어머님과 정공은 너무나 좋아 부둥켜안고 어쩔 줄 몰라하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비가 엄청 많이 내리는 날이었다.

깜둥이는 새끼 3마리를 데리고 또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깜둥아~ 깜둥아~ 하고 깜둥이를 찾았지만 감감무소식이었다.

어머님께서 동네방네 찾아다니면서 깜둥이를 불렀다.

마침내 깜둥이가 비를 맞으며 집으로 들어왔다.

새끼는 없고 혼자서 비를 털고 온몸을 그루밍하고 있었다.

"깜둥아! 새끼 어쩠니?" 하며 어머님이 새끼 행방을 물었다.

정공이 태어난 고향은 주변에 하천이 있는 동네였다.

비가 많이 와 홍수가 날 때, 하천으로 유입되는 하수구가 역류되어 동네 전체를 침수시켰다.

그래서 깜둥이도 위험을 직감하고 새끼들을 대피시킨 것이다.

정말 깜둥이가 어머님 말을 알아 들었는 것일까, 다음날 새끼들을 다 데리고 왔었다.

깜둥이와 새끼 3마리는 어머님과 정공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어쨌든 꽁냥이 처럼 생기발랄하고 사랑을 많이 받았던 깜둥이 이야기였다. 


어린 시절에 키운 냥이 이야기나 지금 행방불명이 된 꽁냥이 와 관련하여, 스님들 동물 이야기도 있다.

먼저 충남 신안사 이야기다.

충청남도 금산군 제원면 신안리에 위치한 신안사는 유기동물들의 낙원이라고 한다.

유기묘 '심안이'가 방송을 거듭 타면서 이제는 이런저런 고양이와 개들로 더 유명하다.

이런저런 사연을 지닌 20마리의 짐승들이 절에 상주하거나 절을 기웃거리면서 산다.

심안이는 눈먼 고양이다. 잔뜩 상처를 입고 길가에서 어쩔 줄 모르던 것을 신도 한 명이 신안사로 데려왔다.

주지 스님이 지극정성으로 간호했다. 없는 살림에 가진 것을 다 털어 넣었다.

원래 이름은 심안이 가 아니가'삼백이'였다.

의료보험이 안 되는 동물병원 치료비용은 턱없이 비쌌지만, 생명을 살려야 했기에 치료를 해야만 했다.

비용이 총 300만 원이 들었고, 앞으로는 마음의 눈으로 봐야 한다며 개명도 해 주었다.

그래서 심안이라고 이름을 지어 주었다

정말로 마음의 눈으로 보는 것 같았다. 인기척에 반갑게 달려오다가 일순 속도를 늦췄다.

스님의 발걸음과 외지인인 기자의 발걸음을 구별해 낸 것이다.

세상만사 연기법이고 시력이 사라지자 청력이 비약적으로 강해졌다.

멀쩡한 고양이처럼 밥 먹으러 가고 사람에게 안기는 모습이 신통하고 눈물겹다.

'문수''보현이''반야''천수''용이'도 고양이 식구들이다. 사료 그릇은 해우소 옆에 놓였다.

공양을 마치면 경내 곳곳을 제집처럼 돌아다닌다. 햇볕을 쬐거나 그늘에 쉬면서 하루종일 잔다.

보현이는 영락없는 개냥이다. 모르는 사람이 만져도 안아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

다른 아이들은 일정하게 떨어져 있다. 각자의 기질과 상처의 질량에 따라서 저마다의 간격을 둔다.

얄궂은 것은 사람에겐 갖은 애교로 곰살맞은 보현이가 다른 고양이들은 집요하게 괴롭힌다.

인간만큼이나 동물의 심리도 복잡하다. 개들도 많다. '콩새'의 종(種)은 포메라니안 블랙탄이다.

배를 만져주는 걸 좋아한다. 순종이고 영특한데 옛 견주는 학대를 했다.

털에 가려서 얼핏 잘 보이지 않는데 귀를 반쯤 잘렸다.

'칠구'는 삽살개다. 날씨가 벌써 무더워서 온몸의 털을 깎아주었다.

맨몸의 삽살개는 사냥개처럼 무섭게 생겼다.

수놈인 '금강이'는 진돗개, 암놈인 '복순이'는 풍산개다.

큰 놈들인 이들은 개집에 살고 다들 목줄에 묶여 있다.

자유를 주었다가는 행여 사고가 날 수 있으니 불가피하다.

개들 본연의 명랑함과 분방함을 동네 주민들은 견디지 못한다. 그들의 목줄은 어떤 의미에서 생명줄이다.

인간사회에서 생존하려면 어쩔 수 없는 일종의 주민세와 같은 것이다.

동물들은 귀엽기는 한데 참 많이도 먹어댄다. 가난한데도 따스할 수 있는 건 상황에 대한 관점의 차이다.

"고통이 없으면 발전도 없어요." "남 탓만 하다 보면 나를 못 봐요."라고 스님은 말한다.

스님이 자신의 불편과 상대의 단점만을 생각했다면 멍냥이들은 결코 신안사에 살 수 없었다.

그래서 기르는 게 아니고 '거두었다'라고 한다.

"살아있는 목숨인데 어떡하겠습니까?"라고 하는 스님 미소가 자비심으로 가득, 전해옴을 느꼈다.


전북 미륵산 사자암 이야기다.

미륵산 사자암에는 주지 도반이 많은데, 진돗개 2마리와 고양이 9마리가 좋은 스승이자 착한 벗이라고 한다.

그리고 진돗개 두 마리와 고양이 아홉 마리가 나의 가족이 되어 대화도 나누고 정도 나누며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을 길들이고 산다며 웃는다.

진돗개 두 마리 운동도 시켜주고, 고양이 아홉 마리의 먹이와 물도 챙겨주며 깨끗하고 말끔하게 도량의

밝은 빛이 되게 하는 것도 사찰에서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또, 어떤 날에는 진돗개가 야밤에 수상한 물체 접근을 보고 강렬하게 짖어대며 절과 스님을 지킨다고 한다.

이와 같이 갈 곳 없어 키워야 하는 동물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동물들이 절과 스님을 지키기도 한다.

동물과 스님은 자연과 더불어 가장 친한 도반이자 친구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아주 오래전, 스님이 조사스님께 여쭈었다고 한다.

"스님! 개도 불성이 있습니까?"

그러자 조사스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모든 중생이 불성이 있는데, 사람과 가장 친한 개가 불성이 없겠느냐?"라고 말씀하셨다.

불교에서 말하는 중생이란 모든 생명체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스님은 말한다.

"중생이 부처고, 부처가 중생이로다."

즉 이 말은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중생이 부처라 하지만, 그것도 천차만별 생각과 마음에서 우러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불교에서 말하는 선과 악은 영원한 화두가 아닌가.

어쨌든 스님은 고양이와 개들이 스님의 일상에 가장 중요한 생명이라고 한다.

사찰에 들어서기 전, 일주문과 천왕문에 사천왕이 불도를 수호하기 위해 자리를 지키는 거와 같이,

미륵산 사자암에도 개와 고양이가 사천왕처럼 사찰과 스님을 지키는 것이다.


드디어 꽁냥이 소식이 왔다.

동네 아파트 어느 주민이 입양하게 되었다는 공고문이 아파트 올레길 벤치에 걸려 있었다.

꽁냥이가 안전하게 출산하게 되었음을 알고는 딸들이 감격해서 울었다.

꽁냥이 입양을 선뜻해주신 아주머니께 너무 감사하다며, 그 따뜻한 마음에 한 번 더 감동했다고 한다.

소문에 의하면 그 아주머니는 집에서 강아지를 키우는데 불구하고 꽁냥 이를 거두어들였다.

꽁냥이 출산 전에도 아파트 올레길 숲 속에 늘 탐색하며 길냥이들 먹이와 물을 매일같이 챙겨 주었다.

아주머니의 따뜻한 마음이 동네 길냥이들 뿐만 아니라, 동네 주민들까지 잔잔한 감동을 전해주었다.

이러한 마음은 마치 어둠을 환하게 밝히는 보름달 같이 다가온다.

부처님의 마음을 대광명이라고 하며, 그 빛이 온 세상과 우주를 비추는 태양과 같다.

아주머니의 인연이 부처님 마음처럼 보름달로 우리 동네를 환하게 비추고 있다.

연(連)은 이어 짐이다. 

이러한 연은 별들과도 이어져 있고, 달, 귀뚜라미, 이슬, 안개 등 우주만물로도 이어져 있다.

어쩌면 이런 연을 맺기 위해 꽁냥이도 그렇게 만인들에게 애교를 부렸는 것 같다.

이제 꽁냥이는 행복하게 잘 살아갈 것이다.

진짜, 꽁냥꽁냥하면서 말이다.

언젠가 우리 가족들에게 제 모습을 보여 줄 날을 기대하면서..........


정공은 늘 꿈을 꾸는 게 있다.

그것은 하늘에 널려있는 무수한 별을 찾아서 무한 우주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꿈이든 생시이든 언제나 생각과 상상에 사로잡혀 있다.

그래서 동물별에도 가는 꿈, 옛날 선조 부모님들이 가 있는 별, 그리고 자신이 가고 싶은 별이 있다.

이러한 별들에 갈 수 있게 염원하고 계속 꿈을 꾸는 것이다.

그런데 그 별자리를 보며 이 법도량 같은 아주머니 한 분이 생각난 것이다.

밤하늘에 찬란한 별빛같이 반짝거리며 아름답게 다가온 사람이다.

과연 어떤 별에서 왔고, 또 어떤 별로 돌아갈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양처럼 온순하며 평온한 느낌이 들어 양자리를 찾아볼까 싶다.

그리고 나무꾼과 선녀에 나오는 선녀와 같아, 견우직녀 자리를 찾아볼까.

여하튼 밤하늘에 무수한 별자리를 보며 천상천녀, 선녀, 천사와 같은 이미지를 떠올려 본다.

정말 그녀의 성품은 마치 선녀, 천사와  같은 마음이다.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 갈 곳 없는 꽁냥 이를 스스럼없이 받아준 아주머니의 마음이 정말 좋다.

이러한 마음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정말 선녀, 천사에서만 나오는 마음일까?

정공은 선한 마음을 잡고 싶고 언제까지나 도란도란 이야기하고 싶다.

그런데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 그런 보름달 같은 보리심을 가진 분이 살고 있는 것이다.

보리심(普禔心)이란 천상천녀, 선녀 같은 천사의 마음이 곧 보리심인 것이다.

그 아주머니는 필경, 전생에 선녀나 천사가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을 해본다.



정공은 보리심에 관하여 은사스님께 들은 바 있다.

은사스님은 법문을 설할 때 <대방광불화엄경> 입법게품 미륵보살장을 인용하며 보리심의 공덕을 찬탄하였다.


보리심은 마치 밝은 해와 같나니

일체 모든 세간을 두루 비추는 연고요


보리심은 마치 보름달과 같나니

모든 깨끗한 법이 모두 원만한 연고요


보리심은 마치 밝은 등불과 같나니

능히 갖가지 법의 광명을 놓는 연고요


보리심은 마치 자애로운 어머니와 같나니

일체 모든 보살을 낳아 기르는 연고요


보리심은 마치 유모와 같나니

일체 모든 보살을 양육하는 연고요


보리심은 마치 착한 벗과 같나니

일체 모든 보살을 성숙시켜 이롭게 하는 연고요


보리심은 마치 큰 바다와 같나니

일체 공덕이 모두 그 안에 들어가는 연고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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